3월을 앞두고 마트에 가면 삼겹살데이를 맞아 삼겹살을 할인한다는 광고를 늘 보게 된다. 무게로 따졌을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육류는 돼지다.(목숨 수로 따지면 닭이 가장 많이 죽는다.) 국가별 소비량으로 따져도 중국, 베트남 등과 근소한 차이로 1, 2위를 다투는 돼지고기 과잉 소비국에서 ‘삼’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제철 음식인 양 삼겹살 소비를 부추기는 프로모션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행태인지 진지하게 지적하는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마냥 즐겁고 맛있는, 마치 인간에게 유익을 가져다주는 일처럼 포장돼 팔리는 현장을 일상적인 공간에서 무력하게 목격하고 있으면, 붉은 육류가 암 발생률을 높인다는 사실 외에도 한국에서만 대략 매달 150만 명(命)의 돼지가 강제로 태어나 고기로 죽기까지 미치는 악영향이 음모론 취급당하는 기분이 든다. 당장 벌어지는 일들도 지워지는데 역사 왜곡은 일도 아니겠다 싶다. 특히 삼일절보다 더 홍보되는 삼겹살데이를 보니, 손바닥은 모르겠지만 마케팅은 하늘을 가린다. 감고자 하는 눈앞에 살포시 갖다 대기만 해도 광활한 하늘과 모든 별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운동하는 이유와 같다. 건강하게 지속적인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운동이 필수인 것처럼 우리는 적절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365일 언제든 원하는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시대에 살지라도 계절에 맞는 음식을 먹어야 잘 먹고 잘산다. 우리 몸은 그렇게 설계돼 있다.
돼지는 제철이 없다. 6개월 평생을 냄새나는 시멘트에 갇혀 살다 죽으러 갈 때, 도살장에서 맞이하는 계절이 그 돼지의 제철이 되는 셈이다. 돼지뿐일까. 농장 동물은 지금도 죽고 있다. 선조들이 흘린 피보다 훨씬 많은 피를 이 땅에 매분 매초 흘리면서. 우리 몸뿐만 아니라 금수강산을 해치는 먹거리다. 1960~1970년대처럼 명절 때나 고기를 먹는 상황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밥보다 고기를 더 먹는 시대다.
비린내 나는 육류 코너를 못 본 척하며 무를 한 통 집어 들었다. 하얗고 광택이 도는 매끈한 모습, 시원한 맛이 겨울을 닮은 채소 무는 겨울에 먹어야 맛있다.
고르게 채 써는 건 여전히 불가능하지만 모양과 크기를 신경 쓰지 않고 숭덩숭덩 자르는 건 할 만하다. 푹 삶으면 아무리 큰 조각도 결국엔 다 부드러워진다. 물 반 무 반인 냄비 속에서 제각각 모양을 가진 무가 투명하게 떠오르면 조선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불을 끌 때쯤 들깻가루를 왕창 넣는다. 그릇에 담아낸 뒤 들기름을 한 번 둘러주면 고소한 무들깨탕이 된다. 아마도 이번 겨울을 보내는 마지막 무들깨탕이 될 것이다.
사람들의 식탁 위에 가공식품이나 고기처럼 제철 없는 음식이 줄어들길 바란다. 우리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값싸고 편리한 모든 것이 실은 ‘무엇보다 비싸고 불편한 상품’으로 외면받길 바란다.
글·그림 초식마녀
*비건 유튜버 초식마녀가 ‘남을 살리는 밥상으로 나를 살리는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4주마다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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