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지나도록 이어지던 무더위가 드디어 물러갔다. 사계절 내내 미지근한 물을 고집하는 내가 얼음물을 들이켜게 한, 길고 뜨거운 여름이었다. 폭우 이후 갑자기 찾아온 가을을 만끽할 여유도 없이 축제의 달이다. 4년째 사는 중인 경남 진주에서는 매년 10월이면 ‘진주남강유등축제’가 열린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인 대한민국에서, 한양에서 천리길이나 떨어진 지역의 축제치고 꽤 규모 있고 유명하다. 진주성을 끼고 흐르는 남강 위로 커다란 유등이 떠 있는 모습이 독특하고 아름다우며 김시민 장군의 이름을 딴 유람선을 타고 그 속을 흘러갈 수도 있다.
강 위에서 드론쇼와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개막식이면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다. 고백한다. 2021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불꽃놀이의 영향으로 추정되는 새들의 떼죽음을 기사 사진으로 접하고도 2023년과 2024년 둘 다 개막식을 보러 갔다. 순간 폭발하는 반짝임, 찬란한 별 가루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그 느낌. 타들어가는 형형색색의 빛깔을 멍하니 바라보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것 같은 황홀함을 느낀다. 후유증처럼 번지는 화약 냄새마저 싫지 않았다. 대기 중에 최대 300배나 되는 오염물질을 남기고 조류 생태계를 위협하는 불꽃놀이는 은하수처럼 근사하고 전쟁만큼 끔찍하다.
5년 전, 동물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는 산업에 동참하)기 싫어서 고기를 끊었다. 가치관과 생활이 일치하는 삶을 시작하게 됐음에도 어떤 동물은 귀여워하면서 어떤 동물은 음식으로만 취급하던 때보다 더 자주 나의 이중성을 돌아보게 된다. 불꽃놀이를 멈추길 바라면서도 불꽃에 매료되고, 동물 사체 굽는 냄새가 가득한 야시장이 싫으면서도 붐비는 사람들의 활기에 홀리는 모순을. 희망과 절망, 좋음과 싫음이 뒤섞인 축제장에서 그럼에도 반가웠던 부분은, 세계 각국의 음식을 파는 먹거리 장터에서 일회용품이 아닌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모습이었다. 2024년 처음 설치된 다회용기 반납 부스를 보며 이 방향으로 모두가 조금만 더 속도를 낸다면 육식문화와 불꽃놀이는 성장과 확장만 바라보던 시대의 유물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아주 살짝 보았다.
축제를 구경하고 돌아와 냉장고에 잔뜩 채워둔 무화과를 꺼낸다. 반으로 가른 무화과의 촘촘하게 퍼진 붉은색이 터지는 폭죽을 닮았다. 세로로 4등분한 무화과에 올리브유를 뿌린 어린 루콜라를 곁들여 먹으면 향이 더욱 살아난다. 쌉싸름한 루콜라가 달콤하게 터지는 무화과의 식감을 더 진하고 부드럽게 만든다.
돈 주고 무화과를 사 먹은 것은 2024년이 처음이다. 나에게 무화과는 공짜로 먹는 과일이었다. 이맘때쯤 부모님 댁에 가면 마당에서 딴 무화과가 잔뜩 있었다. 그때는 참 먹기 싫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모든 무화과 나무를 베고 나니 갑자기 먹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지나고 나서야 봄인 줄 안다더니….
유등축제는 한 해의 절정이 지나는 풍경이다. 진주 사람들은 축제와 함께 한 해의 끝을 느낀다. 해마다 더 빠르게 더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기후를 보면 인류의 문명도 이미 정점을 지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가 아는 날씨가 사라지기 전, 살아남기 위해 어떤 겨울을 보낼 것인가.
초식마녀 비건 유튜버
*비건 유튜버 초식마녀가 ‘남을 살리는 밥상으로 나를 살리는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4주마다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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