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들리에의 은은한 불빛이 온 방을 한껏 비추고 있었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와 촛불 사이사이를 산들산들 간지럽혔다. 방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잡은 파란 고무풀장은 찰랑찰랑 가득 채운 물과 배가 부른 임신부를 품고 있었다. 아기의 아빠는 엄마 뒤에 앉아 함께 호흡을 맞춰줬다. 조산사가 나긋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자, 이제 숨 크게 쉬고 한 번만 힘주면 아기가 나올 거예요.”
엄마는 마지막으로 힘을 세게 주었다. 숱이 제법 많은 아기 머리가 먼저 나오고 몸이 쑥 빠져나왔다. 마치 아기가 수영하는 듯했다. 조산사가 아기를 물에서 건져 엄마의 가슴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집에서 남편과 함께 수중분만으로 아기를 낳는 ‘아름다운 자연주의 출산 계획’이었다. 이미 여러 번 만나 제법 친해진 조산사가 아기를 받아 건네주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눈이 시리도록 밝은 형광등 빛으로 가득한 병실에서 싸구려 환자복을 반쯤 걸치고 멸균 천에 싸여 중무장한 낯선 의사와 함께 아기를 맞이하고 싶지 않다고 엄마와 아빠는 늘 생각했다. 단 한 가지 꿈에도 예상치 못한 일은, 아기가 숨을 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태반에 연결된 탯줄을 달고 있던 아기는 숨을 쉬지 않았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조산사가 아기의 등을 아무리 문질러도 그 흔한 울음소리는 물론 미동조차 느낄 수 없었다. 인형같이 예쁘게 생긴 아기는 숨을 쉬지 않았다. 보다 못한 조산사가 이번에는 가방에서 럭비공 모양의 투명한 기구를 꺼내 아기의 얼굴을 감싸고 공기를 불어넣었다. 입안과 코안 쪽을 석션(흡입)하고 공기를 아무리 넣어봐도 아기는 숨을 쉬지 않았다. 희미한 심박수는 점차 내려가고, 잠시나마 행복에 겨웠던 부모의 얼굴은 흑색으로 변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조산사는 눈물범벅의 얼굴로 아빠에게 911을 부르라고 간신히 외쳤다. 최대속도로 최대한 빨리 달려 15분 안에 도착한 앰뷸런스를 맞이한 건 축 늘어진 아주 작디작은 아기였다. 청진기를 귀에 대봐도 산소와 압력을 계속 올리며 공기주머니를 짜도 아기의 심박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3㎏ 남짓 되는 아기의 기도는 너무 작았다. 신생아에게 기도 삽관을 해본 적이 없는 응급구조대원들은 결국 그 작은 기도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죽은 아기를 데리고 그들은 황망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서 아기의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 부모는 잊히지 않는 비명만을 토해냈다.
세월의 계곡이 빼곡한 할머니들은 “나 때는 다 집에서 낳고도 잘 살았어”라고 말할 것이다. 예전에는 집에서 아기를 낳고도 잘 살았다지만 통계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100년 전과 비교해서 미국과 한국 모두 산모 사망률이 100배 이상 낮아졌고 신생아 사망률도 세계적으로 절반 이하로 낮아졌다. 산모와 아기의 위험 상황을 자주 지켜본 나는 큰 대학병원에서 아이를 분만했다. 고위험군은 아니었지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선택이었다.
신생아 10%는 태어나자마자 의료진의 도움이 필요하다. 예컨대 호흡이 곤란하면 아기를 문질러 자극을 줌으로써 자가호흡을 하게 한다. 그게 충분치 않으면 산소를 공급하거나 폐가 열리도록 압력을 넣어 호흡을 도와준다. 신생아의 1% 정도는 신생아 중환자실 의료진이라야 할 수 있는 심폐소생술을 필요로 한다. 기도 삽관을 하고 가슴 압박을 하고 신속하게 탯줄 안으로 가느다란 관을 넣어서 약, 수액, 혈액 등을 최대한 빨리 넣어야 한다. 경험이 많고 손이 빠른 의료진과 병원의 지원이 있어야만 아기를 살릴 수 있다. 누구도 “당신은 건강한 아기를 낳을 겁니다” “당신의 아기는 죽지 않을 겁니다”라고 장담할 수 없다. 물론 고위험군 산모가 있지만 그 위험 요소만으로 산모와 아기의 운명을 점칠 수는 없다.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는 아기 부모의 엄청난 고통이 서서히 나를 집어삼켰다. 작은 생명을 품은 열 달 동안 자연주의 출산 계획을 세우며 아기의 출생을 손꼽아 기다렸을 부모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엄마와 아빠는 같은 선택을 할까? 자연주의 출산을 계획하며 아기에게 시커먼 죽음이 닥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조산사가 혹시 아기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본인의 힘으로 아기를 구할 수 있다고 안심시켰을까?
여러 가지 가정과 의문이 소나기처럼 내렸다. 그 뒤엔 한 가지 생각만 멈출 수 없었다. 왜 병원에서 분만하지 않았을까. 병원에서 출산했다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내일이면 퇴원해서 부모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을 소중한 생명이었다. 너무 작고 연약해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생명이었다. 너무도 많은 ‘만약’이 도사리는 출산 과정에서 너무도 큰 ‘기적’을 바란 건 아니었을까.
응급실을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활짝 열린 그 문 안에 아기를 꼭 감싸 안고 휠체어에 앉은 엄마와 간호사가 있었다. 짐이 잔뜩 실린 거로 보아 건강한 아기와 퇴원하는 산모인 듯했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행복의 향기가 어찌나 진하게 전해져 오는지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한 걸음 물러나 병원 자동문을 향해 부드럽게 나아가는 산모를 한없이 바라봤다. 정문 앞에는 아기의 아빠처럼 보이는 사람이 산모와 아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행복에 가득 찬 또 다른 부모의 모습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던 병원의 일상적인 모습이 아니던가. 차디찬 응급실에 누워 있는 그 아기도 그 아기의 부모도 느껴야 할 일상의 행복이 아니던가. 두 가족의 상반된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니 눈앞이 눈물로 뿌예졌다가 가득 차기를 자꾸 반복했다.
스텔라 황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병원 소아과 신생아분과 교수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손바닥만 한 초미숙아부터 만삭아까지 돌보는 스텔라 황 교수가 어린 생명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스텔라 황 교수는 의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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