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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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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밀도를 줄여야 사람이 산다

도쿄보다 좁고 파리보다 인구 4배 많은 서울…
혼잡시간대 지하철도 인구 밀집도 높아 사고 위험
등록 2022-11-13 00:42 수정 2022-12-09 10:34
서울지하철 9호선 염창역에서 종합운동장 방향으로 가는 출근길 열차 안. 승객이 열차 내부를 가득 메웠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서울지하철 9호선 염창역에서 종합운동장 방향으로 가는 출근길 열차 안. 승객이 열차 내부를 가득 메웠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2022년 10월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156명이 숨지고 198명이 다치는 참사(11월9일 23시 기준)가 났을 때 해당 골목의 밀도는 제곱미터(㎡)당 6명이 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골목의 등기부상 넓이는 160㎡이며, 참사 당시 여기엔 1천 명 넘는 인파가 몰렸기 때문이다. 이 골목에 1천 명이 있었다면 1㎡에 6.25명이었다. 전문가들은 1㎡에 6명 이상이면 압사 사고 위험이 크다고 본다.

인파 몰리는 지하철·놀이공원·공연장

이런 위험한 밀집을 서울에선 드물지 않게 경험할 수 있다. 대표적 상황이 지하철이다. 서울지하철 한 량의 정원은 160명이고 실내 넓이는 55㎡이므로, 1㎡에 2.9명이 적절한 상태다. 그런데 서울지하철의 2021년 최고 혼잡 구간은 민자 9호선의 ‘노량진→동작’ 구간으로 정원의 185%, 한 량에 296명이 탑승했다(이하 평일 출퇴근 시간대 최고 혼잡도). 이 전동차의 ㎡당 인원은 5.4명으로 사고 위험 밀집도인 ㎡당 6명에 근접했다. 또 1~8호선 가운데 2021년 가장 혼잡한 구간은 4호선 ‘한성대→혜화’ 구간으로 정원의 150.8%였다. 한 량에 241명, ㎡당 4.4명이다.

대중교통 이용자가 급감한 코로나19 이전엔 이보다 더 높았다. 2011~2019년 서울지하철에서 가장 혼잡한 구간은 2014년 민자 9호선 ‘염창→당산’ 구간으로 정원의 236%, 한 량에 378명이었다. 이는 ㎡당 6.9명으로 이태원 참사 골목의 밀도보다 더 높았다. 1~8호선 가운데는 2013년 2호선 사당→방배 구간으로 202%였다. 이는 한 량에 323명, ㎡당 5.9명으로 이태원 참사 밀도에 근접한 수준이었다.

이런 살인적 밀집은 지하철뿐 아니라 서울 어디에나 있다. 주말 명동 중심가, 주말 롯데월드나 에버랜드 등 놀이시설, 인기 그룹의 공연장 주변, 북한산 등 주말 등산로, 프로야구 경기 때 잠실야구장, 국가 대항전 때 월드컵 축구경기장, 여의도 벚꽃축제와 서울세계불꽃축제, 새해맞이 보신각 타종 등에 인파가 몰린다.

실제 사고도 일어났다. 2006년 3월 잠실 롯데월드 무료 개방 행사 때는 11만 명이 몰려 35명이 다쳤다. 2000년 12월 보신각 타종 때는 6만 명이 몰려 5살 어린이가 숨지고 9명이 다쳤다. 1992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미국 그룹 뉴키즈온더블록의 공연장에선 1만여 명이 무대 쪽으로 몰려 1명이 숨지고 60여 명이 다쳤다.

여의도 불꽃축제를 여는 한화의 한 관계자는 “2000년부터 매년 열었고 경험도 쌓였지만, 워낙 많은 시민이 오기 때문에 늘 초긴장 상태”라고 말했다. 2022년 10월8일 3년 만에 열린 서울세계불꽃축제는 100만 명이 구경했고, 경찰관과 소방관 2700명 등 5700명이 안전요원으로 배치됐다.

“과밀한 도시에선 사고 확률 높아진다”

전문가들은 이태원 참사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서울의 많은 인구와 높은 인구밀도를 가리켰다. 2021년 말 기준 서울의 인구는 950만 명이고, 인구밀도는 제곱킬로미터(㎢)당 1만5699명이다. 서울 인구는 한국의 다른 6개 광역시보다 2.9~8.5배 더 많고, 인구밀도는 3.6~14.8배 더 높다.

서울 인구는 선진국 대도시 가운데 일본 도쿄(1404만 명) 다음으로 많고, 인구밀도는 프랑스 파리(2만857명/㎢) 다음으로 높다. 그러나 도쿄는 서울보다 3.6배나 넓고, 파리 인구는 219만 명에 불과하다. 서울은 세계적 대도시인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러시아 모스크바보다 인구가 많고 인구밀도가 더 높다. 심지어 과밀한 도시의 대명사인 홍콩보다 인구가 227만 명이나 더 많고 인구밀도도 2.4배에 이른다.

이민원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광주대 명예교수)은 “수도권 집중의 폐해가 이런 참사로 나타났다. 과밀한 도시에선 이런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고 말했다.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도시계획)도 “정부가 이번 참사를 계기로 균형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개발을 중단하고, 지방으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 은퇴 중인 1~2차 베이비붐 세대(1955~1974년생)는 물론, 젊은 세대도 지방으로 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의 집중은 전국뿐 아니라 서울 안에서도 일어난다. 인구 1천만 명의 서울에서 웬만한 행사는 광화문·강남·여의도 3개 도심과 홍익대 앞 등 몇몇 곳에 집중된다. 김사열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경북대 명예교수)은 “이번 참사를 보면 젊은이들이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이태원으로 몰려들었다. 문화에서도 서울 중심주의가 나타난 것이다. 각 지역, 각 도시에 적절한 문화 거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심으로의 쏠림을 줄이려면 각 서울 권역의 자족성을 높이는 방안도 필요하다. 현재 서울의 3개 도심지 외 지역은 대부분 베드타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파리의 ‘15분 도시’(걷거나 자전거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반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도시)는 각 지역의 자족성을 높이고 도시 안 이동 시간을 줄이려는 정책이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은 “아파트 단지처럼 폐쇄적이고 단순한 용도(주거지)가 아니라, 도심의 주상복합처럼 저층은 상업·업무 시설이 들어가고 중고층은 주택이 들어가는 복합 용도의 새로운 주거지가 필요하다. 이런 도시가 출퇴근 시간도 줄인다”고 말했다.

공공공간, 광화문·강남·여의도 말고

도시에 공공공간을 확보해가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홍수 때 하천 수량을 조절하는 유수지처럼 도시의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 이를 수용할 여백의 공공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기황 시시한연구소 대표(건축가)는 “서울에도 정부가 소유한 땅이 꽤 있는데, 좋은 터는 다 기업에 팔았다. 도시 중심에 있어야 할 공원이나 도서관은 좋지 않은 터로 밀려난다. 기존 주거지에 근린(동네) 공원이나 놀이터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시민들이 어디 살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을 정부가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량 운송 수단인 지하철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2020년 서울에서 지하철의 수송 분담률은 39.7%로 압도적 1위다. 지하철은 역 주변으로 사람들의 활동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이번 참사가 난 이태원 골목에 사람이 몰린 것도 지하철의 특성과 관계가 깊다. 정석 교수는 “지하철은 많은 돈을 들여 많은 사람을 빠르게 이동시키는 과거의 교통수단이다. 미래의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있다. 이제 도시 교통수단도 비아르티(BRT·간선급행버스시스템)나 자전거로 다양화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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