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13일 오전, 충남 아산시 도고면 오암리. 부슬부슬 비가 오는 푸른들축산의 1천 평 방목장에서 12개월 이하의 송아지 10여 마리가 뛰놀고 있었다. 송아지들은 사람을 보자 반가운지 방목장 가운데서 길가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송아지들 곁으로는 해오라기 10여 마리가 날아와 함께 놀았다. 자유로운 송아지와 새들의 풍경이었다.
푸른들축산의 이강수(60) 대표는 “날씨가 좋으면 더 잘 놀 텐데, 비가 와서 움직임이 적다. 다 큰 소들은 아무래도 거칠어서 방목장에 내보내지 못하고 어린 소들만 운동시킨다”고 말했다.
방목장 옆 축사로 들어가니 양쪽 우리 안에 덩치가 엄청 큰 황소들이 어슬렁거리거나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몸에 살이 올랐고, 뿔이 곧게 우뚝 솟았으며, 누런 털이 깨끗하고 밝다. 양쪽 우리 사이 통로에는 사료 포대가 쌓여 있었다. 이 축사엔 우리 24칸에 소 90마리가 산다.
푸른들축산은 유기농협동조합 한살림과 계약된 비거세, 유기 한우 농장이다. 2007년부터 유기 한우 사료를 생산했다. 현재 10개 농가의 700여 마리 유기 한우에게 사료를 공급한다. 그러다가 2016년부터는 한우 농장을 인수해 직접 유기 한우를 키우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 매년 25~73마리의 한우를 공급해왔다.
유기 한우와 일반 한우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 대표는 “소의 복지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먼저 소 우리 한 칸이 5×10m인데, 여기서 4마리만 산다. 일반 한우 농장은 같은 크기의 우리에 보통 5~6마리가 산다고 한다. 밀도가 낮으니 우리 안에서 소들의 움직임이 비교적 자유롭고 소들의 정신 건강에도 좋다. 바닥엔 톱밥이나 왕겨를 깔아 분뇨와 냄새를 흡수한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방목장이다. 소 우리가 모두 500평 정도인데, 방목장은 그 2배인 1천 평이다. 운동하니 어린 소들의 뼈와 근육 성장에도 좋고 아픈 것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 거세와 제각(뿔 제거)을 하지 않는 점도 동물권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수컷 한우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비거세 한우를 키우는 농장은 이곳이 국내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보통은 고기를 부드럽게 하고 싸움을 막기 위해 수컷 한우는 거세하고 제각한다.
비거세 한우는 농장주 입장에서도 장점이 있다. 훨씬 빨리 자라기 때문이다. 비거세 한우는 24~25개월이면 800㎏ 안팎으로 다 자란다. 거세 한우는 800㎏이 되려면 30~32개월 걸린다. 암소는 새끼를 2~3마리 낳고 50개월 정도 됐을 때 600㎏ 정도다.
유기 한우를 키우는 데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유기 사료다. 푸른들축산에서 생산하는 유기 사료(TMF, 완전 배합 사료)는 볏짚과 쌀겨, 청치(덜 익은 쌀) 등 농업 부산물을 활용해 옥수수 사용 비율을 낮췄다. 옥수수가 좋은 사료이긴 하지만, 너무 많이 먹이면 지방만 늘려 소의 건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하고 균형 잡힌 사료를 먹이려는 것이다. 이런 식재료를 섭씨 90도 이상의 증기로 소독하고, 2차례 발효시켜 만든다.
또 소의 사료에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이나 항생제, 성장촉진제 등을 전혀 넣지 않는다. 친환경 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의 인증기준과 한살림 자체 기준에 따라, 유기 사료를 1년 이상 먹어야 유기 한우가 된다. 항생제를 사용하면 항생제를 끊은 뒤 12개월이 지나야 유기 한우로 인정받는다.
이 유기 한우 농장은 바로 길 건너편 논과 함께 순환 농사도 짓고 있다. 건너편 논에서 나오는 볏짚을 가져다 소 사료로 사용하고, 그 소가 싼 똥오줌으로 거름을 만들어 논에서 쓴다. 이 축사에서 나오는 분뇨 전량을 주변 논과 밭에서 사용한다. 이 논 역시 제초제를 쓰지 않고 우렁이를 이용한 유기 농사를 짓는다.
이 농장의 한우 95%는 소고기 등급에서 최하 등급인 3등급, 나머지 5%가 2등급을 받는다. 1등급이나 1등급+, 1등급++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역설적으로 이것은 소들이 건강한 사료를 먹고 적절히 움직여서 근육 내 지방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농장의 유기 한우는 시중의 1등급++ 한우보다 더 비싼 가격에 한살림 매장에서 팔린다.
그러나 아무리 동물복지가 좋고 좋은 사료를 먹어도 이 농장의 소들 역시 고기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다. 이 대표는 “서구화로 최근 고기를 많이 먹는다. 그러나 사람의 건강이나 기후위기를 생각하면 소고기를 적게 먹어야 한다. 다만 육식을 없앨 수는 없으니 동물복지를 신경 써서 키운, 건강한 소고기를 먹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키운 소를 도축장으로 보낼 때는 “당연히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키운 소 중에서도 특별히 더 정이 든 녀석도 있고, 도축장에 보낼 때 트럭에 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녀석도 있다. 그럴 때는 안쓰럽고 속상하다. 그러나 나와 함께 지내는 동안 잘해주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이날 오후엔 충북 괴산군 소수면 입암리 눈비산마을을 찾아갔다. 개방형 평사(땅바닥 닭장)에서 알닭(산란계)을 키워 유정란을 낳게 하는 농장이다. 개방형 평사는 바닥은 땅이고, 앞뒤와 옆으로는 그물만 있고 막힌 벽이 없으며, 위로는 지붕까지 열 수 있게 만든 닭장이다. 시골에서 작은 규모로 닭을 키우는 닭장 모습과 비슷하다. 이곳의 개방형 평사는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져 ‘야마기시 양계사’라고 부른다.
눈비산마을의 농장에선 알닭 1만1천 마리와 예비 알닭 5500마리를 키우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기르는 7400만 마리의 닭 가운데 300만 마리만 동물복지 인증을 받았다.
동물복지 인증 기준에 따르면, 어른 닭은 1㎡에 9마리 이하를 키워야 하는데, 눈비산마을 닭장은 5마리 정도로 관리한다. 이 닭장의 한 칸은 가로 7.6m, 깊이 3.6m, 높이 3.3m인데, 암탉 120~130마리, 수탉 8~10마리가 함께 산다. 암수를 함께 키우는 것은 닭들의 자연 생태와 조화, 안전 등을 고려해서다.
이 닭장에서 특징적인 것은 횃대와 알상자(난상)다. 닭은 밤눈이 어두워 횃대와 같이 높은 곳에 올라가 있어야 편안히 쉴 수 있다. 닭장 한 칸에 3.3m짜리 횃대가 5개씩 설치돼 있다. 암탉들이 어둠 속에서 편안히 알을 낳을 수 있게 만든 알상자는 가로세로 각 1.8m, 두께 22~55㎝다.
닭장 바닥은 흙인데 톱밥을 깔아 닭의 똥오줌과 자연스레 섞이게 했다. 닭들이 오가며 흙과 톱밥, 똥오줌을 섞고 햇볕을 받으면 바닥 흙이 자연스레 마르고 냄새도 별로 나지 않는다.
이런 개방형 닭장은 밀도가 높지 않고 바람이나 해가 잘 들어 위생상으로도 매우 좋다. 전국적으로 개방형 닭장에선 조류독감(AI) 발생이 이제껏 거의 없었고, 이 농장에선 한 번도 없었다. 환경이 쾌적하고 닭들이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니 아무래도 병나는 일이 적다. 바닥이 흙이어서 닭들이 흙 목욕을 하니 기생충도 대부분 떨어진다.
사료는 수입하지만, 사료 외에 풀도 먹인다. 5~10월엔 생풀을 먹이고, 11~4월엔 발효시킨 풀김치를 먹인다. 풀을 먹어야 위의 소화를 돕고 장내 미생물의 균형을 맞추는 유기산이 나온다. 풀은 달걀의 비린내도 줄여준다.
농작물-가축의 ‘순환 농사’ 살려야눈비산마을 재단의 이노기(57) 전무에게 닭의 복지에 관해 물었다.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1년에 272개의 달걀을 먹는데, 너무 많다. 많은 달걀을 싸게 공급하려니 좁은 닭장에서 닭들을 혹사시키면서 알을 낳게 한다. 적게 먹으면 적게 생산해도 되고, 닭도 덜 괴롭히게 된다.”
이 전무는 과거 수천 년 동안 우리가 지어온 ‘순환 농사’를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작물을 키워서 사람이 먹고, 부산물을 가축이 먹고, 가축이 똥오줌을 싸면 그것으로 거름을 만들어 다시 농작물을 키우는 순환을 되살려야 한다. 동네별로, 지역별로 농사와 축산을 순환시키는 유기농을 하는 게 우리 농업의 미래다.”
유기농과 순환 농업에 대해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근행 농어촌사회연구소장은 “너무 많은 육식을 하면서 순환 농업의 고리가 끊어졌다. 사료와 비료는 수입하고, 분뇨는 엄청난 쓰레기가 됐다. 얼마나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울 것인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 균형을 맞춰야 우리가 건강한 삶이나 탄소중립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종무 수의사(생명윤리학 박사)도 “우리가 고기를 먹는 것도 생명 순환의 한 고리다. 문제는 싼값으로 많은 고기를 먹기 위해 축산업을 비정상적으로 키워왔다는 점이다. 농사와 축산을 순환시키고, 적절한 값을 주고 고기를 사먹는다면 생명윤리, 기후위기, 건강 등 모든 문제가 풀린다”고 말했다.
아산(충남)·괴산(충북)=글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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