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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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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하면 단백질은 어떻게 하나요” 의사가 답했다

의학적 논쟁에 대한 의사의 답
“식물만으로 단백질 충분, 우유는 칼슘 섭취에 나쁜 음식”
등록 2022-08-05 16:09 수정 2022-08-15 08:20
우유 빨리 마시기 게임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우유를 먹고 있다. 영양학자들은 우유 등 동물성 단백질 섭취가 칼슘 배출 촉진, 추가 칼슘 섭취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한겨레 자료

우유 빨리 마시기 게임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우유를 먹고 있다. 영양학자들은 우유 등 동물성 단백질 섭취가 칼슘 배출 촉진, 추가 칼슘 섭취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한겨레 자료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9년 세계경제를 전망하면서 “2019년은 비건의 해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국과 상관없는 서구권에나 해당하는 전망이라 생각했지만, 신기하게도 2019년을 기점으로 한국에서도 확연한 변화가 느껴졌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기후위기, 동물권, 건강 측면에서 비건주의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축산업자나 축산업에 우호적인 전문가들은 순식물성 식품에 ‘고기’나 ‘육’ 등의 용어 사용 제한 뿐만 아니라 건강과 영양학적 측면에서도 순식물성 식단을 흠집 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모두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세계 최대 영양학자들의 조직인 미국 식이영양학회(Academy of Nutrition Dietetics)는 순식물성 식단을 둘러싼 다양한 우려에 대해 정기적으로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16년 발표한 입장문의 내용은 이렇다. “적절하게 계획된 비건 식단은 건강하고, 영양학적으로 적절하며, 특정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건강상 이득을 제공할 수 있다. 이 식단은 임신, 수유, 영아, 유아, 청소년, 노년, 운동선수 등 생애 전 단계에 적절하다. 식물성 식단은 천연자원을 덜 사용하고 환경 손상도 적기 때문에, 동물성 식품이 풍부한 식단보다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다.” 비건주의 활동가들이 아닌, 최신 연구결과를 섭렵하는 전문가들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감자만 먹어도 단백질 권장량 넘어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각종 자가면역질환, 암 재발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 고기·생선·달걀·우유 등의 동물성 단백질 식품과 식용유·설탕 등 식물성 가공식품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하면, 가장 먼저 돌아오는 질문이 “그럼 단백질은 어떻게 하나요?”이다. 대부분 사람이 식물성 식품에는 단백질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동물의 단백질은 근본적으로 식물에서 얻는다. 식물에 단백질이 없으면 동물에게도 단백질이 있을 수 없다.

다시 한번 미국 식이영양학회의 입장문을 보자. “비건 식단은 칼로리 섭취가 적절할 때 단백질 권장 섭취량을 충족하거나 초과한다. 하루 중 먹는 다양한 식물성 식품에서 얻는 단백질은, 칼로리 필요량을 충족할 경우 충분한 필수아미노산을 공급한다.” 좀더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2015 한국인 영양소 섭취 기준’에 따르면 20대 남성은 하루에 2600㎉를 섭취해야 한다. 만약 다른 음식은 먹지 않고 오로지 감자로만 2600㎉를 섭취하면 단백질을 얼마나 섭취하게 될까? 72g이다. 20대 남성의 단백질 권장섭취량 65g을 초과한다. 식물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단백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감자에도 충분한 단백질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감자뿐만이 아니다. 현미·통밀·찰옥수수로는 각각 66g·100g·76g을 섭취할 수 있고, 깻잎·시금치·브로콜리 같은 풀은 각각 115g·107g·82g의 단백질을 섭취하게 한다. 놀라긴 아직 이르다. 대두는 무려 228g이다.

필수아미노산 또한 모든 식물성 식품에 다 있다. 다만 비율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면 서로 보충돼 결과적으로 필수아미노산도 충분히 섭취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세계보건기구는 동물성이든 식물성이든 단백질 총량이 충분하면 필수아미노산 부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 하버드대학이 칼슘 섭취에 우유를 권장하지 않는 이유

단백질 다음으로 걱정하는 영양소는 칼슘이다. 칼슘을 보충하기 위해 우유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유를 많이 먹는 나라일수록 뼈가 많이 부러진다. 2019년 미국인은 하루 평균 우유와 유제품을 639g 먹는다. 반면 한국인은 29g을 먹는다. 그런데도 미국 여성의 고관절이 한국 여성보다 2.1배 더 많이 부러진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런 현상을 ‘칼슘 역설’이라고 부른다. 동물성 단백질은 혈액을 산성화해 이를 중화하 위해 뼈에서 칼슘이 녹아 나와 결국 소변으로 배설된다. 우유엔 인산이 많아 칼슘이 몸에서 더 많이 배설되게 한다.

미국 하버드대학은 칼슘 섭취를 위해 우유를 권장하지 않고, 다양한 식물성 식품을 권한다. 채소에도 충분한 칼슘이 있기 때문이다. 우유 200㎖에는 칼슘이 약 250㎎ 들어 있다. 채소 1회 분량인 70g의 케일에는 칼슘이 230㎎ 있다. 모시잎 70g에는 칼슘이 무려 614㎎ 있다. 하버드대학은 동물성 단백질 섭취를 줄이면 그만큼 배설되는 칼슘이 감소해 보충할 칼슘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최대한 자연 상태에 가까운 것으로

그러나 동물성 식품만 배제한다고 식단이 저절로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순식물성이지만, 식용유나 설탕으로 칼로리의 상당량을 섭취하면 단백질도 비타민이나 미네랄도 결핍되기 쉽다. 많은 비건 음식은 기존 동물성 식품과 최대한 비슷한 모양과 맛을 추구하다보니 영양 구성도 닮아간다. 비건 베이커리 제품은 버터 대신 식물성 기름을 쓰고 상당량의 설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식용유나 당분은 비타민·미네랄·식이섬유가 없는 빈 칼로리이기 때문에, 식물성 식품에 첨가될수록 칼로리 대비 영양소 밀도가 감소해 칼로리 과잉섭취와 영양결핍을 초래하기 쉽다.

장기간 비건 식단을 실천하다 건강이 악화된 사람이 있다면, 이런 가공식품을 많이 먹었던가, 칼로리를 충분히 섭취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영양소 밀도가 높은 통곡물, 채소, 과일, 콩류, 소량의 견과류 등 가공이 덜 된 자연 상태에 가까운 식물성 식품을 섭취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비건주의 실천이 될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꼭 필요한 가치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자연식물식을 통해 건강하고 활력이 넘쳐야 그 사회에 소중한 가치관이 더욱 대중적으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미래 사회는 고기 흉내가 아니라 식물성 식품 고유의 맛을 즐길 때 더 성큼 다가올 것이다.

이의철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조금씩 천천히 자연식물식> <기후미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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