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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비긴

“내가 만든 김치 한 조각 꺼낼 때 가장 행복”

NYT 베스트셀러 <한국 비건 요리책> 쓴 한국계 미국인 조앤 리 몰리나로
음식에 깃든 가족 이야기 담아 “채식은 현명하고 완전한 사람 되는 길”

제1424호
등록 : 2022-08-03 23:30 수정 : 2022-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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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리 몰리나로 제공

미국 일리노이주 스코키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 조앤 리 몰리나로(Joanne Lee Molinaro·이선영·사진)는 채식주의자인 남편의 권유로 2016년부터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한식 비건 요리 영상을 찍어 틱톡과 유튜브에 올렸다. 뜻밖에도 많은 시청자가 열광했고 이는 2021년 10월 <한국 비건 요리책>(The Korean Vegan Cookbook) 출간으로 이어졌다.

책의 부제는 ‘엄마 주방의 반영과 요리법’(The Reflections and Recipes from Omma’s Kitchen)이다. 그는 한식 채식 메뉴 80여 가지를 소개하면서 음식에 깃든 가족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써내려갔다. 책은 발간 직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2022년 6월 요리계의 우수한 전문가 및 매체에 수여하는 ‘제임스 비어드 미디어 어워드’를 받았다. 2022년 7월 전자우편으로 그와 인터뷰했다.

당신의 누리집 첫 화면엔 ‘나는 한식을 채식화한다. 다른 모든 것을 한국화한다.’(I veganize Korean food. I Koreanize everything else.)는 글이 있다. 어떤 의미인가.

“2016년 채식주의자가 됐을 때 비건 한식을 다룬 요리책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려면 스스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나는 모든 음식에 한국적인 맛을 더하는 걸 좋아한다. 스파게티를 만들 때 고추장을 넣고, 과일샐러드를 만들 때 고춧가루를 넣고, 샌드위치를 만들 때 된장을 넣는다. 내 손맛과, 내가 사람들을 위해 만든 음식, 내 마음은 모두 한국적이다.”

2021년 12월 방영된 미국 방송 PBS의 <뉴스아워> 프로그램에서 조앤 리 몰리나로가 한국 비건 음식을 만들며 인터뷰하고 있다. PBS 유튜브 갈무리

“한식은 이미 거의 채식 요리”

한식이 비건 요리에 적합한 면이 있다면 무엇인가.

“한식은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고, 이미 채소가 많이 쓰인다. 모든 무침, 나물, 찌개를 생각해보라. 많은 음식이 거의 채식 요리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종류의 음식과 달리 한식은 풍부한 맛(된장, 고추장, 참기름)과 식감(깍두기, 백김치)으로 가득해 비건 음식으로 이상적이다. 마지막으로, 한식은 건강에 매우 좋다. 다양한 채소를 발효시킨 음식과 섬유질 함량이 높은 반찬은 장 건강을 촉진한다.”

그는 유튜브 영상에서 채식주의자 남편의 권유로 채식하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채식을 유지하는 건 채식이 건강을 지켜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편을 포함해 독자와 시청자는 당신의 요리법에 어떤 반응을 보이나.

“독자들은 된장을 좋아한다. 나의 가장 인기 있는 요리법 중 하나가 된장찌개다. (한국인도 비건도 아닌) 내 친구 한 명은 일주일에 한 번씩 된장찌개를 만든다고 한다. 남편도 된장찌개, 부대찌개, 순두부찌개, 비빔밥, 부침개를 좋아한다.”

당신의 책이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 책이 사랑받는 이유는 단지 음식에 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라면서 먹은 음식의 채식 버전을 공유하는 것만 아니라 엄마, 아빠, 조부모님의 이야기를 정말 나누고 싶었다. 책에서 보리차 만드는 법을 소개할 때 미국에 있는 한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그것은 사람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을 때 얼마나 비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절망에 직면했을 때 연민과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보일 때 희망을 선택하도록 한다. 한국인이든 아니든, 채식주의자이든 아니든 모두가 들어야 할 메시지다.”

그가 2021년 10월 발간한 <한국 비건 요리책>.

정관 스님 만난 뒤 채식의 진정한 의미 깨달아

조앤의 부모님은 모두 북한에서 태어났다. 조앤의 할머니는 광복 이후 어린 아들을 업고 남한으로 내려왔다. 조앤의 어머니도 어릴 때 한국전쟁 통에 남쪽으로 피란 왔다. 부모님은 197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와 정착했다. 그는 책에서 부모님이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 아버지가 끓여줬던 감잣국, 생일에 먹었던 짜장면, 엄마와 할머니가 차려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자란 기억을 떠올린다.

2019년 한국에 와서 사찰음식의 대가인 정관 스님을 만났다고 했다. 스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인척이 한국 불교계와 인연이 깊어서 사찰음식을 제공하는 장소를 소개받았다. 정관 스님과의 만남은 굉장히 중요했다. 당시 나는 많은 미국인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채식주의를 생각했다. 그건 단지 먹는 방법이나 동물에 대한 것(인식)이다. 물론 이런 것이 채식주의의 중요한 면이지만 단지 부분일 뿐임을 스님이 알게 해줬다. 다시 말해 당신은 ‘나는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지 않는다’로 멈출 수 없다. 당신이 부모님을 대하는 방식은 어떤가? 이웃들에겐? 당신은 버스에서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고 관대한가? 선생님한테는? 스님은 ‘여러분이 다른 것에 해를 끼칠 때, 여러분은 스스로를 해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대화는 많은 면에서 나를 해방시켰다. 채식주의는 더 현명하고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한 큰 한 걸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 그리고 내 주변 세상의 고통, 기쁨, 희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는 책에서도 정관 스님을 만나 느낀 점을 풀어놨다. “정관 스님이 육식을 거부하는 건 지구와 동물에,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가능한 한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인생철학의 연장선에 있다. 정관 스님의 부드럽지만 강력한 메시지는 근본적인 울림을 줬다. 내가 채식주의자가 되는 건 궁극적으로 지구에 작은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고 수십 년의 무질서한 식사 뒤 내 몸을 치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식사는 가능한 한 동물에게 고통을 적게 준다는 걸 안다.”

더 많은 세계인에게 한식 비건 레시피를

한식은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나.

“부모님은 북한에서 태어나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냉면을, 어머니는 만두에 김치 넣는 걸 매우 좋아하신다. 부모님은 결코 태어나고 자란 마을을 볼 수 없겠지만 그 유산은 남아 있다. 내가 만든 음식은 내 마음이고 내 이야기고 나다.”

채식주의자로 살면서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인가.

“내가 직접 만든 김치 한 조각을 항아리에서 꺼낼 때.”

앞으로 계획은.

“두 번째 요리책을 쓰고 있다. 전세계 더 많은 사람이 한국의 비건 레시피를 시도할 수 있도록 유튜브 채널을 키우는 데 힘쓰고 있다. 내 비디오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도 한다. 이런 이야기가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한국 이민자들의 경험에 관한 통찰을 줄 수 있길 바란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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