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이 되면 뭘 먹을까? 모든 동물성 식품(고기, 달걀, 유제품, 생선)을 제한하는 비건식은 ‘무엇을 먹느냐’보다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루 세끼 비건 만두만 먹어도 동물성 첨가물이 없으니 비건 식단이다. 이러니 ‘정크푸드 비건’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됐다.
이타적 동기에 바탕을 둔 비건식이 건강식과 거리가 있다고 해서 딴죽을 걸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건식에 관심은 있는데, 나처럼 건강이나 다이어트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자연식물식’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자연식물식을 영어로 하면 ‘홀푸드 플랜트베이스트 다이어트’(Whole-foods Plant-based Diet)이다. 홀푸드는 ‘자연에서 나온 무첨가 식품’을 말하고, 플랜트베이스트는 ‘식물성 식품 위주’를 뜻한다. 보통 통곡물, 채소, 과일, 콩류, 견과류를 먹는 식단이다. 되도록 정제 식품을 줄이고 가공식품을 첨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생채소랑 현미만 씹어 먹으라는 소리는 아니다.
삼시 세끼 동물성 식품만 먹던 나는 고기는 쉽게 끊었지만, 달걀·유제품·생선은 포기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다큐멘터리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What the health)과 <포크 오버 나이브즈>(Fork over knives)를 보고 나서 완전히 이별했다. 염증을 일으키는 고기 속 독소, 남성의 전립샘암, 여성의 유방암과 상관관계가 높은 우유에 대한 이야기는 동물성 식품을 저절로 끊게 도와줬다. 자연식물식 전문가인 콜린 캠벨, 존 맥두걸 등의 번역서도 도움이 됐다. 책에는 동물성 식품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살펴본 연구들이 인용돼 있다. 동물성 식품 속 단백질이 암·노화 위험을 증가시키고, 체내 산성도를 높여 신장에 과부하를 준다는 내용이다.
그럼 동물성 식품 대신 무엇을 먹어야 할까? 자연식물식 식단 예시를 들면 다음과 같다.
아침 식사: 오트밀, 통곡물 시리얼과 대체 우유, 통밀빵과 아몬드버터
점심 식사: 샐러드, 통밀빵 샌드위치
저녁 식사: 통곡물 밥과 반찬, 통밀 파스타, 비건 카레, 두부/템페와 버섯·가지볶음
간식: 과일, 견과류, 스무디, 두유라테, 각종 차
나는 요리를 못해서 아주 간단한 식단을 이어왔다. 2013년부터 저녁엔 각종 채소를 기름에 볶고 구운 고구마, 토마토, 잎채소를 먹었다. 후식으론 과일 4~5종을 먹었다. 2017년부터는 기름 없이 채소를 삶는 방법으로 정착했다. 요즘은 콩을 넣은 잡곡밥에 채소를 얹어 먹는다. 아침에는 감자, 고구마, 과일, 100% 통밀빵과 커피를 마시고 중간에 과일, 견과류, 두유, 옥수수를 먹는다. 1일 2식을 하지만 하루 2천㎉ 정도는 채운다.
물론 모두 볶으면 끝인 볶은 채소, 삶으면 끝인 삶은 채소, 미리 만들어놓고 얹으면 되는 비빔밥처럼 ‘요리스럽지 않은 식단’을 할 필요는 없다. 약간의 기름이나 조미료를 활용하면 다양한 요리도 가능하다. 한식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유튜브 채널 <서정아의 건강밥상>, 외국 브런치 스타일을 좋아하면 <픽업 라임스>(Pick up Limes)를 추천한다. 직장인이라 평일 저녁에 요리할 여유가 없으면 밀프렙(Meal Prep)이란 단어를 검색해도 좋다. 밀프렙은 주말에 다음 일주일의 식사를 준비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완전 자연식물식’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통곡물도 가공 정도에 따라 구분해서 먹으면 좋다. 귀리만 해도 가공을 전혀 하지 않은 통귀리가 있고, 여러 번 압착하고 쪄서 만든 퀵오트가 있다. 물론 가공하지 않은 식품이 좋지만, 바쁜 현대인을 위해 나온 통곡물 시리얼, 그래놀라, 오트밀 포리지 제품도 나쁘지 않다. 기본적으로 백미랑 밀가루는 피하는 것이 원칙이다.
채소와 과일은 큰 제한이 없으나 과일은 과일주스로 대체하면 안 된다. 혈당을 갑자기 올리는 것이 이런 나쁜 탄수화물(과일주스, 단 음료, 과자, 감자튀김, 인공감미료가 많이 들어간 디저트류) 종류이기 때문이다. 콩과 식물과 견과류는 단백질 섭취에 중요한 식품이다. 대두콩 한 컵에 단백질 30g이 들어 있고, 두부 반컵에는 10g의 단백질이 있다. 견과류 중 땅콩은 3분의 2컵에 26g, 아몬드는 21g, 캐슈너트는 18g의 단백질이 있다. 소금을 친 견과류는 피해야 한다. 견과류와 함께 오메가3가 풍부한 아마씨나 치아시드를 곁들이면 더 좋다.
자연식물식을 할 때 기름과 조미료는 얼마나 제한해야 할까? 소금이나 설탕은 최대한 줄이고, 굳이 기름을 쓴다면 포화지방산 함량이 높은 코코넛오일보다 올리브오일이 훨씬 나은 선택지다. 기름 대신 맛술이나 저염 간장, 소금 대신 마늘, 강황 가루, 양파 등을 활용할 수 있겠다.
나는 간간이 먹던 간식 때문에 100% 자연식물식을 실천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최소 몇 주는 완전한 자연식물식을 체험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그래야지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은 음식 본연의 맛을 알게 되고, 그 느낌에 익숙해져야 나중에 자연식물식에서 조금 벗어나도 금방 돌아올 수 있는 탄력성이 생긴다. 중간에 갑자기 정제 식품이 당겨서 먹더라도, 자연식물식에 가까운 식단으로 복귀하기 쉽다.
자연식물식을 최소 한 달 정도 실천하면 어떤 효과가 나타날까? 닐 버나드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의대 교수는 콜레스테롤, 혈압, 당뇨 관련 수치가 며칠 만에 좋아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 체중 역시 주당 1㎏ 정도씩 감량이 가능하다. 편두통이나 류머티즘 관절염 같은 통증은 개선에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
자연식물식에 바탕을 둔 식단으로 충분한 열량을 섭취하면 영양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칼슘은 우유가 아니라 잎채소, 콩, 통곡물, 견과류만으로도 하루 권장량 500㎎을 넘길 수 있다. 단백질 역시 성인 남성 권장량이 55g, 여성은 45g이라고 했을 때 부족하지 않다. ‘동물성 단백질이 식물성 단백질보다 더 낫다’는 말은 몸 안에서 필수아미노산이 채워지는 방법을 이해하면 오해임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연식물식이나 채식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챙겨야 할 영양제는 ‘비타민 B12’임을 기억하자.
김동현 작가·<풀 파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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