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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비긴

채식 기본에 고기가 옵션이라면

그날 이후 31년간의 채식 생활… 학교 ‘빈 식판 3년’ 뒤 대학·직장에서도 선택권 없어

제1424호
등록 : 2022-07-31 17:18 수정 : 2022-08-02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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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남편과 둘이 먹을 요리는 대부분 내가 먹을 수 있는 식재료에 맞춘다. 미역국엔 소고기 대신 바지락이 들어가고, 카레엔 고기 대신 채소로 채우는 식이다.

“채식주의자랑 살면 불편하긴 하지.”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채식주의자와의 연애’란 글을 읽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채식하는 글쓴이는 육식을 좋아하는 애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글에는 ‘민폐다’ ‘나는 채식주의자랑 연애 못한다’ 같은 댓글이 달렸다. “채식하는 게 그렇게 민폐냐”고 묻자 남편의 대답은 위와 같았다. 몇 년의 연애와 결혼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내가 채식하는 것에 불만을 말한 적이 없던 그의 타박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 정체성을 상기했다. ‘아! 나도 채식하는 사람이었지.’

육식의 이유는 묻지 않으면서
결혼 이전부터 지금까지 집은 내게 ‘육식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가장 무해하고 안전한 공간이었다. 집에서만큼은 ‘편식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에서 자유로웠다. “뭐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까탈스럽게 보이지 않으려 “다 잘 먹습니다”라고 거짓말하지 않아도 되고, “해산물을 특히 좋아합니다”라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며, “저는 육류를 먹지 않습니다”라고 내 식성을 밝히지 않아도 됐다. 그동안 “나이 드니까 고기가 별로 안 당겨”라고 말해오던 남편의 변심 같은 고백은, 그래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는 채식을 지향한다. 고기를 마지막으로 먹은 기억이 초등학교 2학년 때이니 육식을 안 한 지 31년가량 됐다. 생선을 먹는다는 점에서 페스코와 비슷하지만, 달걀·우유 등 유제품은 먹지 않는 점에선 비건과 닮았다. 가죽 제품을 쓰지 않는 등 ‘채식’에 ‘주의’를 붙일 정도로 실천적 삶을 산다고 하긴 어려워 ‘채식주의자’보다는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 정도가 내겐 적당한 표현이다.

‘채식 생활 31년’이면 숱한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가족들도 고기를 안 먹냐” “부모님이 혼내지는 않았냐” “단백질은 어떻게 섭취하냐” “건강은 괜찮냐” 같은 질문부터 “인생의 즐거움 반은 놓쳤네” “남편 밥은 어떻게 하냐” 같은 타박까지 다양한 시선의 압박에 놓인다.

뻔한 질문이 반복되다보니 고정 레퍼토리처럼 답도 절로 나온다. “부모님은 육식을 강요하지 않았고, 콩이나 두부, 생선 등에서 단백질을 섭취하며, 하프마라톤을 뛸 정도로 건강하고, 남편은 고기 먹고 싶을 때 알아서 잘 먹는다. 그리고 심지어 나보다 요리도 잘한다.”

돼지 가슴에 꽂힌 막대
가장 불편한 질문은 ‘어쩌다가 채식하게 됐냐’다. 질문 자체에 채식이 별스러운 일이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육식하는 이유는 묻지 않으면서 채식하는 이유를 묻는 건, 사회가 얼마나 육식 위주인지 보여주는 셈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질문을 받으면 할 수 없이 그날을 떠올려야 한다.

시골 할머니 집 마당에선 명절의 어느 날엔 소가, 어느 날엔 돼지가, 또 어느 날엔 닭과 개가 도축됐다.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사람에게 ‘잡힌’ 동물의 종류에 따라 어떤 날은 담벼락에 소가죽이 널려 있었고, 어떤 날은 큰 고무대야에 닭털이 떠 있기도 했다. 그 어떤 날, 어른들이 닫아둔 창문 틈으로 돼지 가슴에 굵직한 막대가 꽂히는 모습과 “끼익~” 하며 울던 돼지의 소리는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그날 이후였던 것 같다. ‘남의 살’을 먹는 게 거북해졌던 게. 그 충격에 한동안은 식탁에 고기반찬이 오르면, 고기에 닿았던 가족의 젓가락이 내가 먹을 반찬에 닿는 게 싫어서 채소 반찬을 따로 덜어 두고 먹거나, 고기 요리가 담긴 그릇은 설거지하지 않기도 했다.

채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척박했던 예전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예민한 사람” “유별난 사람”이라는 낙인이 따라왔다. ‘민폐’와 ‘예민’이라는 자책 울타리에서 벗어난 건 그로부터 한참 지나서였다. 채식이 공장식 축산에 희생되는 동물과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임을 알게 된 뒤다.

육식의 이유는 개인적이지만, 채식의 이유는 너무나 사회적이다. 어떤 이는 기후위기 때문이고, 어떤 이는 동물권 때문이다. 나처럼 ‘남의 살을 못 먹겠어서’도 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채식 시작 동기로 건강(36.3%)이 가장 높고 동물보호(34.7%), 환경보호(15.1%), 종교적 이유(6.1%), 주변 사람의 영향(2.4%)이 뒤따랐다(이화여대 조미숙 교수팀, 2020). 채식이 민폐라고 매도할 수 없는 이유다.

채식인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시기는 단체급식을 할 때다. 클리셰 같지만, 고등학교 3년 내내 매달 급식비를 똑같이 내고도 내 식판엔 대체로 김치와 맨밥뿐이었다. 고기반찬이 많이 나오는 날 선의를 가진 배식원이 김을 챙겨주면, 급식판 한 칸이 더 채워지는 식이었다. 가장 최악은 고기가 들어간 볶음밥이 메뉴로 나올 때다. 이날은 맨밥조차 먹을 수 없어, 학교 매점에 가서 과자나 김밥을 사먹어야 했다.

육수·채수 표시 없는 식당, 해물찌개에 든 고기
그래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식사 선택권이 생겼다는 생각은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식당 대부분이 육수를 사용하는지, 채수를 사용하는지 표기하지 않는다. 또 메뉴판에 ‘해물’ 찌개라고 적혀 있어 주문했는데 고기가 들어 있어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그래서 매번 물어봐야 한다. “○○○에 고기 들어가나요?” “○○○에서 고기 빼주세요.” “육수 대신 물로 끓여주실 수 있나요?” 밥 먹을 때마다 ‘채식하는 사람’임을 소개해야 하는 스트레스는 기본이다.

이런 육식 위주 사회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해 31년 동안 노하우도 생겼다. ‘빈 식판 3년’이 김·김치·밥만 있으면 배를 채울 수 있는 습관을 만들었다면, ‘채식 직장인 14년’은 고깃집에 가서도 상추에 올린 밥과 쌈장으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게 했다. 최근 대부분 육류 요리뿐인 중국집에서 한 회식에선 게살죽과 자차이(중국식 장아찌)와 물로 포만감을 느꼈다. 31년 채식 생활의 정수였다.

이 글에 달릴 댓글을 예상해본다. “너나 채식해라.” “채식을 강요하지 마라.” “남편이 불쌍하다.”

다행히 가족, 지인들은 채식인과 함께하는 불편함을 잘 다독이고 있다. 고기 요리는 주로 남편이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먹을 요리는 대부분 내가 먹을 수 있는 식재료에 맞춘다. 미역국엔 소고기 대신 바지락이 들어가고, 카레엔 고기 대신 채소로 채우는 식이다. 지인들과 샤부샤부를 먹을 땐 고기를 넣기 전에 내가 양껏 먹을 수 있도록 채소 먼저 익힌다. 채소만 넣은 샤부샤부를 먹기도 한다.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채식이 기본인 식단에 고기를 토핑처럼 먹으면 모두가 행복한 식사 시간이 되진 않을까. 그리고 육식이 기본인 식단이, 육식을 강요하는 사회인 건 아닌지 고민하는 세상이 되는.

글·사진 장수경 <한겨레>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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