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전쟁에 웃는 사람들

등록 2022-04-07 15:40 수정 2022-04-08 01:44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미국은 여전히 무책임하고, 끔찍한 전쟁을 일으킨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여전히 막무가내며,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또한 전쟁을 피하거나 빨리 끝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숨지고 다친 뒤 얻는 승리란

지난 한 달 동안 이 전쟁의 원인과 책임에 대한 이야기가 활발히 오갔다. 나토 등 서방 세력과 러시아의 갈등,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갈등, 우크라이나 내 여러 세력 간 갈등이 복잡하게 얽힌 바탕 위에 전쟁을 일으킨 푸틴의 책임과 동진 정책으로 러시아를 자극한 나토와 미국 서방국가의 책임, 전쟁 준비를 명목으로 시민들의 권리를 제한하며 군사화에 박차를 가한 젤렌스키의 책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이렇듯 복잡한 전쟁의 원인, 전쟁의 책임과는 달리 전쟁이 길어질수록 피해를 입는 이들은 누구고, 이익을 보는 이들이 누구인지는 명확해 보인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이들은 당연하게 우크라이나 국민이다. 패하는 것보다는 승리가 낫겠지만, 많은 것이 파괴되고 많은 이가 숨지고 다친 뒤 얻는 전쟁의 승리가 과연 평화의 모습일까?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브레히트가 시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에 쓴 것처럼 “승전국에서도 하층 서민들은 굶주”린다. 삶의 터전이 황폐화하고, 더 많은 사람이 숨지고 다친다면 전쟁의 지속은 그 자체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패배나 다를 바 없다.

러시아라고 다를까. 현대전은 총력전이다. 전쟁을 치르는 국가는 국가의 모든 재원과 자원, 인력을 전쟁에 집중시킨다. 그 결과 사회의 다른 영역이 약해지고 이 피해는 그 나라의 가난한 이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더욱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주도하는 경제제재까지 겹쳐 국가 부도 이야기가 나오고 생필품 사재기가 일어나는 실정이다. 피해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바깥으로도 확장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져 두 국가의 주요 수출 품목인 밀, 원유 등의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관련 상품 가격이 폭등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 등지에서 밀가루 가격이 1000% 폭등했다고 한다. 부유한 국가는 이런 위기 상황을 견딜 힘이 있지만 가난한 나라는 위기를 이겨낼 여력이 없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이들의 삶은 더욱 큰 위협에 직면한다.

반면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익이 늘어나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무기를 만들고 판매하는 군수산업체다. 키이우에서 전쟁에 저항하고 있는 평화활동가 유리 셸리아젠코에 따르면 미국의 군수산업체 레이시온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주가가 6% 상승했다. 바이든 정부의 국방부 장관인 로이드 오스틴이 레이시온 이사로 있었다. F-35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군수산업체인 록히드마틴의 주가는 14% 올랐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미사일을 수출하는 프랑스 군수산업체 탈레스의 주가는 무려 38% 상승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들 군수산업체의 이익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이기는 게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일어난 전쟁에서 승자는 군수산업체와 몇몇 호전적인 정치인뿐이다. 승전국, 패전국, 주변국 가릴 것 없이 보통 사람들의 삶은 나빠지거나 파괴된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이미 일어난 전쟁이라면 전쟁을 빠른 시일 내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

유리 셸리아젠코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무기와 더 많은 제재, 러시아와 중국을 향한 더 많은 혐오를 통한 갈등의 심화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포괄적 평화회담입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멈추어야 한다.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