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의한다. 대중문화 콘텐츠 속 여성혐오 문제를 다루는 한편, 좋은 작품이 있으면 소개하고 추천한다. 그동안 경험으로 볼 때 선생님들은 최고의 수강생이다. 미리 궁금한 내용을 전자우편으로 보내고, 비대면일 때는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카메라를 켜고, 실시간 채팅에도 활발히 참여한다. 기쁜 마음으로 강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다보면 걱정스러운 현실과 부딪힌다. “교사나 여학생이 페미니스트로 ‘찍히면’ 남학생들이 가만두지 않아요.” “아무리 온건하게 성평등 얘기를 꺼내도 반발이 너무 심해요.”
2021년 5월,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른바 ‘페미게이트’라는 음모론이 퍼졌다. 교사 집단으로 추정되는 지하조직이 ‘페미니즘 세뇌 교육’을 위해 폐쇄적인 웹사이트를 통해 매뉴얼을 공유하며 세뇌에 반발하는 학생들을 따돌리도록 유도했으니 엄중히 수사해 처벌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까지 올라 무려 31만 명 넘는 이들의 동의를 얻었다. 그러나 경찰은 국내 포털 사이트 압수수색, 국외 공조수사 요청 등 두 달간의 수사 끝에 피의자를 특정할 만한 단서가 없고 피해 또한 확인되지 않아 수사 중지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아니, 애초에 그렇게 거대한 음모가 수년씩이나 펼쳐졌다면 이렇게까지 관련자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게 가능할까?
그런데 8월 네이버 웹툰 <참교육>에서 이 사태를 모티브 삼아 ‘잘못된 방식의 양성평등’을 추구하는 지하조직 소속 교사가 초등학생들을 세뇌하고 따돌림을 조장하는 에피소드를 내놓았다. ‘페미게이트’의 증거라며 캡처(화면 갈무리)로 떠돌았던 웹사이트의 내용은 작중에서 거의 그대로 인용된다. 주인공은 문제의 교사를 향해 “이상적인 가치관을 가르치는 건 중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개인을 매몰시키는 건 자칫 파시즘으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라며 ‘일침’을 가한다. 그 교사를 어리석고 추악한 인물로 묘사하고, 페미니즘을 파시즘처럼 왜곡해 그려낸 것은 작가 자신인데도 말이다. “본 작품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라는 안내문이 무색하게, 독자 상당수는 ‘<참교육>이 팩트고 현실은 페미에게 장악되는 바람에 진실을 밝힐 수 없는 것뿐’이라고 굳게 믿는다. “저거 초등학교 페미니즘 사상 주입하려고 초등 여교사들이 사이트 만들어서 정보 주고받고 했던 거 저격하는 거네”라는 댓글은 5만9천 명 넘는 독자의 추천을 받아 ‘베스트’에 등극하며 진실보다 강력한 호응을 얻는다.
지금 여기서 학생들의 삶 고민하는 사람은그러나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최현희 교사는 페미니즘 교육을 세뇌 교육이라고 하는 이들이 페미니즘 자체를 오해하는 한편 교육에 대한 전제 또한 왜곡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가 얼마 전 블로그에 쓴 글 ‘2학년 교실에서의 페미니즘 교육’은 머리를 묶은 남학생을 보고 웃음을 터뜨린 학생들에게 성역할 고정관념 문제를 스스로 깨치도록 질문을 던진 끝에 편견과 차별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게 한 수업에 관한 이야기다. “교실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학생들의 눈빛이 어떤지 그런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학생들은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그것이 교과서 속의 지식과 조금 다른 종류의 배움이라는 것을. 자신의 삶을 파고드는 앎이라는 것을. 삶을 통한, 삶에 대한 공부라는 것을.” 그 마법 같은 순간을 직접 마주해왔기에 쓸 수 있었을 글을 읽으며, 페미니즘 교육 빼고 ‘참교육’ 운운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었다. 지금 여기서 학생들의 삶을 ‘진짜로’ 고민하는 사람이 과연 누구겠냐고.
최지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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