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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잃고 평균 2년 뒤 죽었다

노인문제로 인식했던 고독사, 실제 중장년 남성이 가장 많이 차지 예방 정책 통해 고독사 위험이 관리되는 상황으로 나아가야
등록 2021-11-02 14:12 수정 2021-11-03 10:23
서울의 한 쪽방촌에서 쪽방 이웃들이 무연고 사망한 쪽방 주민의 방을 정리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서울의 한 쪽방촌에서 쪽방 이웃들이 무연고 사망한 쪽방 주민의 방을 정리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고독사’란 말이 언론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사용된다. 드라마, 영화, 하물며 예능프로그램에서도 고독사는 소재가 된다. 이제 고독사는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내 주변, 또는 나와 가까운 일일 수 있다고 체감하기 시작한 건지도 모르겠다.

고독사는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무연고 사망자 통계로 신문과 방송 등 언론에 해설되고 보도됐다. 언론이 다룬 고독사는 집에서 부패한 채 발견된 주검(백골 주검), 가족이 인수하지 않아 지방자치단체에서 처리하는 주검, 숨진 노숙인, 생계를 비관한 가족의 집단자살 등 여러 문제가 포함됐다. 의도적으로 자기 목숨을 끊는 행위와 다르게 고독사는 사망원인으로 따로 분류하기 어려웠다. 고독사 현상에 대한 언급은 많았지만 고독사가 무엇인지 정확한 정의와 통계가 마련되지 않았고, 지자체가 고독사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조례도 모두 노인 고독사만 언급했다. 제대로 된 현황 파악이 시급했다.

고독사란? 무연고 사망, 1인 가구 죽음?

2016년 고독사 실태 파악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 가장 어려운 일은 고독사 통계를 마련하기 위한 자료 수집이었다. 마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에서 ‘한국인의 고독사’ 편(2014년 방송)을 담당한 김명숙 피디를 통해 방송에 활용된 서울시의 변사자 자료를 재분석할 수 있었다.

변사자 자료는 고독사 현황을 파악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다. 경찰은 병원이 아닌 집, 도로, 하천, 야산 등에서 발견된 주검의 사망원인을 파악하고 일지를 작성한다. 일지에는 사망자의 일반적 사항(성별·연령·가족사항), 주거 특성, 숨질 당시 주변 정황, 주검의 부패 정도, 최초 신고자, 이웃 증언 등이 쓰였다. 변사자 기록에서 형사사건을 제외한 뒤 일정한 기준을 적용하면 고독사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장 전문가들과 합의할 수 있는 고독사의 정의가 필요했다. 특수청소업체 관계자, 노숙인지원기관 관계자, 1인 가구 연구 전문가 등과 함께 고독사를 어떻게 정의할지 논의했다. 고독사를 무연고 사망자와 동일하게 보긴 어려웠다. 무연고 사망자는 혼자 숨지지 않았더라도 연고자가 주검을 인수할 형편이 되지 않아 인수를 포기하는 경우, 병원이나 시설에서 숨진 경우 등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모든 1인 가구의 죽음을 고독사라고 하기도 어렵다. 숨진 다음 즉시 가족과 지인이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혼자 살다가 혼자 숨지고 일정 기간이 지나 발견된 죽음’으로 고독사를 정의했다.

이제 ‘일정 기간’에 대한 답을 구해야 했다. 그때 검토한 자료를 바탕으로, 주검의 부패 정도에 따라 분류했다. 주검은 계절과 실내 온도에 따라 부패하는 정도와 특성이 다르다. 평균적으로 1~2일 시간이 지나면 주검이 건조하기 시작하고 3~4일부터는 부패와 팽창이 시작돼 침습이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냄새와 구더기 등이 생겨 이웃이 신고하게 된다.

일본 사례도 검토했다. 일본에서는 정부의 정확한 정의와 통계는 없었지만 ‘고독사’와 ‘고립사’라는 용어를 썼는데 ‘일정 기간’에 대해 일주일, 한 달 등 일관되지 않은 집계 기준을 사용했다. 연구에 참여한 관계자들과 논의해 ‘일정 기간’을 주검이 ‘부패 팽창해 변형되기 시작하는 시기’(통상 3일)로 잡았다. 이유는 그때부터 냄새 등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이웃이 인지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오래된 주택가 좁은 골목. 서울에서 오래된 주택가, 고시원·쪽방 밀집 지역,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등에서 고독사가 많이 발생하는 등 ‘지역화’ 경향이 감지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서울의 한 오래된 주택가 좁은 골목. 서울에서 오래된 주택가, 고시원·쪽방 밀집 지역,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등에서 고독사가 많이 발생하는 등 ‘지역화’ 경향이 감지되고 있다. 한겨레 자료

50대 36.2%, 남성 84.6%

이런 정의를 적용해 변사자 기록 가운데 △혼자 거주 △거주지 사망 △주검 부패 등에 모두 해당하는 사례를 분류했다. 2016년 서울시 변사자 자료로 분석한 고독사 통계는 총 162건으로 집계됐다. 연령별 비율은 50대 36.2%, 60대 19.7%, 40대 21.1%였는데 남성 비율이 84.6%로 높았다. 발견된 주거지 형태는 다세대(다가구), 아파트, 원룸, 고시원, 쪽방 순이었다. 최초 발견자는 집주인, 이웃, 가족 차례였다. 서울시 자치구별 특성, 1인 가구 특성과 연계해 1인 가구 수와 기초생활수급자 수와 관련성이 있음을 확인했다.

이에 ‘서울시 고독사 예방 종합계획’을 세우고 매년 고독사 실태조사를 하도록 정했다. 이 계획에 따라 2021년 실시한 ‘고독사 위험계층 실태조사’에서도 중장년, 남성, 다가구주택 거주, 집주인이 주검 발견 등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50대가 가장 많던 것(2016년 고독사 통계)에서 60대 초반으로 조금 연령대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50대와 40대도 고독사 위험계층으로 분석됐고 남성이 대다수였다. ‘고독사 위험계층 실태조사’는 2020년 장례비 지원을 받은 기초생활수급자(장제급여 수급자)를 분석한 결과다.

이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주로 노인문제로 인식했던 고독사가 실제 중장년 남성에게서 나타났다. 혼자 사는 중장년 남성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변사자 기록과 장제급여 기록에서 확인한 고독사 사망자의 주요 특성은 다가구, 고시원, 쪽방 등 취약한 주거환경이다. 집 안에는 술병, 말라붙은 밥, 식사한 흔적이 아예 없거나 쓰레기 더미가 발견됐다. 일상 관리가 어려웠다. 혼자 살았지만 이혼·별거했거나 멀리 사는 가족이 있었고 가족관계 단절을 예상할 수 있었다. 중장년 남성의 외로운 삶과 죽음의 일부를 엿볼 수 있는 자료였다. 이 죽음이 가리키는 사회적 맥락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지역적 관점 견지해야

2021년 고독사의 사회적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현장연구의 결과를 공유하려 한다. 서울시 장제급여 수급자 가운데 1인 가구이며 집에서 숨진 사례를 따로 추려 ‘서울시 고독사 위험계층’으로 분석했더니 모두 978건이 확인됐다. 이 중 21.3%가 사망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운 불상의 시신으로 분류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세계가 공유하는 사인 분류 체계를 만들어두고 있다. 하지만 사인이 분류되지 않았거나 주검을 직접 검수해 사인을 분류하지 못한 경우에는 주변인을 인터뷰해 임상적 원인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구두 부검’하거나 사망자의 소득·학력이나 가족·이웃 등과의 관계를 두루 살피는 ‘사회적 부검’ 방식으로 사인을 분류하도록 하고 있다. 사회적 부검 사례로는 미국 시카고의 폭염에 대한 사회적 부검, 인도 펀자브주 농촌 지역 성인의 사망원인 분석 등이 있다.

서울시 고독사 현장연구 역시 이러한 사회적 부검 방식으로 진행했다. 최종적으로 사례 9건을 분석해 고독사의 사회적 원인을 도출했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서울의 고독사는 점차 지역화하고 있었다. 사망자가 발견된 주거지 현장을 상세히 답사했다. 오래된 다가구주택이 있는 골목길, 고시원과 쪽방이 밀집된 지역,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서 고독사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화’ 경향이 감지됐다. 과거에 골목은 아이들의 놀이터고 이웃의 휴식처였지만, 대도시의 싼 임대료를 찾아 흘러 들어온 사람들이 머무는 주택의 좁은 골목은 혹여 누군가 혼자 숨지지 않았을까를 염려해야 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둘째, 사망자들은 급격한 삶의 몰락을 경험했다. 고독사한 중장년은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건강을 잃고 일터를 잃는 순간 급격히 삶이 무너져서 숨졌다. 현장연구 사례들을 통해, 고독사한 이들이 질병 발생 뒤 직장을 잃고 짧게는 6개월, 길게는 4년, 평균 2년 안에 숨진 것을 확인했다. 병이 생기거나 아파도 끝까지 버티다가 일을 그만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자리를 잃고 노동능력 없음이 확인되고서야 이들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지 수개월 또는 일주일 뒤에 사망하기도 했다. 노동현장에서 휴식, 휴직 등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의 처참한 삶의 종착이 고독사일지 모른다. 50대 중장년은 아파도 며칠만 일하면 소득이 잡혀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다. 제도적 한계로 인해 생계급여 등 도움을 늦게 받는 바람에 상황이 악화된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셋째, 이들은 고립돼 있을수록 도움을 거부했다. 당장 배가 고프거나 질병으로 아파서 도움이 필요해도 스스로 삶을 지탱해왔던 자기효능감과 자부심을 놓고 도움받을 수는 없었다. 고립과 도움 거부는 자기방임으로 이어졌다. 노인문제로 인식했던 자기방임이 중장년, 청년에게서도 나타났다. 이들은 스스로를 방치함과 동시에 불결한 환경에서 생활하며 주변에서 낙인과 질타의 대상이 됐다. 낙인찍히면 더 고립되는 악순환은 위험하다.

이러한 사회적 원인 분석을 바탕으로, 고독사 문제에 접근할 때 지역적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임대료가 낮은 도시 공간의 취약성에 대한 접근으로 문제의식을 확장해야 한다. ‘관리되는 지역’이라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의 사회안전성 문제가 심각하다. 지자체는 소득이 간헐적으로 생기는 일용직 가운데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신청자나 수급 탈락자에게 주목해야 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 긴급히 지원할 수 있도록 생계급여 지원 기준을 완화하고 응급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집에서 홀로 만성질환을 감당하는 개인을 위한 지원이 확충돼야 한다. 만성질환, 알코올중독,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재택치료를 받을 경우 왕진 확대, 만성질환자 자조 모임, 재택 호스피스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 고립돼 지원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섬세한 서비스 제공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충분한 정보와 상황 인식 없이 그냥 지원을 거절한다면 설득과 관계맺기를 통해 돌봄 지원 체계(찾아가는동주민센터(찾동), 복지기관 등) 내에서 보호받도록 유도해야 한다.

고독사, 위험성을 설명하는 주요 지표

6년간 고독사와 사회적 고립을 연구해오면서 고독사는 우리 사회의 위험을 설명하는 주요 지표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2021년 4월부터 시행된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고독사 예방이 제도화됐다.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돌봄 없이 홀로 숨지는 사례는 당연히 늘어날 것이다. 정부의 예방 정책을 통해 고독사 위험이 관리되는 상황으로 변화해야 한다. 나아가 불상의 죽음이나 평균치를 벗어나는 ‘이상 죽음’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정부에서 실시하는 역학조사뿐만 아니라 사회적 원인 분석이 요구된다. 죽음에 대한 사회적 위험의 양상을 파악해야, 새로운 위험에 대응할 수 있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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