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의 노동운동은 어쩌면 달라 보인다. 블라인드 앱에 글을 올려 시위를 만들고, 서로 누구인지 모른 채 노동조합을 꾸릴 수 있다. 조합 상근자 대신 ‘스탭’이라고 서로를 이른다. ‘위원장을 맡는다’는 문장 대신 ‘총대 멘다’고 적는다. 상급단체를 두지 않는 개별 노조로 시작했다. 노조 없이도 운동은 가능하다. 보상체계의 공정성을 따진다. 사회적인 가치보다 조합원과 나의 이익에 집중한다.
MZ의 노동운동은 사실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노동자를 “소모품 취급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분노한다. 회사 이익을 공정하게 분배하라고 요구한다. 미래를 불안해한다. 필요하다면 다른 노동자와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하며 부조리를 깨달았다. 모여서 항의했다.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MZ세대가 주도해 설립한 사무직 노조 위원장, 민주노총에 속한 MZ세대 조합원의 목소리를 들었다. 달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생애 내내 이들이 보아온 노동의 풍경은 전과 달랐으므로.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의 불안은 산업혁명 때나 4차 산업혁명 때나 달라지지 않았으므로.
이전과 다른 노동환경, 하지만 같은 불안을 안고 MZ세대는 곧 노동자의 주류가 된다. 노동운동의 흐름을 만든다. MZ세대 노동운동의 모습과 배경을 살폈다. _편집자주
“우리도 햇빛을 보고 싶다네/ 꽃 냄새도 맡아보고 싶다네/ 우리는 8시간만 일하려 하네/ 조선소에서, 점포에서, 그리고 공장에서”(1886년, 미국 노동자 파업에서 불린 노래)
안그라미는 36살. 굳이 물어보면 쑥스럽게 “엠제트(MZ)세대에 겨우겨우 속한다고 해야 할까요”, 말할 뿐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 노동조합에서 공공기관 사업국장으로 일한다. 주로 공공기관 청년 조합원을 만나고, 모임을 꾸리고, 대화한다. 그는 MZ세대에 속하나 세대를 대표할 수 없다. 민주노총에서 일하나 민주노총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없다. 다만 생각한다. 135년 전 당연했던 ‘우리’, 조선소에서 공장에서 점포에서 일하는 모두를 이르는 단어였던 ‘우리’는 지금 MZ세대에게도 가능할까. 1886년에 불렀던 노래처럼 우리가 같이 부를 만한 노래가 지금도 있을까. ‘나’만 남기를 종용하는 모든 조건 앞에 끝내 ‘우리’를 포기할 수 없어 전전긍긍한다.
10월20일 오전 11시,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는 3시간쯤 남았다. 코로나19 유행 와중에 총파업이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는 차벽이, 밭을 땐 5m 간격으로 섰다. 광화문역 앞에 선 경찰은 “무정차 역입니다” 정중히 안내한다. 이날 민주노총은 ‘5인 미만 사업장 차별, 비정규직 철폐’ ‘모든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 ‘돌봄·의료·교육·주택·교통 공공성’ ‘산업전환기, 일자리 국가책임제’를 구호로 내걸었다. 조합과 조합원의 이익을 넘어 2021년 ‘우리 모두’가 처한 문제를 주로 말했는데, 그 외침을 적은 언론 기사는 많지 않다.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위반했다는 익숙한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그런 파업을 앞두고 안그라미는 조합원을 생각한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은 25만 명에 이른다. 공장 노동자가 주를 이루는 금속노조 등을 앞지르며 어느덧 민주노총 최대 산업별(산별) 조직이 됐다. 조합원은 다채롭고 이질적이다. 절반은 정규직이다. ‘신의 직장’으로 부르는 공공기관 정규직도 있다. 절반은 비정규직이다. 사용자가 누구인지조차 불분명한 화물운전자, 택배기사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도 있다. 통신사 사업장처럼 원래 공공기관이었으나 민영화된 큰 사업장이 적잖고, 공공부문 노동자와 민간부문 노동자가 절반 정도씩 고루 섞여 있다.
이 복잡한 구성에는, 당연히도 2000년대 이후 복잡해진 노동형태가 고스란하다. 노동과 노동조합의 주요 공간은 비교적 단일한 노동자로 구성된 대공장에서 사무실, 매장, 골목, 트럭, 플랫폼 애플리케이션 따위로 넓어졌다. 민주노조 운동이 한창이던 1992년 제조업은 전체 업종 고용의 26.2%를 차지했다. 이 시기 “고생산성 고임금 체제가 성립되었고 노동시장에서 완전고용 체제와 더불어 내부 노동시장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배규식 외, <87년 이후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2020년에 이르면 제조업 고용 비중은 16.2%로 줄었다. 대신 전체 고용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0.2%로, 1992년 48.6%보다 크게 늘었다. 서비스업은 하나의 업종으로 이를 수 없다. 그저 ‘공장 바깥’, 혹은 ‘1990년대 노동운동과 함께 성장한 내부 노동시장 바깥’이라는 의미 정도를 가지고 있다. 고용형태, 노동공간, 소득수준, 노동시간 등 모든 조건이 천차만별이다. ‘사’ 자 들어가는 전문직도, 작은 가게 아르바이트 노동자도 모두 서비스업 노동자다. 물론 제조업에서도 노동시장은 달라졌다. 세계화와 시장화 속에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목표로 삼으면서 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생산구조가 자리잡고 저임금 노동자가 늘어났다. 일터에서의 ‘우리’는 서로 달라졌다. ‘나’만 남게 됐다.
물론 그 와중에도 노동조합은 존재했다. 다만 “공간적으로 기업 내부에 갇혀 있는가 하면 이념적으로는 실리주의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 이중적인 폐쇄구조”(이정희 외, <노동조합의 사회적 위상과 미래 역할>)였을 따름이다. 이미 쟁취된 내부 노동시장의 안정 속에서 누군가는 굳이 노동조합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연대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노동조합은 잘 보이지 않았다. 2018년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왜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가 물었을 때, 정규직 65.4%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라고 했다. 같은 질문에 비정규직 77.5%는 ‘가입 자격이 없어서’라고 했다(정흥준 외, <고용관계 다변화와 노동자의 이해 대변>).
1980년대 후반 노동자 대투쟁 속에 청년기를 보낸 조합원이 아직은 노동조합의 주를 이룬다. 50대 조합원 비중은 16.3%(2010년)에서 25.8%(2020년)로 증가했다. 다만 그들은 곧 은퇴한다. 같은 기간 20대 이하 조합원은 14.3%에서 11.7%로 줄었다.(이주환, ‘2010년대 한국의 노동조합 조합원’) 이질적인 노동환경에 처한 청년을 아우르지 못해 노동조합이 위축되리라는 공포는 우리만의 것은 아니다. 유럽노동조합연맹(ETUC)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늘어나는 플랫폼노동, 임시직, 실직 탓에 유럽의 노동조합이 향후 10년간 조합원 1100만 명(전체 조합원의 26%)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회사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가입되는 노동조합의 시대는 끝났다. 조합은 사업장을 나가 젊은이들이 공부하고 일하는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ETUC, ‘The Future of Youth’)
나만 생각해야 하는 노동환경과 그 앞에 무기력한 노조를 밀레니얼세대(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 태어난 세대)라면 학창 시절부터, Z세대(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태어난 세대)라면 태어났을 때부터 겪었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전국공공운수노조·사회공공연구원, ‘청년 조합원에 대한 이해와 노동조합의 과제’)에서 나타난 청년 노동자의 인식은, 그러므로 놀랍지 않다. 조합원 2685명에게 물었더니 ‘노동조합이 사회적 가치보다 조합원 권익에 집중해야 한다’는 권익 지향에 가까운 응답이 34살 이하인 경우 72.7%였다. 35~49살(60.8%), 50살 이상(51.4%)은 그보다 다소 낮지만 모두 높은 편이다. 다만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34살 이하 조합원은 51.2%였다. 35~49살(26.3%)과 차이가 크다. 노조가 연대보다 나를 위한 이익집단이길 바라는 인식은 같은 시대를 겪는 다른 세대와 공유하되, 좀 더 견고하다. 나와 관련한 주제(정규직화) 앞에서는, 두드러지게 예민하다.
“청년보다 먼저 변해야 하는 건 노동조합”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MZ세대, 이윽고 노동자의 주류가 될 세대의 이질성 앞에 노동조합은 혼란하기만 하다. 세상에는 노조의 힘이 필요한 젊은 불안정 노동자가 숱하게 있고, 심지어 늘어난다. 그들을 찾아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반면 노조 안에는 조합원의 이익만을 챙기라는 젊은 조합원이 있다. “사회적 가치보다 조합원 권익을 말하는 청년을 이기적인 세대라고 말해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세대의 문제라기보다 시대의 문제로 바라보는 게 더 의미 있을 거예요.”(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시대의 문제로 바라본다면, 역시 ‘우리’를 되찾는 길뿐이다. 전문가들이 노동조합이 기업 내부, 실리주의를 넘어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이유다. “조합원들의 경제적 이익 중심의 대표활동을 해왔던 한국의 노동조합이 앞으로 공장의 경계를 넘어 시민으로까지 대표의 대상을 확장”(<노동조합의 사회적 위상과 미래 역할>)해야 한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역할이 조합원 보호이기는 하지만, 그저 이익단체라면 노동조합에 구체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다른 단체와 달리 특별 대우할 이유가 사라진다. 일정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쥐여준 권리다”라고 말했다.
나를 생각하는 청년에게 우리를 말하는 것, 만만찮은 일이다. 안그라미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청년들을 만나면서 깨달은 건 있다. “청년보다 먼저 변해야 하는 건 노동조합”이다. “갑자기 세상을 위해 노동조합 가입하는 사람은 없어요. 내 이익을 위해 활동하다보니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의 일을 듣게 되고, 같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구나 깨닫는 계기가 생기는 거죠.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노동조합의 역할이잖아요. 예전처럼 연대하는 게 어렵고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라면 더 설득하고 더 이야기했어야 해요.” 그걸 노동조합은 못했다.
청년 조합원은 맥락을 알 수 없는 연대활동에 동원되거나, 블라인드 앱에 불만을 적을 뿐이었다. 한 사업장에서 일해도 알기 어려운 다른 노동자의 처지나 상황은 미디어를 통해 추상적으로 알게 될 뿐이다. 때로 내 자리를 빼앗기리라는 불안에 노-노 갈등의 한편에 자리잡았다. 그런데 다만, 여전히 닮아 있는 부분도 있었다. “비정규직도, 공기업 취업 준비 중인 10살 터울 내 동생도, 심지어 공기업에 취업한 정규직 조합원들도 모두 불안”(안그라미)했는데, 그 불안에는 밀려나는 순간의 비참함에 대한 상상이 크든 작든 자리잡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비정규직이 되지 말고 공기업·대기업에 입사해야 한다고 주입받았으니까요.”(김우식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그러므로 어쩌면 불평등과 격차, 그 아래쪽에 놓일지 모른다는 불안은, 너무 다른 MZ세대가 그나마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구호일지 모른다. 민주노총은 이날 총파업의 전체 구호로 ‘불평등 타파! 평등 사회로 대전환!’을 외치기는 했다. 진부했으나, 중요했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1886년의 미국, 더 나아가 세계 노동자가 ‘8시간 노동’의 노래를 함께 부르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한 사람이 9시간 노동해서 경쟁력을 키운다. 그 옆 사람은 10시간 노동해서 경쟁력을 키운다. 11시간, 12시간…. 모두가 자신의 시장 경쟁력을 불안해하며 몸을 망가트린다. 승자의 자리에서도 햇빛을 볼 수 없고, 꽃 냄새를 맡지 못했을 것이다. 시대는 변했고 사회는 한층 복잡해졌다. 다만 나를 넘어 우리가 함께 노래해야 할 이유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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