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역대급 재개발 한남3구역의 장밋빛 내일 잿빛 오늘

‘단군 이래 최대의 재개발’이자 한없이 느린 도시정비 지역 한남3구역,
욕망과 불안의 풍속도 속 사람들
등록 2021-08-23 22:21 수정 2021-08-24 10:54
서울 용산구 재개발 예정 지역인 한남3구역의 빈 집에 관리구역임을 알리는 표지가 붙어 있고 페인트로 ‘X’자가 새겨 있다. 박승화 기자

서울 용산구 재개발 예정 지역인 한남3구역의 빈 집에 관리구역임을 알리는 표지가 붙어 있고 페인트로 ‘X’자가 새겨 있다. 박승화 기자

서울 용산구,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넓은 산등성이에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개발해야겠네, 잘되면 대박이겠다, 평당 1억 넘겠는데, 사놓을걸’을 속으로나마 읊조리는 게 어색한 일은 아니다. 죄책감을 느낄 일도 아니다. 다들 그렇다.
재개발될 그 땅, 한남3구역에 선엽씨가 산다. 50여 년을 세입자로 살았다. 고양이 까망이 3대를 돌봤고 이웃이랑 저녁을 먹었다. 비 새는 집은 그냥 견딘다. 그 땅에 형주씨는 투자했다. 정부가 빚내라고 해서 빚내어 8평 건물만 샀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개발 진행에 울분을 토한다. 그 땅에 종성씨가 물려받은 집이 있다. 그 집은 약속된 희망이다. 집을 떠나 전세자금 마련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그 희망 하나로 버틴다. 이 모든 처지는 그것대로 평범하고, 그것대로 지난하여 누구 하나 악인이라고 부를 수 없다. 다만 종성의 희망이 실현되는 날 선엽은 쫓겨난다. 선엽이 버티면 형주는 다시 분노할 것이다.
서울 재개발·재건축은 부동산 가격 상승을 따라 다시 뜨겁다. 철거를 동반할 것이다. 철거 앞에 예전 같은 통곡은 잘 들리지 않는다. 새로 들어설 아파트가 수십억원일 게 당연한 마당에 전세 3500만원짜리 집 잃은 고통을 호소하는 일은 생뚱맞다. 분노는 퍼지지 않는다. 투자해 부를 불리는 건 모두의 평범한 바람이라는데, 그 모두를 향해 분노를 쏟아낼 수도 없다. 무엇보다 통곡과 분노는 이 뜨거운 부동산 시장에서 ‘저 집을 가질 수 있느냐’를 둘러싸고 할 이야기이지, ‘저 집에 마음 편히 살 수 있느냐’를 두고 할 말은 아닌 게 됐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다들 그러하여, 거기 들지 못하는 누군가 슬픔마저 빼앗겼다.
이어질 글은 그런 도시, 서울의 2021년 평범한 날들과 그 이후를 담았다._편집자주



*한겨레신문사 주최 공모 한칼 당선자의 글

경의중앙선 한남역을 나와 왼쪽으로 두 번 정도 길을 건너면 ‘뉴타운 급매물’ ‘급매물 다량 확보’ ‘재개발 소액투자 전문’ 같은 글귀가 넘친다. 부동산 옆 편의점, 다시 부동산 그리고 통닭집, 또 부동산, 한 집 걸러 하나꼴로 있는 부동산은 살 집 아닌 매물을 자랑한다. 그 사이로 좁은 골목이 뻗어 있다.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든 낡고 허름한 집을 만난다. 급매물, 소액투자는 이 집들의 미래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남뉴타운 중에서도 한남3구역이 시작되는 이 지점,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무성한데 현재에는 무심하다.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은 한남뉴타운으로 개발될, 구역 이름 앞에 숫자가 붙은 한남·보광동 땅 가운데 가장 넓다. 39만3729㎡. 한강을 등지고 한남3구역 왼쪽으로 한남4·5구역이 차례로 늘어서 있고, 위쪽으로 한남1·2구역이 붙어 있다. 서울의 중심, 한강과 맞붙어 있는데 넓기까지 하다. 대단지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선 뒤 미래 가치를 기대하는 건 당연하다. 한남3구역 총사업비 규모는 7조원, 아파트를 짓는 데만 2조원이 들 거라고 추정한다. ‘역대 최대 재개발’, 구태여 더 강조하고 싶은 이들은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이라고 한다.

화려한 수식과 상관없이, 어쩌면 그 수식 탓에 오늘의 풍경은 허름하다. 좁은 골목을 따라 구역 안으로 들어가면 얼마 걷지 않아도 숨이 차오른다. 비탈에 서서 숨을 돌리면 낡은 집들이 즐비하다. 벽에는 균열이 예사고, 유리는 깨지고, 문은 녹슬었다. 이렇듯 초라하므로 숫자를 셈하며 이 동네에 도래할 장밋빛 미래를 논하던 이들도 현재에 관해서라면 “거기는 지금 사람 살 데가 못 돼요” 하고 만다. 어차피 철거될 집들이니까 관리하지 않는단다. 이 동네 뉴타운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게 2003년부터이니, 이런 채로 20년 가까이 지냈다.

① 거주자: 나이가 들수록 경사 가파른 윗동네로

“언제고 밀어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 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버리는 것이 아닐까.”(황정은, <百의 그림자>)

사람 살 데, 라는 말을 곱씹으며 금이 간 시멘트길을 10분 넘게 올라 한남3구역 가장 높은 곳, 도깨비시장에 이르면 생각을 고쳐먹게 된다. 시장의 풍경은 여느 곳과 같아서 ‘아, 여기 사람 사는 동네구나!’ 실감한다. 주황색, 파랑색 쨍한 원색 나일론 비닐로 공간을 구분한 가판대 위에 페트병에 담은 쌀, 유리병에 담긴 참기름, 한 단씩 쌓은 대파, 붉은 망에 담긴 양파가 놓여 있다. 그러고 보니 올라오는 길마다 구멍 나고 갈라진 집들을 노란 바닥 장판과 반토막 난 벽돌, 우레탄폼 따위로 메우고 때운 흔적이 보였다.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한 풍경이다.

도깨비시장에 있는 부동산은 뉴타운 급매물 대신 ‘살 집’, 전·월세 물건을 소개한다. 귀가 어두운 나이 많은 공인중개사는 손수 집들의 면면을 적는다. ‘전세 3000만원, 한광교회 앞쪽 보광동, 방 1칸, 6월 하순’ ‘방 2칸 월세 500/35, 보광동 골목길 2층, 즉시 입주 가능’. 떨리는 손으로, 그래도 또박또박 적었다. 보청기를 껴도 잘 듣지 못하는 그이지만, 낯선 서울에서 몸 뉠 곳을 찾는 이방인들은 끊임없이 그에게 어디 살 만한 집 없느냐고 묻는다.

도깨비시장 왼쪽 좁은 계단 밑에 선엽(75·가명)씨 집이 있다. 원래 살던 데는 이렇게 높지 않았는데 나이 들고 벌이가 줄수록 점점 경사가 가파른 윗동네로 밀려왔다. 더 높을수록 더 낡을수록 임대료가 싸다. 나이 들어 체력이 떨어질수록, 병원에 갈 일이 많아질수록 선엽씨는 평지에서 멀어졌다. 이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서울시 소유의 땅 위에 지은 무허가 건물인데 단층주택 하나를 좌우로 옆집과 나눠 쓴다. 옆집은 전용면적 기준 27㎡, 선엽씨 집은 34㎡. 전세보증금은 3500만원이다.

등기는 먼 데 사는 사람들을 거쳐

한 번도 집을 가져본 적 없대도 선엽씨는 한남3구역 터줏대감이다. 이 동네에서만 무려 50년을 살았다. 처음 한남동에 정착한 건 20살을 갓 넘긴 1970년대다. 엄마와 오빠, 언니 둘과 서울에 처음 자리잡은 곳이 이 동네다. 태어난 데는 전남 진도인데, 얼마 전 진도에 사는 작은언니를 만나러 갔다가 깨달았다. 밤이고 낮이고 환한 도시에만 있다가 해가 지면 사방이 깜깜해지는 동네에 가니 영 낯설고 불편했다. 서울 사람이 다 돼 있었다.

50년이라니, 돌아보면 긴 시간이다. 사는 데도 한남동, 일하는 데도 한남동이라서 시간에 쌓인 기억은 모두 한남동을 배경으로 한다. 동네에서 20년 넘게 ‘럭키포차’라는 작은 주점을 운영했다. 아는 언니가 자기 건물 지하가 비어 있다며 가게를 차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해서 시작했다. 주점에 오는 사람들은 대개 동네 사람이었다. 저마다 일을 마치고 삼삼오오 그의 가게로 모였다. 선엽씨는 전을 부치고 골뱅이소면을 무쳤다. 그렇게 번 돈은 “딱 나 하나 먹고 쓰기 적당한 정도”였다.

물론 럭키포차는 가게 보증금, 권리금, 임대료를 올려달라는 건물주 요구 때문에 동네 안을 떠돌았다. 네 번째 옮긴 자리의 건물주마저 임대료를 올리겠다고 했고, 3년 전 딱 가게의 역사만큼 늙어버린 채로 장사를 그만뒀다. 한남동 럭키포차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래도 김치전 냄새랄지, 잔 부딪는 소리랄지, 하는 것은 선엽씨 기억에 남아 있다.

2000년대, 한남뉴타운 이야기가 나오고부터 동네는 변해왔고, 최근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먼저, 집이 비어갔다. 선엽씨네 집 골목에 있는 집 8채 가운데 6채가 빈집이다. 오랫동안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철문 틈에 각종 독촉장과 고지서가 빼곡히 쌓이다 못해 흘러넘친다. 누렇게 축 처진 종이 표면엔 하얗고 작은 먼지다듬이가 빠르게 움직인다. 그리고 빈집에 주인이 생기고 재빨리 바뀌었다.

선엽씨 집만 해도 못해도 30년은 돼 보이지만 등기는 2004년에야 나왔다. 그 집은 등기 소유권을 인정받자마자 1958년생 부산 거주자한테 팔렸다. 지금은 서울 성북구 길음동의 한 부부가 소유한다. 사들인 뒤 개발을 기다릴 뿐 굳이 집을 고쳐 세입자를 받을 생각은 없는 집이 늘어난다.

선엽씨네를 보면 집주인의 무관심이 여실하다. 집 가운데 주방을 축으로 좌우에 방이 하나씩 있는데, 방 두 칸 중 한 칸에선 1년 365일 물이 샌다. 하필 새는 곳도 정중앙이다. 덕분에 방 한가운데는 항상 대야 차지다. 노상 그 방은 옷방으로 써야 한다. 고쳐준다던 집주인은 감감무소식이다. 이렇게 철거 때까지 버티려는 모양이다. 무던한 선엽씨는 그러려니, 체념한다. 물이야 받아내며 살면 그만이다. 다만 걱정인 건 20년째 동네에 말만 무성하던 재건축이 곧 실현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② 투자자: 빚내서 산 8평 무허가 주택

“재개발 착공일이 불투명하고, 건설 기간만도 1년이 걸리는 상황에서 새로 지을 아파트의 방 한 칸에 입주할 수 있는 세입자 가구는 거의 없다.” (조은·조옥라, <도시빈민의 삶과 공간>)

투자자들한테 한남동은 개발이 더딘 땅으로 악명 높았다. 도시정비사업은 통상 ‘①정비구역 지정→ ②추진위원회 구성→ ③조합 설립→ ④사업시행계획 인가→ ⑤시공사 선정→ ⑥관리처분계획 인가→ ⑦이주·철거·착공→ ⑧준공→ ⑨이전 고시 및 조합 청산’ 순으로 이뤄진다. 아파트를 짓는 공사 기간은 2~3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정비구역 지정부터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까지 10년 가까이 걸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수백에서 수천 명의 이권이 달렸고 그 처지가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한남3구역은 조합원 수만 4천여 명에 이른다. 2003년 뉴타운으로 지정되며 개발에 시동을 걸었는데, 조합설립일(2012년 9월)을 기준으로 삼아도 10년이 흘렀다.

그 지지부진하던 한남3구역 재개발이 최근 들어 빨라졌다. 시공사를 선정하고 감정평가를 마친 뒤 조합원 분양신청을 받는 등 ⑥관리처분계획 인가 전 단계를 진행 중이다. 2021년 7월 조합원 분양신청까지 마쳤다. 어느 정도 사업의 윤곽이 드러났다는 얘기다. 이전과 차원이 달라질 만큼 올라버린 서울 부동산 가격, 그러므로 당연하게 높을 분양가에 대한 기대감이 동력이 됐다. ‘한남 디에이치 더 로얄’이라는 ‘하이엔드 브랜드’가 적용된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공인중개사들은 새 아파트만 들어서면 평당 가격 1억원은 기본이요, 강남 집값을 추월할지도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형주(69·가명)씨도 그 열풍에 올라탔다. 선엽씨가 사는 곳과 비슷한 8평 무허가 주택을 빚내서 샀다. 토지 지분은 없고 건물만 달랑 있는,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이다. 가장 적은 돈으로 조합원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재개발 매물이었다. 빚으로 하는 투자를 마음먹은 건 2014년이다. “빚내서 집 사라”는 정부의 조언과 한남동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서울 토박이의 직감이 만났다. 서울에서 나고 반포동, 금호동, 흑석동 등에서 자란 만큼 한남동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그는 자부한다.

한남3구역은 1970~80년대 무허가 주택이 마구잡이로 들어서며 달동네가 됐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사는 부자 동네였다. 개발이 되기만 하면 교통의 요지이자 앞으로는 한강, 뒤로는 남산을 낀 배산임수 입지의 부촌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형주씨는 확신한다. 이듬해 빚내서 아내와 딸 이름으로 금호동 아파트를 샀다. 그리고 상대적인 소액(3억원)으로 한남3구역 매물도 일단 사들였다.

하늘에서 바라 본 한남3구역과 한강 너머 강남 아파트들의 모습. 이정우 선임기자

하늘에서 바라 본 한남3구역과 한강 너머 강남 아파트들의 모습. 이정우 선임기자

투자를 위한 쪼개기, 조합원 수 4천 명

한남3구역 매물을 방문한 건 산 뒤였다. 막상 가보니 사람이 오랫동안 살지 않은 흔적이 뚜렷했다. 문 앞에 빨간 락카 스프레이로 엑스(×) 표가 쳐진, 전형적인 재개발 매물이었다. 집을 고쳐서 세입자를 받으면 유지·보수 비용이 더 들 터였다. 상관없었다. 재개발 기대감으로 집값이 뛰면 중간에 팔아버릴 계획이었다.

계획은 바뀌기 마련이다. 생각보다 땅값이 많이 뛰면서 재개발사업을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25평짜리 새 아파트를 받으면 월세를 놓을 생각이다. 그가 예상하는 입주 예상가는 평당 1억원. 현시점에서 책정된 조합원 분양가가 평당 4천만~4500만원 선이니까, 재개발 분담금을 내더라도 투입한 금액의 두 배 넘는 차익을 남길 수 있다.

난관에 부딪쳤다. 2015년부터 시작된 건축심의가 일곱 차례 반려당하면서 사업이 늦춰졌다. 우여곡절 끝에 건축심의는 통과했지만 남산 경관을 해치면 안 된다는 서울시와 용산구의 지침 때문에 애초 29층으로 계획됐던 아파트는 22층으로 낮아졌다. 그러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아파트를 위로 높일 수 없게 되면서 건폐율(전체 대지면적 대비 아파트가 건축되는 면적)이 올라갔다. 빽빽하게 아파트가 들어서서 사생활이 침해되는 단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 신축 아파트의 평균 건폐율은 20%대인데 한남3구역은 42%에 이른다. 예상 동 간 거리는 9m다. 시공사는 전기를 사용해 창호의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는 ‘미라클 윈도’라는 해결책까지 내놓았다.

가장 간단히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으려는 아파트 세대수를 줄이면 된다. 하지만 주택마다 투자를 위한 쪼개기를 일삼아 조합원 수가 너무 많은 게 문제다. 사업성이 나오게 하려면 세대수를 줄일 수 없다. 조합원 물량을 뺀 일반분양 물량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재개발 비례율 때문이다. 비례율은 재개발사업으로 분양하는 아파트와 상가의 분양가액에서 총사업비를 뺀 금액을 다시 조합원 총감정평가액으로 나눈 값에 100을 곱한 수치다. 기준치인 100% 아래면 사업성이 낮음을, 높으면 사업성이 높아 조합원들이 가져갈 개발 이익이 커짐을 뜻한다. 조합원 수가 4천 명에 이르는 한남3구역 처지에선 지금 계획된 5816가구를 모두 지어야만 사업성이 나온다.

“처음 본 사람이 사가도록”

사업방식을 사이에 둔 다툼도 시작됐다. 형주씨는 이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시간이 좀 지체되더라도 설계 변경으로 층수를 1층이라도 더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 간 거리 외에 문제는 많다.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 전체 평균은 1.25대라지만 197개 동 가운데 어떤 동은 1대도 나오지 않는 곳이 생겼다. 그는 중대 설계 변경(주거복지 차원에서 중대변경)을 추진해 건폐율, 동 간 거리, 주차 공간 문제를 한번에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지 않고 이대로 가다간 브랜드만 고급이지 잘못하면 살기 불편한 아파트가 될 지경이다.

형주씨는 집이 자신이 도매시장에서 떼다 팔았던 꽃과 비슷하다고 했다. “처음에 본 사람이 바로 사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게 좋은 물건이다.” 그에게 재개발사업은 곧 ‘좋은 상품’을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가 매물을 쥐고 있는 한 한남3구역은 좋은 상품이 돼야 한다. 그와 달리 생각하는 이들과 그래서, 갈등한다. 얼마 전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조합장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다가 조합 단체대화방에서 ‘강퇴’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형주씨는 남에게 월세로 내줄 집을 위해 싸우는 투사가 됐다.

관리되지 않고 낡은 한남3구역의 집. 박승화 기자

관리되지 않고 낡은 한남3구역의 집. 박승화 기자

③ 원주민: 전세로 떠돌며 유산을 사수하라

“재개발 지역 주민들은 개발 이전에는 비록 물리적으로 노후화된 주택에 거주하기는 했어도 일상생활의 기초로서, 자기실현의 공간으로서 주거지역이 가지는 의미와 기능을 향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주민들이 오히려 재개발로 인해 삶의 기초인 주거공간을 박탈당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윤인환, 주택재개발사업 이후 원주민 재정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연구)

미라클 윈도와 강퇴가 난무하는 한남3구역을 둘러싼 정신없는 다툼 속에 종성(46·가명)씨도 조합원 입주권을 쥔 채 버티고 있다. 그는 한남3구역 아랫동네(보광동)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 때부터 30년 넘게 소유한 2층짜리 단독주택에서 딸 첫돌까지 치르고 10여 년 전 나왔다. 딸은 올해 중3이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집을 증여받았다.

보광동을 나온 종성씨는 내 집을 놔두고 서울 전역 전셋집을 떠돌았다. 첫 전셋집, 관악산 주변 주공아파트는 1억5천만원이었다. 거기서 4년 살았다. 그 집을 나오고부터 2년마다 이사한다. 2년 계약 기간이 끝나면 옆 아파트로, 다시 2년이 흐르면 또 다른 옆 아파트로 옮기는 식이다. 집의 크기는 고만고만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20평대에서 30평대로, 다시 20평대로 바뀌었다. 전세금은 고만고만하지 않았다. 지금 전세보증금은 5억5천만원이다.

5억5천만원은 월급으로 마련하기 어려운 돈이다. 전세대출을 알아봤지만 증여받은 보광동 집 때문에 전세자금 대출이 어려웠다. 세 주고 나온 낡은 주택의 임차보증금을 올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보광동 집을 팔면 되지 않나? 그럴 수 없었다. 집값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보광동은 종성씨에게 ‘약속된 미래’다. 그 미래가 정확히 언제, 어떤 모습일지는 몰라도 보증된 ‘로또’임에는 틀림없다. 그 집만은 당장 생활이 아무리 궁핍해도 무조건 사수해야 한다. 결국 주택임대사업자로 등록해 보광동 임대주택을 주택 수 산정에서 면한 뒤에야 부족한 전세금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종성씨의 보광동 집에는 신혼부부와 4인 가족이 각각 1층과 2층에 1억6천만원에 세들어 있다. 지하는 월세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하나, 보증금 없이 월세 28만원짜리 하나다. 28만원짜리 집에 사는 할아버지는, 종성씨 아버지가 세놓을 때부터 살았으니 족히 30년쯤 살았다. 선엽씨처럼 내 소유의 집은 없대도 한남3구역을 내 동네로 여길 것이다.

④ 아파트: 사는 사람은 살 수 없는

“감히 단언컨대, 현대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가장 인기 있는 주거형태인 동시에 가장 미움받는 주거형태다.”(정헌목,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

형주씨와 종성씨의 평범한 욕망과 불안이 첨예하게 맞붙는데도, 모든 조합원이 새 아파트를 한결같이 원하므로 한남3구역은 언젠가 끝내 아파트로 뒤덮일 것이다. 부담을 감내할 수 있는 이들만 사는 성채가 될 것인데,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한남3구역에서 바로 곁에 보이는 나인원 한남 244㎡ 물건은 2021년 4월 79억원에 거래됐으며, 한남3구역의 가장 저렴한 21㎡ 단독주택은 13억5천만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강 건너 보이는 강남이야 말해 무엇하랴.

선엽씨가 한남3구역을 떠나야 할 때 바라는 전세금 수준은 3천만원 중반 정도다. 지금 사는 집 정도로 불러봤다. 서울 원룸 평균 전세보증금은 1억6883만원(2021년 6월 기준)이다. “저기 저 집(나인원 한남) 월세가 200만원이란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한남동) 아파트에 못 산다”고 같은 처지인 동네 사람들이 말했다. 빼곡하게 아파트를 짓고 있지만 아파트에는 살 수 없다. 맞는 말이다. 어디로 가야 할까? 그냥 “마음이 편한 집”을 바랄 뿐인데. 진도는, 아닌 것 같다. 서울은, 안 될 것 같다.

선엽씨네 저녁은 다가오는 끝을 예감하면서도 한없이 평화롭다. 전화가 왔다. 이웃이 저녁 먹으러 온단다. 가게에서 만난 이웃들이 지금도 ‘럭키주점’ 문 두드리듯 그의 집을 찾아와 저녁을 먹고 간다. 밥공기 하나 더 얹는 일이라 힘들지는 않다. 그냥 찾아올 때도 있고, 호박 한 덩어리를 들고 찾아올 때도 있다. 손님은 이웃만이 아니다. 초인종 대신 문밖으로 길게 늘어뜨려둔 방울이 딸랑딸랑 울린다. 고양이 까망이가 온 소리다. 까망이 할머니부터 까망이까지 3대째 선엽씨네 신세를 지고 있다.

선엽씨의 집이 사라지는 날, 누군가 환호하겠지만 또 많은 이가 갈 곳을 잃을 것이다.

지혜진 <뉴스핌> 기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