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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을 심사할 수 없기에

2018년 헌법불합치 판단 이후 대체역 심사위원회 출범,
내부 자성 거치며 인권친화적 심사 고민
등록 2021-07-18 16:31 수정 2021-07-22 09:24
2021년 6월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군인권센터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대법원 선고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정치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첫 무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2021년 6월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군인권센터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대법원 선고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정치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첫 무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대체복무제 도입 뒤) 세상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재판받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정치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대법원이 첫 무죄 확정판결을 내린 2021년 6월24일, 시민단체 ‘전쟁 없는 세상’이 대법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 참석한 양심적 병역거부자 임진광(24)씨가 말했다. ‘재판이 아니라 대체복무 기회를’ ‘병역거부자들은 왜 아직도 재판을 받는 거죠’ ‘감옥에 수감 중인 모든 병역거부자를 석방하라’라고 적힌 손팻말을 함께 흔들던 그는, 비폭력 신념에 따라 입대를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다.

총 쏘는 게임 가입 여부 조사하고 ‘유도 질문’ 하고

앞서 2018년 6월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병역종류 조항에 헌법불합치(위헌의 한 형태) 결정을 내렸다. 같은 해 11월 대법원도 ‘여호와의 증인’ 신자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법 처벌 조항에서 예외사유로 정한 ‘정당한 사유’로 인정했다. 그 뒤 병무청은 병역거부자를 더 이상 고발하지 않았고, 2020년 6월 대체역 심사위원회가 출범했다. 이에 따라 헌재 헌법불합치 결정 뒤 병역거부자는 입영일이나 소집일 5일 전까지 대체역 심사위에 편입 신청을 하면 조사관의 사실조사와 심사위원의 사전·전원심사를 거쳐 인용 여부가 결정된다. 이 경우 교도소·구치소 등 교정시설에서 현역복무 기간(18개월)의 두 배인 36개월 동안 합숙 복무하고, 예비군 대체복무자도 대체복무기관에서 연차별 합숙 형태로 복무한다.

그러나 대체복무제 도입 뒤에도 헌재 헌법불합치 결정 전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병역거부자는 계속 재판받을 수밖에 없었다. 병무청이 집계한 병역거부자 현황을 보면, 2021년 6월 기준 양심적 병역거부로 재판받는 병역거부자는 64명(여호와의 증인 신도 포함)에 이른다. 이 때문에 대체역 심사위는 출범 직후인 2020년 8월 유죄판결 뒤 2·3심이 진행 중인 병역거부자의 심사를 보류하고, 1심 선고 전이나 무죄판결 뒤 검찰이 상소한 병역거부자에 대해선 공소나 상소를 취하하는 내용의 검토서를 법무부에 전달했다. 재판받는 병역거부자가 법원과 심사위에서 이중 심사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한 조처였으나, 법무부는 “재판 절차를 중단할 수 있는지 일률적·기계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개별 사건의 구체적 사정을 고려해야 하고 그 권한은 담당 재판부에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병역거부자들은 긴 시간 재판받으며 양심의 진정성을 판별하겠다는 명목의 검찰 신문을 견뎌내고, 법원의 높은 심리 문턱까지 넘어야 했다. 경찰과 검사, 판사는 병역거부자에게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함정·유도성 질문을 던졌다. 검찰 피고인신문 조서를 보면, “5·18민주항쟁에서도 일부 시민은 민주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폭력적 방법을 택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검찰), “가족을 누가 공격하려고 칼을 들이대는 순간에도 칼을 발로 차지 않을 것인가”(재판장) 등의 질문이 담겨 있었다. 대법원 판례가 여호와의 증인으로 대표되는 종교활동과 관련한 기준만을 제시했을 뿐, 윤리·도덕·철학적 동기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에게 일반적으로 적용할 구체적인 심사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탓이었다. 급기야 검찰은 사실조회 신청을 통해 통화·문자메시지 내용부터 총 쏘는 게임 가입 여부까지 병역거부자들의 개인정보를 광범위하게 털었다. 평화주의 신념으로 예비군훈련을 거부해 재판받는 김형수(33)씨는 “신념이 상황에 따라 타협적이라는 걸 밝혀내기 위한 유도신문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양심의 진정성을 판별할 수 있는 신문 내용도 아니었고 오히려 양심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당했다”고 꼬집었다.

출범 뒤 2113명 중 1208명에게 대체복무 허용

대체복무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만든 대체역 심사위도 출범 초기 심사 과정이 형벌을 전제로 양심의 진정성을 재단하는 형사재판의 판단 기준과 유사했지만, 내부 자성을 거치며 인권친화적 심사로 바뀌고 있다. 대체역 심사위 관계자는 “심사 경험이 축적되지 않아 (초기에) 국외 심사제도나 판례에 제시된 판정 방법을 참조한 탓”이라며 “(이런 일을 계기로 심사위) 심사는 형사재판과는 차원이 달라야 한다고 심사위원들이 반성했다”고 설명했다.

심사위는 출범 뒤 2021년 4월까지 2113명의 대체역 편입 신청을 받았다. 이 가운데 1208명(법원 무죄 확정판결에 따른 자동 인용 포함)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했다. 1명이 기각 결정, 2명은 서류 미제출 등으로 각하됐고 나머지 902명은 사실조사나 심사를 받고 있다. 대체복무가 허용된 이 가운데 1204명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이고 개인적 신념에 따른 이는 4명이다.

현재 대체역 심사위는 사실조사에 앞서 조사관이 상급자에게 질문지를 제출해 검증되지 않은 질문을 즉흥적으로 하지 못하게 한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아닌 신청자의 경우, 조사관들이 모두 모여 사전 모의 질문을 주고받는다. 대체역 심사위는 대체역법 시행규칙에 명시된 부모 진술서 제출 조항을 삭제하는 법 개정 작업도 추진한다. 성인이 된 병역거부자가 대체역 편입 신청을 하는 데 부모 동의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심사위에 대체역 편입 신청을 하려는 병역거부자는 부모와 3명 이상의 주변인 진술서 등을 내야 한다. 심사위원을 맡은 양여옥 인권재단 ‘사람’ 활동가는 “게임과 폭력물 시청은 진술서에 객관적 기록이 있을 때만 묻는다”며 “가정적 질문도 더 이상 하지 않고 진술서를 중심으로 병역거부 경위 등을 깊이 있게 질문한다”고 설명했다.

‘심사’에서 ‘신청’으로 넘어가는 외국

앞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대체역 심사제를 도입한 나라들은 심사 방식에서 신청 방식으로 넘어가는 추세다. 총을 드는 행위(집총 행위)나 군사훈련을 거부한 병역거부자 양심의 진정성을 형사재판으로 판별하거나 심사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징병제를 유지하며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를 인정하는 오스트리아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판단하기 위해 내무부 산하 위원회에서 심의받게 했으나 위원회마다 판단 기준이 다르고 개인의 양심을 평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1993년 폐지했다. 그 뒤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라 대체복무를 신청한 개인이 서면으로 병역거부 사유를 소명하면 모두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오스트리아의 대체복무 기간은 9개월로, 현역복무 기간(6개월)의 1.5배다.

조윤영 <한겨레>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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