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의 연이은 사망 소식이 들린다. 성폭력 피해 뒤 수사기관을 찾아 신고·고소를 했던 10대 청소년들, 어릴 때부터 친족성폭력을 저지른 친부를 신고한 뒤 임시거처에서 지내던 20대 일반인,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한 뒤 본인이 증거까지 직접 확보해 군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던 20대 공군 중사, 직장 상사에게 추행과 성적괴롭힘을 당한 뒤 내부에서 문제 해결을 시도하다 법정 싸움을 벌여 승소한 30대 전 공무원.
이들의 죽음을 언론은 ‘극단적인 선택’이라고 한다. 부적절하다. 성폭력을 저지른 가해자가 없었다면, 아니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만 받았다면, 피해를 알렸을 때 집단 내부나 수사기관에서 피해자 보호 조처를 제때 했다면, 피해 이후 피해자의 말·시간·자리가 삭제되지 않았다면, 피해자에게 연대나 지지 기반이 충분했다면 피해자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피해자는 죽음을 선택한 게 아니라 죽음으로 떠밀려갔다. 그들의 죽음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다.
피해자의 자살, 자해를 이해하지 못하고 피해자의 나약함을 탓하는 이도 많다. 그런 일로 왜 죽냐, 죽을 정신으로 살려면 왜 못 사냐, 죽으면 끝일 뿐 죽는다고 바뀌는 게 있을 것 같냐는 식이다. 성폭력 피해를 입기 전까지, 그 피해 이후 고소 초기까지만 해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내 일상과 사람, 시간과 자리 모두 지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나 역시 어느 날, 건물 옥상에서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를 넘기지 못했다면 오늘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성폭력 피해 이후 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았고, 피해 이전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훼손이 생겼다. 지능이 떨어지고 감각과 감정을 느끼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경력은 단절된데다 인간관계는 틀어졌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겪은 수사기관과 가해자 주변인들에 의한 추가 피해는 성폭력 피해를 압도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냥 눈감고 지나갈걸 그랬다는 생각도 했다. 아니, 차라리 가해자를 죽여버렸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상상도 해봤다. 2010년 성폭력 피해를 입고 일상을 피해 이전과 그나마 비슷하게 돌려놓는 데 걸린 시간이 10년 정도. 그럼에도 회복이 불가능한 부분이 있고 남은 삶에서 그 결핍과 부재를 인정하며 살아가야 한다.
2017년 봄, 그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교제폭력 피해자이자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인 20대 여성 ㄱ씨. 소식을 듣고 달려간 자리에서 유족과 지인들은 나를 붙들고 자책했다. 바빠서, 몰라서, 힘들어서, 그렇게 각자의 이유로 피해자의 말을 듣거나 손잡는 것을 피했다고들 후회했다. 그를 만난 건 이미 법적 싸움이 마무리된 이후였다. 전 남자친구의 불법촬영과 해당 영상 유포로 고통받던 그는 전 남자친구를 고소했고, 촬영에 한해서만 기소, 벌금형 선고라는 결과를 받았다. 유포는 증거가 없어서 기소조차 안 됐다고 한다. 영상 형태와 편집 방법 등으로 미루어 전 남자친구가 아니면 편집과 유포가 불가능했던 상황임에도 수사기관은 더 수사하지 않고 그에게 증거를 갖고 오라고 했다. 재판에서 가해자는 대학원생이라는 신분을 살려 성실한 학교생활, 주변인 선처 탄원서 등 양형자료를 제출했다. 20대 후반 남성의 미래를 고려한 재판부는 벌금형을 선고했고, 검사는 항소를 포기했다. 피해자의 엄벌 요구는, 피해자의 미래는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피해자는 소외됐고 사법시스템은 피해 회복을 위해 기능하지 않았다.
그는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자신의 영상을 삭제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악착같이 모았던 돈은 몇 개월 단위로 다시 나타나는 자신의 영상을 삭제하는 비용으로 들어갔다. 온갖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영상 속 인물이 본인임을 밝히고 삭제를 요청하는 일을 계속했다. 영상 속 그는 동일한데 제목은 계속 바뀌어 올라왔다. 끝없는 싸움은 그를 갉아댔다. 건강하고 활발한 그는 점차 바싹 마른, 내성적이고 폐쇄적인 사람으로 바뀌어갔다. 가족과 지인들도 그를 힘들어했다. 그는 고립돼갔다.
2016년 11월 나는 병원 진단도, 상담치료도 받지 않았던 그를 끌고 이곳저곳을 다녔다. 중증도 우울증 진단을 받고 관련 약물 처방과 심리치료 등을 병행했다. 약물에 막연한 거부감을 가진 그를 설득했고, 그는 처방받은 약물 복용 뒤 드디어 일정 시간 수면하게 됐다. 영상 삭제 지원을 받는 방법을 공유하고, 모자와 마스크로 자신을 가리고 숨어만 다니던 그를 위해 조용하고 안전한 장소를 물색해 그곳에서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했지만 좀더 일찍 그런 일을 해야 했다.
2017년 1월, 그는 또다시 영상이 올라왔음을 알게 됐다. 그것도 아르바이트하던 가게 직원에 의해서. 남직원들이 자신을 보며 수군대는 일이 잦아지던 어느 날, 그중 한 명이 그에게 사적으로 만날 것을 요구했다. 그가 거부하자 그를 ‘걸레’라고 모욕했다. 그러면서 남직원이 영상을 봤다고 말했다. 삭제 작업을 외부에 맡기고 이제 좀 숨을 쉬려던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사랑하던 이와 보냈던 그 시간이 영원히 박제된 채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며 그를 옭아맬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는 절망했다. 삶을 놓기로 했다.
병원으로 달려갔다. 주변인들의 빠른 대처로 그는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무너진 그를 붙들고 하나하나 다시 시작했다. 몸 안의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 바짝 마른 그의 손을 잡고, 그의 눈을 보며, 그렇게 다시 했다. 한 달 정도 흘렀을까. 어느 정도 안정된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 지인들과 비상연락망을 만들고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 또 한 달이 지났다. 죄송하다고 시작하는 그의 지인의 문자를 받았다. 유서 하나 없이 그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가루로 남은 그를 보며 나는 울 수조차 없었다. 울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연대자인 나를 통해 알리길 바랐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었던 연대라고 생각했다. 상당수 피해자가 그렇듯 그도 비슷한 처지의 다른 피해자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 했다. 자신이 혼자 겪었던 각종 시행착오를 다른 이들은 덜 겪기를 바랐다. 끈질기게 살아남아 생존 자체로 연대하겠다며 웃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그가 죽음으로 몰려갔을 때 그게 그의 선택이었겠나. 그도 원했고 가족도 허락한 이야기를 지금에야 하는 이유는 그를 기억하는 이가 세상에 있음을, 그리고 그 기억을 토대로 사회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음을 알리고 싶어서다.
피해자가 죽거나 죽여야 이 사회는 변하는 척이라도 한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곤 한다. 이 말은 절반 정도만 옳다. 그 많은 피해자가 죽음으로 내몰려도 이 사회는 냉담하다. 나약한 개인의 선택 문제로만 대한다. 그러나 최근 잇달아 보도되는 피해자들의 죽음이 개인 문제던가. 모두 매뉴얼에 따라 수사기관에 신고·고소를 하고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피해를 인정받고 살고자 하는 신호를 사회로 보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회는 그들의 말을 충분히 듣지 않았고, 그에게 위로를 건네지도 않았고, 피해를 축소·은폐하기 위해 피해자를 오히려 압박했다. 가해자는 여전히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소속 집단은 면피를 위해 침묵을 택하거나 뒤늦게 해결한답시고 요란하게 움직인다. 뒤늦은 움직임 끝에 시스템이 정비되고 사회가 변하더라도 피해자 한 사람이 사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2020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서 펴낸 ‘범죄 피해자의 트라우마에 대한 형사정책적 체계 정립 방안’이라는 연구보고서에서는 범죄 피해를 성폭력 범죄(강간 피해/강간미수·강제추행 등 성폭력 범죄 피해), 폭력 범죄(가정 폭력/사회공동체 폭력), 기타 범죄로 나누어 피해자의 범죄 트라우마를 조사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정신과적 질환(주요 우울증, 알코올 남용, 알코올 의존 등) 등 항목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진단율과 심각성이 높았다. 예컨대 강간 피해자의 90%가 ‘자살사고’(‘죽겠다, 죽고 싶다’는 충동적인 생각부터 ‘어떻게 죽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등)를 했는데 나머지 범죄 피해 유형에 견줘 20~40% 높은 수치였다.
“제발 살아만 있어요, 우리 살아내요”성폭력 피해 이후 피해자들은 말·시간·자리를 잃는다. 성폭력 피해 외에 추가적인 피해로 고통을 떠안는다. 매뉴얼과 시스템이 있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절망하기도 한다. 일상은 무너지고 회복 불가능한 훼손이 이어진다. 피해 이전과 비교를 멈출 수가 없다. 고립을 택하고 속부터 무너져간다. 싸움에 이겨도 남은 게 없다. 그런데도 이해받지 못한다. 나약한 피해자 탓이라며 책임 추궁을 당한다. 왜 아직도 그 자리냐고 질책받는다. 피해자도 나아가고 싶다. 피해자도 꿈꾸고 싶다. 일상을 다시 만들고 피해를 회복한 뒤 평범하게 살고 싶다. 이를 위해선 사회의 지지와 연대, 조력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버겁다. 우리 함께 이 사회적 타살을 막아야 한다. 피해자의 존재를, 삶을, 일상을 붙잡아야 한다. 이 말을 꼭 건네고 싶다.
“일단 살아만 있어요. 살아만 있으면 무엇이라도 할 테니 제발 살아만 있어요. 죽음으로 몰려갈 때 어떤지 당신만큼은 아니지만 알고 있어요. 고립된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하고 있어요. 그러니 부디 살아요. 도움을 청해요. 당신의 말을 듣고 함께 분노하며 싸우는 이들이 생길 겁니다. 과거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당신의 말·시간·자리를 찾고 지킬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바꾸고, 그렇게 바뀔 겁니다. 당신을 위해 연대할 기회를, 당신의 미래를 함께 고민할 시간을 주세요. 우리 살아요. 살아내요.”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
*피해자들의 연이은 사망 소식은 유사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매우 큰 자극이 됩니다. 비상연락망을 구축하고 위험 상황에 놓인 이들과 연락하도록 힘써주십시오. 피해자가 사망한 이후 가족이나 주변인들의 고통도 매우 큽니다. 그들을 위한 지원과 위로, 연대도 필요합니다. 위험 상황에 놓인 피해자 외에 자살유가족 지원 등도 있습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너머n’ 아카이브(http://stopn.hani.co.kr/)에서 디지털성범죄를 끝장내기 위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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