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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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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키즈’가 오게 된 까닭

청년남성 ‘어르고 달래다’ 여성·소수자 대상 폭력 방치·묵인한 정치권과 기성세대
등록 2025-06-12 16:59 수정 2025-06-17 17:40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2025년 5월18일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2025년 5월18일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너무 무섭고 역겨웠어요.”

2025년 5월27일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3차 티브이(TV)토론을 지켜봤던 성폭력 피해자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당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질문하며 여성 대상 성폭력 행위를 묘사한 발언을 했고, 이를 접한 피해자들이 충격을 받은 것이다. ‘검증’을 핑계로 벌어진 언어 성폭력이 생중계되자 그제야 ‘충격’이라는 언론과 방송의 호들갑도 피해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청년 정치인’ 운운하며 이준석을 키운 것이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반복된 청년남성 달래기

6월3일 대선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37.2%, 30대 남성의 25.8%가 이준석 후보를 선택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어 서울대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남학생의 49.5%가 이준석을 지지한 것으로 나오자 여러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청년남성 이슈에 답한 후보가 이씨가 유일하다는 입장, 청년세대를 계몽 대상으로 삼아왔던 기성세대가 자초한 결과라는 주장, 거기서 나아가 ‘정치적 올바름 강요’ 등에 지친 청년남성들의 ‘약자 연대’라는 판단 등 2010년대부터 반복되던 청년남성 담론에 머물러 있는 진단이 언론·방송에 또다시 등장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 대책도 여전히 ‘이대남 달래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준석을 지지한 ‘다양한’ 청년남성의 사정을 늘어놓고, 그들의 불만을 들어주고 해결하면 언제든 정치적 견해를 바꿀 ‘유동성’을 갖추고 있다며 낙관하는 형태다. 이번 정부 역시 국무회의(6월10일)에서 대통령이 여성가족부 차관에게 남성들이 불만을 가진 이슈를 담당하는 부서의 존재 여부를 묻고 이를 ‘여성가족부’에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하는 이유와 연결한 바 있다. 명명의 퇴보가 백래시(반동)의 강력한 증거임이 또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진영 상관없이 ‘이대남 달래기’로 일관해왔던 결과가 ‘이준석’임을 인정해야 한다. 청년남성의 보수·극우화를 경계한다며 한발 물러선 사이, 한국 사회에선 ‘한국형 인셀’(온라인에서 극단적인 여성혐오를 생산·공유하는 이들)이 광장과 거리를 경험했고, 물리적 공격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정치판에도 안착했다. 이준석이 선거비 보전이 가능한 득표율을 얻지 못했음을 통쾌해하고, 의원직 제명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참여한 시민이 52만 명을 넘어섰다(6월11일 기준)며 100만 명 달성이 가능할까 따지고 있을 때, 개혁신당 당원은 두 배로 늘었고, 이준석은 당대표 출마를 고민하고 있다. 40대가 된 이준석은 여전히 청년남성을 기반으로 극우화 행보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한국 청년남성은 이미 극우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계집신조’를 공공연히 외치며 여성혐오와 차별을 일상에서 표출하는 10대 남성들은 ‘이준석 키즈’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준석이 TV토론에서 했던 언어 성폭력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인식과 표현이 오프라인 세상으로 이전되는 현장이었고, 이를 목격한 현세대에게 이씨는 롤모델이 되기 충분하다. 기성세대가 진보적 40~50대인 자신(출구조사 결과 기준)에게 취해 젊은 세대를 자신들과 분리해 비난하거나, 나이 들고 사회 경험을 하면 혐오와 차별을 시정하고 정치적 입장을 바꿀 것이라는 낙관을 하고 있으나, 이는 무책임한 자기최면이다. 젊은 세대를 길러낸 게 지금의 40~50대임을 직시해야 한다.

현재 청년남성들은 다양해서 유동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해도 안티페미니즘으로 단결할 수 있다. 한번 자리 잡은 가치관은 쉽게 바뀌지 않으며, 이를 ‘교정’하기 위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가 인터넷 커뮤니티 그 자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어떤 이유를 들먹이더라도 지금도 죽어가는,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약자·피해자를 외면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언행이 정당화될 수 없다. 청년남성들의 박탈감과 억울함을 경청하고 해결하겠다는 명목으로 실제 혐오와 차별로 고통받는 이들을 밟아서는 안 된다.

 

여성 대상 폭력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각국 정부

이렇게 말하면 청년여성을 들먹이는 이들이 있다. 권영국 후보 지지율을 두고 진보 진영의 희망을 말하기도 하고, (청년남성과는 비교되지 않지만) 이준석 후보 지지율을 들이밀며 ‘청년여성의 우경화’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소수자성을 가진 여성들이 이른바 ‘진보 진영’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명 ‘잡은 물고기 취급’)로 보고, 반대 견해를 보이는 여성을 쉽게 비난하는 이들이 청년남성에게 보이는 이해와 포용력을 청년여성에게도 보여주는지는 의문이다. 청년여성 역시 청년남성과 동일·유사한 환경에서 자라고 생활하는 것을 잊고 있단 말인가. 그들이 언제까지 그물 속에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청년세대 전반의 보수·우경화가 전세계적 현상이고, 실제 젊은 청년여성들의 정치적 성향이 바뀌고 있음에도 왜들 그렇게 안일하고 한가한가.

여성 대상 폭력 및 살인사건 연대 활동과 연구·분석을 이어가며 ‘한국형 인셀’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한국은 그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그에 비해 국외에서는 여성 대상 폭력 및 살인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대응 중이다. 2024년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의 저신타 앨런 총리는 ‘남성행동 변화를 위한 의회비서’라는 공직을 신설해, 여성혐오에 맞서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친밀한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인 외에도 2024년 4월 시드니 교외 쇼핑센터에서 일어난 흉기테러(6명 사망) 등 여성혐오 살인이 연달아 발생하자 나온 대책 중 하나다. 한국이 ‘교제살인’ ‘아내살인’이 연달아 일어나도 무관심하고, ‘여성혐오범죄’를 ‘묻지마범죄’에서 ‘이상동기범죄’ 정도로 명칭만 바꾼 채 여전히 묻어버리며, 남성들의 불만을 들어줄 부서 신설이나 고민하는 사이에 말이다.

최근 프랑스 교육부는 넷플릭스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을 교육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영국과 네덜란드도 학교 교육자료로 활용 중인 이 드라마는 옹알이부터 디지털로 하는 현재의 아동·청소년 세대가 어떤 방식으로 유해하고 유독한 남성성을 습득하고 이를 일상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등으로 표출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이제야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폐쇄’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제재를 논의하고 있지만, 이미 일베를 비롯한 온라인 전반이 유독한 여성혐오에 물들어 있음은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일베를 ‘쓰레기통’에 빗대며 그 필요성을 강조하고 방치한 사이, 독소는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버렸다. 그리고 같은 시간을 경험한 그 ‘소년들’이 이제 사회에 진출 중이다. ‘이준석 키즈’가 오고 있다.

 

온라인을 넘어 현실 세계로 나오는 ‘한국형 인셀’

여기저기서 이준석을 호명하는 상황에서 또 그를 언급해야 하는지, 오히려 영향력을 키우는 데 일조하는 게 아닐지 고민이 깊었다. 그러나 일명 ‘이준석 정치’를 몰아내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논의와 분석,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그 시작은 바로 한국 청년남성의 극우화 현상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준석 키즈’와 살아가야 하는 청년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 약자, 피해자가 혐오와 차별로 무너지게 둘 수는 없다.

 

마녀 D 반성폭력 활동가·‘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저자

*마녀 D는 성폭력 재판이 열리는 전국 법원을 찾아가 지켜보고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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