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한 정치인의 주장으로 시작된 모병제 징병제 논의가 곳곳에서 뜨겁다. 그 풍경을 보며 든 첫 느낌은 ‘세월이 흘렀다’는 거다. 20여 년 전만 해도 진보는 모병제, 보수는 징병제, 이게 기본값이었다. 군사정권을 눈앞에서 본 세대니 군사주의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이 살아 있었고, 모병제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미래의 이상처럼 받아들여진 시절도 있었다.
지금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보니 사람들의 인식이 그 시절과 많이 달라졌다. 군사주의에 반대했던 이들도 한국이 처한 특수한 안보 여건을 생각할 때 국방 문제를 가볍게 다룰 수 없다고 말한다. 군대 가기 싫어하는 청년이라고 무조건 모병제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모병제가 되면 국방력에 문제가 생길 거라며 ‘우리가 내 생각만 하고 나라 걱정 안 하는 사람으로 보이냐’는 밀리터리 마니아부터, 특권층 자제의 군면제에 분노하며 ‘그냥 공정하게 무조건 다 보내라’라는 반응까지 다양하다.
그중 모병제를 하면 하층 청년들이 주로 지원할 것이라는 주장을 둘러싼 논쟁도 흥미롭다. 모병제를 실시하는 미국의 경우, 가난한 청년만 군대에 가는 게 아니라 중산층 청년의 비율도 높다. 그럼에도 실제 이라크전 전사자 네 명 중 세 명은 주민소득이 미국 평균에 못 미치는, 저소득 소도시 지역 출신이다. 그러나 어쩌면 일자리가 적은 지역의 청년들에게 교육과 사회 진출의 기회, 경제적 탈출구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모병제가 나을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주장을 하든 공통으로 모병제는 먼 미래의 일이니 당장 군대 사병 월급이나 올려달라는 건 디폴트값이다. 인생의 어떤 기회를 국가가 가져가놓고, 그것에 대해 보상도, 인정도 제대로 안 하는 건 정말 싫다. ‘무엇이 가장 좋은가’에 대해선 여러 이견이 있겠지만, ‘이건 진짜 아니다’라는 것에는 합의하는 폭이 크다.
정치를 하든 장사를 하든,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게 뭘까 고민하게 된다. 내 속도 잘 모르겠는데 남의 속 알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최대한 많은 다수’가 만족하는 걸 알기란 더욱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A·B·C·D 같은 안을 놓고 각 안에서 사람들이 만족하는 ‘값’을 실제 측정할 수 있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어려운 일이긴 하다. 심지어 다수가 만족하는 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안 하고, ‘내 생각에 이게 제일 옳다’는 함정에 빠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럴 때는 차라리 ‘진짜 싫어하는 게 무엇이냐’를 파고들면 다수가 만족하는 답을 찾기 편하겠다는 생각을 모병제 논쟁을 보면서 했다.
모병제든 징병제든 뭐가 더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군대에서 맞는 건 싫고, 군대 나와서 바보 된 듯한 상황도 싫고, 군대 간 것도 억울한데 내 돈으로 물품 사야 하는 것도 싫고, 누구는 안 가고 누구는 가는 것도 싫고…. 그런 ‘싫음’의 목록은 금방 나오고 그 싫음의 정도도 쉽게 가늠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싫음의 목록을 들여다보면 ‘시대의 변화’가 보인다.
이 시대 청년들을 두고 해석 전쟁이 벌어진 지 오래됐다. 청년들이 ‘이걸 원한다’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이쪽과 저쪽이 난무하고, 서로 마음을 잡으려는 약속을 내건다. 그건 됐고 ‘무엇을 왜 싫어하는지’만 잘 알아도 실수 안 할 수 있다. ‘싫어하는 일만 안 하는 것’도 정말 어렵지 않나.
김보경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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