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동생 그리고 아버지, 이렇게 세 사람이 다급하게 복도를 따라 걷고 있다. 건물 안에 확진자가 발생했으니 모두 한곳에 모이라는 공지 방송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문득 마스크를 새것으로 바꿔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가방 안에는 두 개의 KF94 마스크, 그리고 여름에 가방에 넣어두었던 비말 차단 마스크(KF-AD)가 하나 있다. 70대 중반을 넘어선 아버지부터 먼저 KF94 마스크를 쓰시라고 건네며, 심장이 쿵쾅거렸다. 만에 하나 확진돼 격리되면 다시는 못 만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오른손으로 아버지 손을, 왼손으로 동생 손을 잡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확진자가 생겼는데 왜 한곳에 모이라는 거지? 모이면 더 위험할 텐데?’ 선상에 격리된 채 결국 700여 명의 확진으로 이어져 ‘공포의 선상감옥’이라 불렸다는 일본 유람선이 떠오른다. 잡은 손에 땀이 나는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꿈이었다.
105명. 최근 한 달간 전국의 요양시설과 요양병원에서 사망한 코로나19 확진자 수다. ‘105명이 사망한 사건’이 아니다. 나름의 인생을 살아온 한 인간이 적절한 시점에 전담병상으로 옮겨지지 못해 죽음에 이르는 일이 한 달 새 백다섯 번이나 연달아 일어난 사건이다. 놀라운 점은, 이 상황을 대하는 사회 전반의 반응이 너무나 ‘담담’하고 상투적이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국회에서 일어난 죽음이었어도 이럴까.
요양시설과 요양병원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감염 취약집단’인 이유는 단지 나이와 기저질환 때문만은 아니다. ‘1인실 격리’ 같은 것은 꿈꿀 수 없는 공간, 최소한의 연명을 위해 최저비용 최대효율을 요구해온 인력 배치 기준. 그러니까 ‘시설 집단수용’이라는 구조 자체가 이들을 취약하게 한다. 정부가 계속 강조한 ‘물리적 거리 두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곳이 요양시설이다. 지금 이곳에서 확진된 사람과 음성 판정이 나온 사람이 한 공간에 24시간 머물다 교차 감염되고, 본인도 환자인 의료진과 돌봄노동자가 와병 상태의 환자들을 돌보다 쓰러지고 있다.
2020년 한 해 내내 많은 헌법적 권리가 ‘방역’을 이유로 유보당했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다, 대유행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려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정부 조처에 협조해야 한다 등등. 그리고 ‘코호트(동일집단) 격리’는 감염에 취약한 노인요양시설에 정부가 해온 대표적인 조치였다. 그런데 요양시설이나 병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동일집단’인지부터가 질문의 대상이다. 역사적으로 타자화된 집단은 언제나 개별성을 부인당하고 한 덩어리로 취급됐다. 요양시설/요양병원에 대해 ‘동일집단 격리밖에는 답이 없다’고 습관적으로 말해온 것은, 어쩌면 시설에 거주하는 이들의 개별자로서 삶과 존엄을 잊은 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방치를 은폐하는 말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코호트 격리’를 방역 조처라고 말해도 되는가? 격리가 정말 사람을 지키는가? 사실은 시민들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취약한 시민들을 가두는 조치가 아닌가? ‘격리밖에 방법이 없다’기보다, 다른 방법을 찾을 의지 자체가 없는 건 아닌가? “코호트 격리 조치했다”고 하면 뭔가 대단한 거라도 한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면서 그 방치를 안 보이게 은폐하는 말, 격리 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라도 되도록 가려주는 말일 뿐이다. 지금 코호트 격리는 아무도 구하지 못하고 오직 노인, 장애인, 돌봄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무지만 구하고 있다. ‘집단격리’는 답이 아니다. 오답을 반복하지 말고, 문제를 다시 풀어야 한다.
전희경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옥희살롱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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