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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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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n]같은 ‘성착취 영상’ 재유포한 100명의 처분 결과는 달랐다

수사·사법기관, 성폭력처벌법 아닌 정보통신망법 적용… 두 번 우는 피해자
음란물 유포죄 1심 판결문 315건 입수·분석해보니 실형은 5% 그쳐
등록 2020-11-28 23:10 수정 2021-05-05 21:34
서울 중부경찰서 경찰관이 2018년 6월7일 서울 중구 한 건물 내 화장실에서 불법촬영 단속·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중부경찰서 경찰관이 2018년 6월7일 서울 중구 한 건물 내 화장실에서 불법촬영 단속·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21>이 디지털성범죄를 정리하고, 앞으로 기록을 꾸준히 저장할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열었습니다. 11월27일 나온 <한겨레21> 1340호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1년동안 일궈온 성과와 성찰, 그리고 여전히 남은 과제로 채웠습니다. 이곳( https://smartstore.naver.com/hankyoreh21/products/5242400774)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왜 내 피해영상물이 음란물이라 불려야 하는 걸까.’ 디지털성폭력 피해자 박지민(가명)씨는 수년째 힘겨운 싸움을 벌이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형사 고소와 재판으로 점철된 지난 4년. 그의 피해영상을 재유포한 사람들의 처분 결과를 정리해보니 같은 시기,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이 아닌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의 음란물 유포죄로 처벌받는 가해자들이 있었다.

성착취물 퍼나르기가 겨우 음란물 유포라고?

지민씨 피해는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전 연인은 그와의 성관계 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뜨렸다. 유포 횟수도 수차례, 유통 경로도 한 군데가 아니었다. ‘사회적 죽음’에 내몰렸다고 느꼈다.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고 1년 만에 체중이 30㎏ 이상 늘었다. 재유포를 막는 게 급선무였다. 지민씨가 찾아낸 재유포자만 100여 명. 세 차례 나눠 신고했다. 잊을 만하면 그들의 처분 결과가 날아왔다. 그런데 그 결과가 달랐다.

재유포자 ㄱ에겐 성폭력처벌법의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죄(제14조)가 적용됐다. 이 법은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피해영상을 유포하는 사람을 처벌한다. ㄱ은 2019년 여름 인천지법 부천지원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40시간의 비접촉 성범죄자 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과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1년간 취업 제한도 내려졌다. 그러나 다른 재유포자 ㄴ에게는 정보통신망법의 음란물 유포죄(제44조의 7 1항 1호)가 적용됐다. 이 법은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음란한’ 글이나 영상, 사진을 올리는 행위를 처벌한다. 일본이나 미국 성인영상물(AV) 유포 범죄에 보통 적용된다. ㄴ은 2020년 1월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약식명령은 범죄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해 판사가 서면 심리만으로 벌금이나 과료를 부과하는 절차다. 성폭력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취업 제한 명령 등 부가처분은 내려지지 않았다.

범행 시점도 범행 영상도 같은데 왜 다른 법이 적용되는 걸까. 무엇보다 지민씨는 궁금했다. 왜 자신의 피해영상이 ‘음란물’로 불려야 하나. 그는 깊이 절망했다.

2018년 6월9일 ‘불편한 용기’가 주최한 ‘홍익대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2차 집회’에서 한 여성이 불법촬영을 규탄하는 취지로 “우리의 일상은 포르노가 아니다”라고 쓴 손팻말. 한겨레 선담은 기자

2018년 6월9일 ‘불편한 용기’가 주최한 ‘홍익대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2차 집회’에서 한 여성이 불법촬영을 규탄하는 취지로 “우리의 일상은 포르노가 아니다”라고 쓴 손팻말. 한겨레 선담은 기자

최고 징역 7년과 1년의 차이

디지털성폭력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1차 가해자 처벌과 더불어 추가 가해 차단이다. 성착취물을 최초 촬영·배포한 1차 가해자가 처벌받는다 해도 이미 유포된 피해영상을 제2, 제3의 재유포자가 시청하고 배포할까봐 1분 1초가 고통스럽다.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유포된 영상을 삭제하고 (재)유포자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n번방 사건’(텔레그램 성착취)을 계기로 성폭력처벌법이 개정됐다. 불법 성착취물을 촬영·배포하는 범죄의 법정형(5년 이하 징역·3천만원 이하 벌금→7년 이하 징역·5천만원 이하 벌금)을 높였고, 이를 구매·소지·시청하는 사람까지 처벌 범위를 확대했다.

이와 달리 정보통신망법 음란물 유포죄의 법정형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낮다. 정보통신망법은 영상 속 인물이 아닌, 사회의 건전한 성풍속을 보호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개인의 법익 침해를 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과는 그 죄질이 다르다. 성폭력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취업 제한, 신상정보 공개 등 성범죄자에게 따라붙는 부가처분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디지털성범죄가 성폭력처벌법의 그물망을 통과해 정보통신망법으로 처벌되는 사례가 관행처럼 존재한다.

‘음란물’ 판결 6건 중 1건은 피해영상물

<한겨레21>은 2017년 1월~2020년 7월 정보통신망법 음란물 유포죄 1심 판결문 315건을 살펴봤다. 대법원의 판결문 방문 열람 시스템 등을 이용해 전국 법원을 대상으로 검색했다. 많게는 수십만 개의 음란물을 유포하는 ‘헤비업로더’들의 판결문이 쏟아졌는데, 대부분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판결문 315건을 분석해보니 절반에 이르는 피고인(159명·50.5%)은 실형이 아닌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 평균 금액도 최고형의 절반도 안 되는 306만원에 그쳤다. 집행유예(131명·41.6%)가 그 뒤를 따랐다. 평균 형량은 징역 6.4개월에 집행유예 1년7개월. 실형은 소수(16명·5.1%)였고 형량도 평균 8.6개월에 불과했다. 음란물 유포죄로 24차례 처벌받고도 674차례 영상물을 유포해 25번째 범죄를 저질러야 법정 최고형(징역 1년)이 선고되는 정도다.

문제는 이 가운데 디지털성폭력으로 생산된 성착취물(피해영상물)을 유포한 범죄도 다수 있고, 이 사건들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는 점이다. 판결문 분석 결과 유죄판결(308건) 중 51건(16.6%)이 피해영상물을 유포한 사건으로 추정됐다. 인터넷에 떠도는 피해영상물을 내려받아 두었다가 많게는 수천 개, 수만 개씩 업로드하는 성인영상물 중 하나로 유포하거나, 전 연인이 피해자와 성행위한 영상을 피해자 의사에 반해 유포한 사건 등도 포함됐다. 이런 사례들이다.

피고인 ㄷ은 2018년 9월 피고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여성 화장실 불법촬영물을 판매한다”는 글을 게시한 뒤 이를 보고 연락한 구매자로부터 3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을 받고 여성 화장실 불법촬영물 23개를 전송했다. 그는 화장실 불법촬영물을 구매자들에게 30차례 전송했고 170만원을 벌었다.(2019. 2. 벌금형 선고)

피고인 ㄹ은 이전 다른 곳에서 내려받아 보관하던 남녀 성관계 장면에 제목을 달아 한 웹사이트 성인게시판에 올리는 등 2018년 9월까지 628회 음란물을 유포했다. 여기에는 이른바 ‘몰카’ 영상이 포함돼 있었다.(2019. 7. 집행유예 선고)

피고인 ㅁ은 여자친구가 자신의 신체를 촬영해 전송한 사진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는 2018년 11월 헤어진 피해자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고 선물도 돌려주지 않는다며 피해자의 지인 등에게 피해자의 동영상과 사진을 전송했다.(2020. 5. 집행유예 선고)

이런 사건이 단순한 음란물 유포 사건과 똑같은 죄명으로 비슷한 처벌을 받는다. 적용 법조와 법정형이 같으니, 형량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피해영상물을 유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피고인(24명·47.1%)이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그 평균액이 321만원에 그쳤다. 집행유예(19명·37.3%)와 실형(4명·7.8%)이 그 뒤를 따랐는데, 실형을 선고받는다 해도 형량은 성인영상물을 유포했을 때의 평균(8.6개월)과 같았다. 추가 유포를 막으려면 피해영상의 복구 불가능한 삭제가 필수다. 가급적 몰수를 선고하는 성폭력처벌법(91.4%·2019년 대법원 양형위원회 양형연구회 3차 심포지엄)과 달리 분석 대상 판결문에서 법원이 몰수·폐기형을 선고한 사건은 겨우 6건(11%)뿐이었다.

분석 대상 판결문에는 음란물 유포죄 범죄구성요건과는 맞지 않는, 성폭력처벌법에서나 볼 수 있는 양형 이유가 적혔고 이에 따라 피고인 형량이 가중·감경됐다. 예컨대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이 극심하다” “이런 영상은 한 번 유포하면 완전한 삭제가 어렵다” “피해자 얼굴이 노출되진 않았다” “직접 영상을 제작한 건 아니고 다운로드 받아둔 것을 재유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식이다.

피해영상물 절반은 벌금형 ‘솜방망이’

디지털성폭력 피해영상물 (재)유포 행위에 성폭력처벌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으로 처벌하는 사례가 발견되는 이유는 뭘까.

1998년 성폭력처벌법에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가 도입된 이래, 성폭력처벌법은 진화를 거듭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자신의 신체를 촬영해서 건넨 사진을 동의 없이 유포하거나, 타인의 얼굴을 나체 사진에 합성하는 범죄행위는 과거의 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없었다.(법·제도의 지체) 일선 경찰서마다 널뛰는 법 이해도나 성인지 감수성도 걸림돌로 꼽힌다.(수사기관의 지체) 사이버 수사 경력이 있는 한 일선서 경찰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성폭력처벌법은 촬영해서 유포까지 했을 때 적용하는 범죄 아닌가”라고 되물으며 “성폭력처벌법은 법정형이 1년인 음란물 유포죄에 비해 피의자가 입는 법익 침해가 너무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피해자 지민씨를 지원한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효린 활동가의 말이다.

“직접 찍고 유포하는 행위는 주범으로서 행위 당사자성이 강하니까 성폭력처벌법을 벗어날 수 없겠지만 재유포 행위는 성폭력이라 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다. ‘공유 한 번 한 게 뭐가 큰 문제인가. 이것도 성폭력이라면 세상 절반이 성폭력 범죄자냐’는 거다. 어떤 피해를 초래했는지보다는 가해자 관점에서 생각하고 문제를 사소하게 여긴다. 명백한 폭력이자 범죄행위라는 것에 대한 관점이 합의되지 않았다.”

‘고의성 입증’ 어렵다며 정통망법으로 처벌

실무상의 이유도 존재한다. 피해자를 특정하지 못하거나, 피해자를 특정하더라도 가해자의 고의를 수사기관이 입증하지 못하면 음란물 유포죄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고의는 처벌의 기본이다. 피해자 의사에 반해 유포된 건지, 가해자가 피해영상임을 인지하고 유포했는지를 수사기관에서 증명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다 쉽진 않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되는 사람이 영상에 나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과는 입증 책임이 다르다는 것이다. 먼저 영상 속 피해자를 찾지 못해 이 영상이 피해영상인지 인터넷에 떠도는 음란물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피해자를 찾는다 해도 “그냥 음란물인 줄 알았다”는 가해자 변명을 뒤집지 못할 때도 있다. 이럴 경우 ‘고육지책’으로 음란물 유포죄를 적용한다는 얘기다. 경찰청이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0월~2020년 9월 경찰의 불법촬영물 추적시스템 통계를 내보니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영상(7만3357건)이 피해자가 특정된 영상(8만8293건)과 엇비슷할 정도로 많았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는 검찰·법원에 가도 교정되지 않는다. 특히 성착취 영상도 다른 성인영상과 같이 나체나 성행위가 나오는 ‘음란한’ 영상이기 때문에, 정보통신망법 적용이 틀린 게 아니라는 그릇된 인식이 작동한다. 이렇게라도 처벌할 수 있어 다행이지 않냐는 생각이다. 성폭력 사건 전담 처리 경험이 있는 검사 출신 변호사는 “한 달에 처리하는 사건 수가 200여 건인데 현행법상 정보통신망법 적용도 틀리지 않고, 그 법을 적용해 유죄를 받는 데 문제가 없다면 (검사가) 굳이 적용 법조를 바꿀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대세’(유죄)에 지장이 없으면 혐의를 따져보지 않고 경찰이 적용한 법 그대로 기소하는 게 통상적 관행이라는 얘기다. 디지털성폭력은 증거가 남아 있기에 피의자가 자백하고 이를 입증할 증거가 있으면, 굳이 적용 법조를 바꾸기 위해 검찰이 추가 조사할 가능성이 적다.

법원 또한 다르지 않다. 불법성이 명백한 화장실 불법촬영물 사건이 음란물 유포죄로 기소돼 재판에 넘어와도 검사에게 공소장 변경을 요구하지 않는다. 음란물 유포죄 사건을 담당했던 한 판사는 “검사가 청구한 범위 내에서만 판단하는 것뿐이다.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요구하는 것도 성폭력처벌법 적용 가능한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가능하다. 무턱대고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공소장 변경을 요구했다가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수사·판결 관행은 디지털성범죄가 가벼운 불법행위라는 그릇된 인식을 심는다.

가해자는 어떻게 부가처분을 피했나

피고인 ㅂ은 파일 공유 사이트에 성관계 영상 3개를 업로드한 혐의(정보통신망법 음란물 유포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지명수배된 상태에서 돈을 벌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 동종 범죄를 포함해 형사처벌 전력이 4차례나 있었다. 2018년 11월 인천지법은 그에게 1천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가 필요하다”는 검찰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ㅂ씨 범행은 성폭력처벌법(제2조)에서 정의하는 성폭력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정보통신망법의 음란물 유포죄는 성폭력처벌법이 정의하는 성폭력 범죄가 아니다. 성범죄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신상정보 공개,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 명령을 내릴 수 없다. 보호관찰,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수강, 사회봉사 명령도 피고인에게 집행유예가 내려져야만 가능하다. ㅂ과 같이 벌금형이나 실형에는 그 명령을 내릴 수 없다. 성폭력특별법이 보장하는 피해자 보호 조치도 받을 수 없다. 성폭력특별법은 변호사 선임 특례를 보장하고, 성폭력 전담 재판부를 배정하며, 비공개 재판을 보장한다. 김숙희 변호사(법무법인 문무)는 “가해자들은 취업 제한 같은 부수적인 처분에 오히려 더 부담을 느낀다. 그러나 음란물 유포죄로 빠지면 고작해야 벌금형에 부수적인 처분도 내리기 어렵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기도 쉽다”고 말했다.

성폭력처벌법 개정 뒤 남은 과제

무엇보다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영상이 음란물로 불리는 데 말로 표현하기 힘든 좌절감을 느낀다고 했다. 사생활과 성적 자기결정권, 인격권 같은 개인적 법익이 결정적으로 침해당한 사건임에도, 단순히 선량한 성풍속이라는 사회적 법익을 보호하고자 만든 음란성 개념으로 규율하는 건 피해자에게 모욕으로 다가온다.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음란’이란 사회통념상 일반인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거나 성적 도의 관념에 반하는 것을 의미한다. 피해영상이 음란물이 되는 순간 피해자 신체는 이 같은 음란의 근거를 찾기 위한 판단 대상으로 전락하고 가해자 행위는 가벼운 일탈이나 실수처럼 여겨진다.

박수진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음란물이라는 단어는 현존하는 피해자를 삭제해버린다. 또한 자신의 신체에 대해 타인이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 기준을 들이대며 음란성 여부를 재단하다보니, 피해자는 이중으로 소외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지현민(가명)씨도 정보통신망법 음란물 유포 혐의 등으로 기소된 가해자가 일부 무죄 선고받는 장면을 목격했다. 속옷 차림의 사진에 대해 재판부는 음란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성적 부위나 성관계 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때 자신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저는 다른 사람이 봐도 상관없는 몸이라는 건가요. 제 몸을 두고 음란한지 아닌지 따지고 (재판부가) 음란하지 않다고 하는데 억장이 무너졌어요. 펑펑 울었어요. 왜 무죄냐고….” 사건 이후 그는 여성성을 부각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머리카락을 삭발했다. 신체가 드러나는 옷도 입지 않는다.

강화된 성폭력처벌법에도 물음표가 남아 있다. 성폭력처벌법에 따르면 피해 촬영물을 소지·시청하기만 해도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데, 피해 촬영물을 소지·시청한 가해자가 불법촬영물임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수사 과정에서 입증해야 한다. 반성폭력활동가 마녀는 “성폭력처벌법의 법정형이 높아지고 양형기준도 강화되다보니, 입증이 까다로운 성폭력처벌법보다 부담이 적은 정보통신망법을 적용해 처리할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우려했다.

경찰은 실무적으로 대응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비롯한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되기 전 고의 입증 등과 관련해 법 해석·적용에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현장에 내려보냈다. 불법촬영물 추적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피해자가 특정된 영상과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영상을 시스템에 등록하고, 그 데이터를 여성가족부 산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공유한다. 경찰 관계자는 “시스템에 영상의 DNA값을 등록하면 다른 수사기관의 수사에서 피해자가 이미 확인된 영상인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영상을 불법촬영 의심물과 아동성착취 의심물, 불법성 영상물(일반 음란물)로 세분화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삭제 요청하거나 필요한 수사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2017년 1월~2020년 7월 음란물 유포죄 1심 판결문 중 유죄판결 308명 대상. 한겨레 자료

*2017년 1월~2020년 7월 음란물 유포죄 1심 판결문 중 유죄판결 308명 대상. 한겨레 자료

시대는 바뀌었는데 법과 제도는 헐겁다

‘국산 야동은 없다.’ 디지털성폭력에 대항하는 시민단체는 이같이 외쳐왔다. 불법촬영된 이미지와 성행위 동영상 등이 온라인에서 유통되면서 사람들은 상업적으로 생산된 허구의 성인영상물보다 실제 성행위를 담은 피해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피해영상이 ‘몰카’ ‘야동’ ‘음란물’ ‘국NO’ ‘유출’ 등 서로 다른 이름표를 달고 유통되는 사이 누군가의 인격을 침해하는 범죄행위는 일상적인 놀이문화, 호기심에 의한 실수, 사소한 일탈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다만 법과 제도는 헐겁고 더디게 이를 좇는다.

그 간극에 ‘성명 불상의 피해자’가 있고 ‘범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가해자’가 있다. 모니터 영상에 피해자가 있음을 알리고, 이에 합당한 이름을 붙여주며, 가해자에게는 합당한 처벌을 안겨주기 위해 디지털성폭력과 우리는 싸워왔다. 우리는 여전히 그 전쟁 한복판에 서 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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