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이 디지털성범죄를 정리하고, 앞으로 기록을 꾸준히 저장할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열었습니다. 11월27일 나온 <한겨레21> 1340호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1년동안 일궈온 성과와 성찰, 그리고 여전히 남은 과제로 채웠습니다. 이곳( https://smartstore.naver.com/hankyoreh21/products/5242400774)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10월22일 1심 구형을 앞두고 법정에 선 ‘박사’ 조주빈은 말했다. “악인의 삶에 마침표를 찍겠다.” 반년 전 경찰서를 나서면서도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마치고, 멈췄다고 했다. 간단하게 느껴졌을까. 삭제 버튼 한 번 누르는 것으로 접속 기록까지 지울 수 있는 텔레그램 세계처럼 한 번에 모든 걸 지울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그 반대편, 조주빈 그리고 ‘박사방 사건’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피해자 곁에서 1년을 보냈다. 쉽게 멈출 수도, 마칠 수도 없는 얘기였다.
2019년 11월,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특별취재팀에서 취재하고 기사 쓰며 처음 피해자들과 인연을 맺었다. 기사를 보고 또 몇몇 피해자가 연락해왔다. 경찰 신고를 돕고, 텔레그램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같은 피해자 지원 단체를 소개했다. 할 수 있는 일이 마음만큼 많지 않았다. 때로 무력감을 느끼고 때로 자책하며 그저, 옆에 있었다. ㄱ도 그런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다.
조주빈이 법정에서 ‘마침표를 찍겠다’고 말하기 며칠 전 ㄱ한테서 전화가 왔다. 불안을 담은 의문을 쏟아냈다. “왜 조주빈에게 사형을 구형할 수 없는 건가요? 조주빈이 무기징역을 받는다고 해도 그가 그만큼의 죄책감을 과연 느낄까요? 감옥에서 조주빈은 어떻게 지낼까요? 수형자들을 모아두고 자기 영웅 설화를 쓰지는 않을까요? 다른 범죄를 구상하고 지시하면요? 걔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인데. 만약 모범수로 풀려나면 어떻게 하죠?”
ㄱ의 불안은 막연하지 않다. 사건 이후 그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조주빈을 사회와 완전히 격리하는 것 외에 안도감을 느낄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의 고통을 알기에, 안심하라는 말도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ㄱ은 말을 잇는다. 전화한 목적이 실은 따로 있다. “피해자가 엄청 많은데 아직 신고하지도 못하고, 엄벌 탄원서를 내는 것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아직도 고통스러워한다는 걸 사람들이 모른 채 사건이 끝나면 어떡하죠?” ㄱ은 더 많은 피해자가 용기 낼 수 있도록 자신이 먼저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말한다. 어느덧 자기 고통을 쥐고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지니게 됐다.
1년 전 취재를 시작했을 무렵 느꼈던 충격이 떠올랐다. 피해자의 성착취물과 주소, 연락처 같은 개인정보는 박사방의 수많은 가해자에게 공개된 상태였다. 피해자와 통화한 그날 밤, 박사방에 피해자의 영상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걸 보기도 했다. 전화기 너머 들렸던 피해자의 목소리가 다시 귀에 맴돌았다. 대화창을 넘기던 손가락이 자연스레 멈추고 멍해졌다. 취재 활동을 위해선 봐야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보면 안 될 것이기도 했다. 성착취물을 보는 내 모습이 마치 박사방 가해자들의 모습인 듯해 혼란스러워졌다. 그 와중에 잔혹한 성착취물을 보며 본능적으로 메스꺼움이 느껴져 죄책감도 몰려왔다. 아마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의 100분의 1도 안 될 것이지만.
ㄱ은 극도의 공포와 불안에 더해 자괴감마저 들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내가 범죄를 당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 알려질까봐 너무 무서웠어요. 왜 당했을까. 자괴감이 미친 듯이 밀려오고, 나 자신이 너무 싫었어요.”
나는 그런 그에게 “또 다른 피해자들이 생겨나는 걸 막기 위해 나서달라”고 설득했다. 그러면서도 확신보다 불안이 컸다. 국외 공조가 잘 안 된다는 이유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동안 디지털성범죄는 수사가 잘되지 않았다. 어렵게 가해자가 잡혀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무엇보다 ‘박사’는 그동안 어떤 가해자보다 악랄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쉽게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기사가 나갔지만 ‘박사’가 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올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2019년이 저물 때까지 텔레그램 성착취를 이어서 다룬 언론 기사는 없었다. 기사가 나간 뒤 피해자들은 연락이 끊겼다. 내게도 후폭풍이 남았다. 몇 번이나 박사가 붙잡히는 꿈을 꿨다. 주변 권유로 심리상담을 받았다. “그 취재에서 어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는 상담사의 말에, 나는 텔레그램 성착취방에 들어가 모니터링하는 일을 멈췄다. 그래도 가끔 박사방이나 유사 사건의 피해자로부터 제보 이메일을 받았다. 그때마다 느낀 감정은 무력감이다. 그들한테 할 수 있는 얘기는 “곧 잡힐 것”이란 말뿐인데, 그조차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한 채 했다.
가해자들은 여전히 활개 치고 있었다. <한겨레> 텔레그램 제보 계정으로는 “제 방도 소개해달라”는 또 다른 가해자의 메시지, 심지어 “대화 좀 하자”는 박사의 조롱 섞인 메시지가 왔다. 떳떳하고 뻔뻔한 가해자들과, 연락이 두절된 채 숨어 지내는 피해자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혹시나 피해자들이 “인터뷰를 괜히 했다”고 후회하지는 않을까, 우리가 텔레그램 성착취방을 홍보한 꼴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 고통스러웠다. 기사를 쓰고 4개월이 지난 뒤에야 박사가 붙잡혔다. 조주빈이란 이름의 25살 남성. 정체가 드러났을 때 세상은 온통 ‘조주빈’에 관한 뉴스를 쏟아냈다.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모두 얘기했다. ‘n번방 관련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주말 이틀 동안만 100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체포 소식을 듣고 피해자들에게 전화했다. 피해자들한테도 반가운 소식일 거라고 생각했다. ㄱ의 반응은 의외였다. “‘차라리 잡히지 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ㄱ은 조주빈을 다룬 뉴스를 볼 때마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뛰었다. 다시 그때 일이 떠올랐다. 그 사건의 피해자가 자신이란 사실을 누군가 알게 될까봐 두려웠다. 정신과 의사에게 진료받으며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너무 혼란스러워요. ‘박사’가 잡힌 건 다행인데 자꾸만 그때가 떠올라서 힘들어요. 사실 그동안은 먹고살기 바빠서 그 사건을 잊고 살기도 했거든요. 왜 갑자기 나타나서 다시 힘들게 할까요.” 그 무렵 그는 나한테도 “세상과 단절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다시 시간은 흘렀다. 조주빈을 붙잡고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성범죄자로는 처음으로 조주빈과 관련자들의 신상이 공개됐고, 디지털성범죄의 법정형을 높이는 내용을 담은 ‘n번방 방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디지털성범죄 양형을 대폭 늘린 양형기준 권고안도 나왔다. 이런 소식을 피해자들한테 간간이 알리며 “모두 용기 있게 나서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뿌듯함은 피해자들한테 가닿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이 와중에도 여전히 소셜미디어에서 재유포되는 성착취물을 일일이 직접 삭제하러 다녔다. 그마저 삭제 속도가 유포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지독히 따라붙는 트라우마도 피해자들이 생업은 물론 일상생활마저 하기 힘들게 했다. 그런 피해자들 상황을 알았기에, “세상이 바뀌었다”는 주변의 격려에 나도 웃을 수 없었다. 세상을 나아가게 한 것은 피해자의 용기다. 그들의 용기로 세상이 바뀌는 동안 정작 그들의 마음은 자주 무너져내렸다.
또 다른 피해자 ㄴ이 무너졌던 순간에는 나도 같이 무너지고 말았다. 조주빈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고 몇 달이 지난 뒤, 수사하던 검사가 ㄴ을 불러 조사했다. 제대로 구형하려면 진술해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 또다시 그 사건을 떠올려야 했다. 끔찍했던 범행을 겪고 계절을 두 번이나 버텨냈고, 이제는 어느 정도 일상을 되찾았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날 마음이 무너져내린 것처럼 너무 힘들었어요.”
사소해 보이는 일상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ㄴ은 조사를 받기 전부터 회사에 무슨 말을 하고 연차를 써야 할까 고민했다. 혹시라도 회사에 이 사실이 알려지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조사받고 며칠 동안 마치 피해를 당한 그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어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영원히 이 사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생각했다.
ㄴ에겐 경제적 문제도 있었다. 박사방에 주소가 공개되고, 오프라인 협박 위협까지 당한 피해자들에게 가장 긴급한 지원은 안전한 집에 사는 것이다. 가족에게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한 ㄴ이 수백만원 보증금을 스스로 구해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기란 쉽지 않았다. 오죽하면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검사 앞에서 “임대아파트 보증금이 너무 비싸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결국 ㄴ은 보증금을 구하지 못했다. ㄴ은 고시원과 친구 집을 전전했다.
ㄴ은 자해했다가 “다시 잘 살겠다”고 다짐하는 일을 반복했다. 다니던 정신과 병원에서 ㄴ에게 입원을 권하기도 했다. 검찰 조사를 받고 며칠 뒤 ㄴ과 저녁을 먹었다. 헤어지자마자 ㄴ은 대뜸 “내가 없어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ㄴ의 요동치는 심리 앞에 나름대로 차분함과 침착함을 유지해왔다고 믿었던 나도 그날은 같이 무너졌다. 곧바로 ㄴ에게 전화를 걸어 “다 잘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런 막연한 말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절망스러워 같이 엉엉 울었다. “일이 잘 해결되고 있는데 바보같이 왜 네가 의지를 놓으려고 하는 것이냐”고 원망도 했다. 삶의 의지를 굳게 다지다가도 ㄴ은 한순간에 무너지곤 했다. 영원히 이 끔찍했던 시간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듯한 불안, 형이 확정되지 않은 조주빈이 혹시 사회로 나와 자신을 해할 수 있다는 공포가 ㄴ을 괴롭혔다.
사람들은 종종 “피해자들이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묻는다. ㄱ과 ㄴ 같은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여전히 힘들어한다”고 답한다. 곧바로 “심리상담을 안 받고 있느냐”는 질문이 이어진다. 내가 아는 피해자들은 대부분 정부 지원으로 정신과 약을 먹고, 주기적으로 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다. 다만 상담과 치료 과정마저 때로는 고통이 된다.
ㄱ은 사건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2차 피해에 가까운 상처를 받고 다시 마음을 닫은 일이 있었다. 처음 만난 정신과 의사 앞에서 ㄱ은 ‘불법촬영물 피해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자기 증상을 설명했다. ㄱ의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의사는 몇 분 안 돼 “약을 처방해주겠다”고 말하며 ㄱ의 얘기를 다 듣지도 않고 상담을 끝내려고 했다. 그러다 ㄱ은 자신이 ‘박사방’ 피해자라고 이야기했다. 의사는 그제야 펜을 들고, ㄱ의 말을 끊으며 계속해서 범죄 내용을 캐물었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이 사건을 ‘특별하고 엽기적인 괴담’ 정도로 생각하는 시선으로부터 상처받는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범죄 내용에만 관심을 갖는 모습, 그 하나하나가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가해가 된다. 피해자 직업을 앞세운 언론 보도, 피해자 나이나 자극적인 범죄 사실을 구체적으로 늘어놓은 기사나 소셜미디어 글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들은 이런 행위를 “마치 또 다른 조주빈들이 옥죄는 것 같다”고 느낀다.
ㄷ은 조주빈이 붙잡히고 한참 뒤에 경찰에 신고한 경우다. “조주빈과 그의 공범들의 처벌을 바라나요.” 경찰은 ㄷ에게 질문했다. 답이 정해진 당연한 질문 같아도 피해 당사자가 가해자 처벌에 어떤 의사를 가졌는지는 이후 수사와 형량을 결정하는 데 중요하다. ㄷ은 질문을 듣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처음 듣는 질문이었다. 그의 주변 세상이 1년 가까이 ‘조주빈 엄벌’을 외치는 동안 정작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구에게도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선이 두려웠다. 홀로 버티고 싸우다가 마침내 낸 용기였다.
피해자는 어떻게 평범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ㄱ은 말한다. “외부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신고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피해 회복을 위해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아요. 그런데 이런 일을 하려면 피해자에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기도 해요. 그런 용기를 가질 때까지 세상이 기다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용기를 냈을 때 손을 잡아줄 곳이 주변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면 좋겠어요.”
멈추고 마치는 일은 조주빈의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무거운 처벌이 있어야 하고, 피해자가 두려움 없이 피해를 말하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세상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 그래도 희망을 놓을 수 없다. 지난 1년 피해자들은 삶의 의지를 놓기 직전까지 갔다가, 열심히 살겠다는 의지를 다지다가,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다가 또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용기 있게 목소리를 냈다. 1년은 긴 시간이 아니지만 또한 참 많은 일이 생길 수 있는 시간이다.
이 글을 읽는 피해자들이 지금 당장 힘들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든 다시 마음을 붙잡을 수 있다고, 내일은 절망스러운 오늘과 또 다른 마음일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이들의 고통이 멈추고 마치는 순간에 비로소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도 끝날 수 있다. 우리의 분노와 연대는 그때까지 식지 않아야 한다.
오연서 <한겨레>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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