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불법촬영이 범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법전을 펼쳐본 이유는, 이 범죄가 어떤 경우에 ‘미수’인지 궁금해서입니다.
‘화장실에 카메라가… 학생들은 가슴이 조여왔다’(제1333호 표지이야기)를 취재하면서 여러 차례 놀랐습니다. 교사가 학교 화장실에서 불법촬영을 했다는 점,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도 같은 범죄가 발견됐다는 점이 그랬습니다. 어처구니없었던 건 검찰 기소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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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초기엔 검찰 고소장이 없어 재판을 방청한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들은 내용으로 혐의를 짐작했습니다. 이들은 검사가 법정에서 밝힌 기소 요지에 “발만 찍혀서 미수”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의아했습니다. 화장실 변기에 불법촬영 카메라를 설치했고 실제 사진이 찍혔는데, 그것이 발이라고 ‘미수’라 볼 수 있을까, 하고 말이지요.
국회 의원실을 통해 검찰 공소장을 입수해보니, 가해자는 2017년에도, 2020년에도 불법촬영을 했고, 그 신체부위는 발이었습니다. 검찰 공소사실을 받아들여 2017년에 ‘실수’로 발을 찍었다고 하더라도 3년이 지난 뒤에도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요? 그간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부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놓고 계속 논란이 돼왔습니다. 2019년 10월, 수원지법은 여성인 부하 직원의 손을 주무르고, 상대의 거부 의사에도 손을 놓지 않은 회사원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다른 신체 부위를 쓰다듬거나 성적 언동을 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았고, 손 그 자체만으로는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신체 부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습니다. 이후 항소심은 무죄를 뒤집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해 확정되긴 했지만, 손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신체 부위인지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또 같은 시기인 2019년 10월, 버스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을 동영상으로 불법촬영을 한 사건에서 무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항소심(의정부지법) 재판부는 “외부로 직접 노출되는 피해자의 신체 부위는 목·손·발목 부분이 전부고,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입니다.
전윤경 대검찰청 감찰2과장이 2016년 북부지검 검사 때 작성한 논문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의 구성요건 해석 및 개선방안’ 논문을 보면, “‘성적 욕망 충족’의 판단 기준도 촬영 행위의 경위, 촬영 횟수·양, 피해자 수 등 가해자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사건에서도 교사가 불법촬영 카메라를 설치하기 위해 2020년 3~6월, 23번이나 화장실에 들어갔다는 점, 2017년에 발을 찍고도 2020년에도 또 발을 찍었다는 점을 고려해 가해자를 중심으로 성적 욕망 충족을 판단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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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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