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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눈치 보지 않는 사람

등록 2020-09-13 00:00 수정 2020-09-18 10:22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KTX에 긴장감이 흐른다. 기차를 타면 으레 포장해서 들고 오던 햄버거와 주전부리도 보이지 않고 대화 소리도 사라졌다. 조용한 하행선 열차의 침묵을 깬 건 휴대전화 영상 소리와 낄낄대는 웃음소리였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인지 몰라 주위를 둘러봤는데, 반대편 끝에 앉은 중년 남성이었다. 눈빛으로 레이저를 쏘아댔지만 그에게 닿지는 못했고, ‘너무 멀어서 내가 참는다’며 생각하고 말았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 옆의 손님이 목사와 큰 소리로 통화했는데, 다행히도 곁에 있던 부인이 팔을 찰싹 치며 밖으로 나가서 통화하라고 면박을 줬다.

 

손님에게 마스크 쓰라 할 자 누군가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상행선에선 나이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이 이어폰을 끼지 않은 채 큰 소리로 영상을 보며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말할까 말까 망설이는데, 우람한 덩치의 승무원이 다가와서 이어폰을 써달라고 해 상황이 종료됐다. 열차 안의 평화를 지키는 영웅이었다. 어떻게 나에게만 이런 불행이 생길까 우울해하는데, 이번엔 가족석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떠들며 대화를 나눴다. 마스크는 내려졌고 목소리에는 술기운이 묻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쓰고 있던 마스크를 꼼꼼하게 매만졌다.

편견을 가지고 싶지는 않지만, 내 생활 반경에서 마주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나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은 대부분 중장년 남성이었다. 비겁한 이야기겠지만, 이들에게 마스크를 써달라거나 시끄러우니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기 힘들다. 한국에서는 눈치 보지 않고 살아도 되는 나이라도 있는 것 같다.

인생의 대부분을 ‘철도 씹어 먹을 나이에 삐쩍 말랐다’는 잔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다. ‘철 씹으면 죽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저 삼켜야 했다. 이 잔소리를 그만 들어도 될 나이가 되면서 불편을 느끼거나 말하는 데 망설이는 일이 점점 줄었다. 주말에 친구와 농구 하러 갔다가 코트 안에서 담배 피우는 20대를 발견했다. KTX에서 만난 아저씨보다는 쉬워 보였다. “흡연은 나가서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띠꺼운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그들은 순순히 밖으로 물러났다. 이때만큼은 마스크 위로 드러난 내 눈과 눈썹이 40대 정도로 보이길 바랐다. 물론 이 말을 하기 전 맞은편에 있던 내 친구의 존재와 덩치를 다시 확인하기는 했다. 나이가 어리고 홀로 있었다면, 내가 담배 냄새를 피해 도망쳤을 것이다.

배달하다보면 마스크를 쓰지 않는 또 다른 집단을 만난다. 손님이다. 마스크 대란이 한창일 때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라이더들은 일하지 못했다. 최근 우리 조합원은 마스크를 미처 챙기지 못하고 음식을 배달했다가 손님이 수령을 거부한 일을 겪었다. 물론, 라이더의 잘못이다. 그러나 마스크를 쓰지 않은 건 손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배달하면서 마스크를 쓰고 물건을 받는 손님을 만난 적이 없다. 손님에게 마스크를 써달라고 부탁하는 간 큰 라이더도 없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시비가 붙거나, 손님이 음식점에 항의해 음식점이 배달대행업체를 바꿔버리면 그 라이더는 음식점 하나를 날린 죄인이 된다. 마스크를 벗는 것도, 혹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것에 항의하는 것도 위치와 계층에 따라 달라진다. 

감춰진 생활 속 권력
누군가가 자신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어렵게 꺼낸 부탁을, 누군가는 주제넘은 행위로 받아들여 통제되지 않는 분노를 상대방에게 맘껏 표출한다. 최근 벌어지는 마스크를 둘러싼 크고 작은 사건사고는, 감춰진 생활 속 권력 문제를 드러낸다. 누군가는 숨 쉬는 것마저 조심스럽게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하게 하고 싶은 대로 산다. 사는 게 너무 편안하다면, 마스크가 씌워져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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