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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삼성생명 금융정보도 사찰…미전실의 노조깨기

미래전략실 문건·임직원 진술조서에 드러난 노조 와해 전말
등록 2020-07-04 07:13 수정 2020-07-08 23:31
삼성 미래전략실이 삼성노조(현 금속노조 삼성지회) 조합원들의 동향을 감시한 문건들. 류우종 기자

삼성 미래전략실이 삼성노조(현 금속노조 삼성지회) 조합원들의 동향을 감시한 문건들. 류우종 기자

2018년 11월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김아무개 당시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리조트사업부 인사그룹장(부장)이 피의자로 출석했다. 그는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의 지시를 받아 삼성에버랜드에 2011년 7월 설립된 삼성노동조합(현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지회)을 와해시키려 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김 부장은 사건 당시 삼성에버랜드 리조트사업부 인사그룹 파트장(차장)이었다.

“검사님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조장희(삼성노조 부위원장) 아시죠, 조장희가 얼마나 인간 같지 않은지 알면 이해하시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김 부장)“조장희가 어떤 행동을 하였는지 여부를 떠나, 에버랜드가 조장희에게 한 행동을 보면 불법적인 요소가 상당한데 조장희에 대해 왜 말하는 것인가요?”(검사)“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조 세우는 것 좀 방해했더라도 조장희가 훨씬 나쁩니다. 조폭이나 다름없는 조장희에게 회사를 빼앗길 수 없었습니다.” (이때 피의자는 손으로 탁자를 친다.)


피의자로 검찰에 출석했는데도 조씨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김 부장. 회사에 대한 충성 탓인지 그는 이미 직원 대상 교육에서 노조 혐오 발언을 하고 노조 유인물 배포를 방해한 부당노동행위로 벌금 1천만원의 약식명령(2015년)을 받은 경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2016년 삼성물산 부장으로 승진해 노무 업무를 계속 맡았다. 그리고 2019년 1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노조에 대한 업무방해, 부당노동행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유죄(집행유예)를 선고받고도 삼성물산에서 일하고 있다. 반면 김 부장과 같은 해(1996년) 입사한 조장희씨는 삼성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와 형사고발을 당하고 이 과정에서 공황장애가 악화해 일터로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조장희씨 인터뷰 기사 참조)

<한겨레21>이 입수한 삼성 노조 와해 재판기록 3만3천 쪽에는 삼성의 노조 와해 전말을 보여주는 내부 문건과 임직원의 진술조서가 수두룩하다. 이들이 헌법상 보장된 ‘노조 할 권리’를 어떻게 침해했는지 살펴본다. 

복수노조 시행일인 2011년 7월1일을 디데이로 삼아 조장희씨는 에버랜드에 삼성노조(현 금속노조 삼성지회) 설립을 계획한다. 2002~2007년 에버랜드 노사협의회 노사(근로자)위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노조 설립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과거 삼성에서 노조 설립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례를 참고해 노조 설립 뒤 행동요령을 적은 문건을 작성했다. 2011년 6월4일 사무실 복합기에 놓여 있던 이 문서를 다른 직원이 발견하고, 에버랜드 인사그룹을 거쳐 미전실에 보고됐다. 문건에는 ‘불온문서’라는 제목이 붙었다. 에버랜드는 ‘노조 와해를 위한 상황실’을 다급히 설치하고 본사에서 근무하던 이아무개 인사지원실장(전무)이 용인 에버랜드로 내려왔다. 상황실에는 리조트부문 인사팀 직원, 홍보팀 직원 등 7~8명도 참여했다.

당시 미전실의 계획은 이랬다. 2011년 그룹 차원에서 작성한 ‘노사전략’에 따라, “조장희 등 문제 인력들의 노조 설립 전 선제적으로 대항노조를 설립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려 했다. 그러면 “7월1일 이후 (삼성)노조를 설립하더라도, (대항노조와) 이미 단체협약이 체결돼 있으므로 (삼성노조의)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주동자 조장희의 사규 위반 및 불법행위를 근거로 ‘징계해고’ 및 ‘형사고발’을 추진해 노조 와해를 유도”하기로 했다.(에버랜드 문제 인력들의 노조 설립 기도 대책, 2011년 6월17일)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됐다. 강경훈 미전실 인사지원팀 부사장은 검찰 조사에서 “제 책임하에 (2011년) 노사전략을 작성했으니, 그 내용이 머리에 남아 있을 것이고, 그중 일부를 (삼성노조 설립 사례에) 적용한 것은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에버랜드는 노사 업무를 맡다가 다른 일을 하는 직원을 대항노조 위원장으로 내세워 노조를 설립(6월20일)한 뒤, 일사천리로 단체협약(6월30일)을 맺었다.

5월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삼성의 불법사찰 피해를 입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관련 공동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5월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삼성의 불법사찰 피해를 입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관련 공동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 설립 6일 만에 해고, 징계 혐의 벗기까지 5년

에버랜드 리조트사업부 인사그룹 차장이었던 김아무개 부장에게 부여된 역할은 삼성노조 부위원장을 맡은 조씨를 비롯한 조합원 6명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조씨의 일거수일투족은 감시 대상이 됐다. 예를 들어 6월21일 밤 조씨가 동네 슈퍼마켓 앞에서 술을 마신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김 부장은 “음주운전을 하면 112에 신고할 목적으로” 현장에 출동했다. 그러나 조씨가 술을 별로 마시지 않아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또한 김 부장은 조씨가 ‘대포차’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이 전무가 용인동부경찰서장을 만나 수사 협조를 의뢰했다(6월20일). 차량 고유번호인 차대번호를 알면 수사가 쉽다는 얘기를 경찰 정보과 형사에게 전해들은 김 부장은, 이튿날 주차돼 있던 조씨 차량의 보닛을 몰래 열어 차대번호를 찍은 사진을 경찰에 전달했다.(경찰 수사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단독] ‘삼성 따까리’한 경찰, ‘심성관리’ 당한 노동부’ 참조)

삼성이 경찰을 접촉한 덕분에 수사가 빠르게 전개됐다. 강력팀 형사가 조씨를 사무실에서 현행범으로 체포(6월26일)하고, 삼성은 검찰 송치 즈음에 이 사실을 언론에 흘렸다(7월8일). 에버랜드는 조씨의 대포차 사용에 따른 체포를 징계 사유로 삼아 인사위원회 출석을 통보(7월11일)했다. 회사가 이미 파악한 회사 영업기밀 유출이 징계 사유로 추가(7월14일)됐고, 같은 사실을 경찰에 고발(7월15일)했다. 결국 조씨는 징계해고를 당한다(7월18일). 삼성노조가 설립된 것이 7월12일. 노조 설립 6일 만에, ‘불온문서’ 발견 38일 만에 그는 삼성에서 쫓겨났다.

조씨는 법원에서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2016년 12월). 회사가 문제 삼은 영업기밀 유출 역시 검찰에 기소됐으나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내렸다(2015년 11월). 삼성이 에버랜드 기숙사 근처에서 조씨 등이 노조 홍보 유인물을 나눠준 것을 주거침입 혐의로 고소해 조씨 등이 검찰에 기소됐지만, 역시 법원에서 무죄가 났다(2015년 8월). 삼성이 제기한 고소·고발 가운데, 회사 업무와 관련 없는 대포차 사용(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을 제외하면 조씨는 모든 혐의를 벗었다.

삼성노조 설립 멤버였던 조합원 김영태씨도 조씨에 이어 다섯 가지 징계 사유로 정직 2개월을 받았다. 삼성은 애초 직위를 낮추는 징계(‘강격’)를 하려다가 경제적으로 압박하려고 월급이 나오지 않는 징계(‘정직’)로 바꿨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무효라고 판결했다(2016년 12월). ‘감급’(월급 감소) 3개월 징계를 받은 박원우 삼성노조 위원장도 똑같은 판결을 받았다(2016년 12월). 직원에게 노조에 가입하면 징계를 당한다는 신호를 주려는 무리한 징계임이 법원에서 모두 확인됐다. 징계의 혐의를 벗는 데 5년 넘는 시간이 걸렸고, 삼성이 계획한 대로 노조는 ‘고사 위기’에 몰렸다.

휴일 나들이도 보고, 계열사 통해 개인정보 조회

에버랜드 삼성노조 와해 사건은 조합원의 생활을 파악해 보고한 ‘일일동향’에서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김 부장을 비롯한 상황실 직원들이 노조원을 사찰한 내용과 더불어, 다른 직원들이 노조 와해를 위해 했던 일을 종합해 일일동향을 썼고, 그 내용을 박아무개 차장이 미전실에 보고했다. 일일동향에는 조합원 6명의 하루 행적이 빠짐없이 적혔다. 예를 들어 △휴일에 가족과 에버랜드 놀이공원을 방문해 시간대별로 탄 놀이기구의 이름과 먹은 음식 △담배를 피운 장소 △조합원 아들이 병원에 입원한 사유와 퇴원한 날짜 △주말에 다녀온 친척 결혼식 △여수엑스포 가족여행 계획 △자격증 취득 모임 가입 △카카오톡 프로필 교체 등의 내용이었다. 집회·기자회견 참여는 물론이고, 그 조합원들 옆에 있던 다른 노조 사람들의 신상까지 털었다. 노조 활동을 도왔던 조합원(조장희씨)의 지인이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11년 전 에버랜드에서 일한 적 있는 아르바이트 인사카드를 꺼내 일일이 얼굴을 대조했을 정도다.

이렇게 작성된 일일동향은 노조 설립 전인 2011년 6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1년4개월간이나 지속됐다. 더욱이 조합원 모르게 동료 직원을 감시자로 활용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근무처 직원”은 ‘대항사원’으로, “가장 친한” 직원은 ‘퇴로관리’ 인력으로 삼성이 관리했다. 반대로 조합원(박원우 지회장)에 대해 “불쌍하다”고 말한 동료 직원을 두고는 “밀착관리(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만인의 감시 체제였다.

삼성은 조합원들의 집을 차로 ‘패트롤’(순찰)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방법을 적은 ‘문제인력 차량 확인 계획’(2011년 8월9일)을 보면, 아침·점심·저녁으로 조합원 집을 찾아가 그의 차량이 있는지, 어떤 차량이 세워져 있는지, 불이 켜져 있는지를 확인했다. 노조 활동을 위해 따로 조합원들이 마련한 원룸 주변도 감시했다. 그러다 조합원(조장희씨)에게 들통나 경기도 용인에서 서울 강남 교보생명까지 약 38㎞ 걸쳐 추격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일일동향 문건을 미전실에 보고한 박 차장은 검찰 조사에서 이러한 차량 패트롤을 “에버랜드를 관리차 돌아보면서 확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사는 “그걸 변명이라고 하느냐”고 핀잔을 주지만, 그는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계열사를 통해 금융정보도 무단으로 들여다봤다. 경제적으로 압박할 목적이었다. 2011년 8월 조장희씨 개인의 금융정보인 ‘삼성생명 보험계약·대출 현황’을 삼성생명에서 넘겨받았다. 에버랜드가 직원 복지 목적으로 운영하는 ‘마을금고’의 대출 현황도 분석했다. 마을금고에서 30여만원이 들어 있던 적금을 해약해 찾아간 사실도 일일동향 보고에 포함됐다. 특히 조씨가 마을금고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자, 채권추심업체와 계약해 상환을 독촉하도록 했다. 김 부장은 채권추심사 직원이 “단기간 내 회수는 어렵겠다”고 하자 “계속 압박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에서 휘날리는 삼성 깃발. 정용일 기자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에서 휘날리는 삼성 깃발. 정용일 기자

2013년 봐주기 수사가 방치한 불법

에버랜드에서 노조 와해를 위해 사찰하고 불법행위를 저지른 김 부장을 비롯한 상황실 임직원, 이를 진두지휘한 미전실 임직원, 회사의 노조 와해에 동조하기 위해 대항노조에 가담한 에버랜드노동조합 위원장들이 검찰에 기소된 것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했던 다스의 소송 비용을 삼성이 대납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던 검찰이 ‘우연히’ 미전실의 인사·노사 관련 문건을 발견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삼성노조는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S그룹 노사전략 문건’과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 감시·미행 등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한 바 있지만, 당시에는 검찰·고용노동부의 봐주기 수사와 삼성의 거짓 진술로 노조 와해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삼성의 불법이 8년간 지속될 수 있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 ‘법 위의 삼성 미전실’ 연속보도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88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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