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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바이러스의 노래

등록 2020-04-22 21:45 수정 2020-06-27 12:3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전동과 수동 휠체어를 번갈아 타는 내 친구. 언젠가 그가 내가 사는 지역에 출장을 온다기에 나는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1시간 가까이 ‘눈팅’ 했더니 맛집 정보가 수북이 쌓였다. 이 가운데 무얼 먹고 싶냐고 보내기만 하면 되는데, 아차! (나는 매번 그가 장애인임을 잊는다.) 별수 없이 원안을 접고 발품을 팔기로 했다. 점심시간 동안 시찰 요원처럼 식당 입구를 일일이 살피며 걸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경사면이 설치된 식당은 열에 하나. 먼저는 내 경솔함을 탓했고, 다음으로는 식당 주인에게 화났다가 결국 지자체장과 장애인복지과에 분노가 일었다.

“나이 들면 다 장애인”

돌이켜보면 친구와 나는 만나서 밥이나 먹자 했다가도 거리로 나서면 말수가 줄곤 했다. 한식, 중식, 양식 같은 음식의 종류를 고르는 일은 사치였다. 그와 걷다보면 횡단보도 아래 턱이 알맞게 낮은지, 근방에 장애인용 화장실은 있는지부터 눈여겨보게 됐다. 반대 상황도 있었다. 언젠가 세 집 건너 두 집이 고깃집인 거리에 들어섰을 땐 그는 고기를 즐기지 않는 내 눈치를 봤다.

타인의 삶과 생활을 알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타인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시답잖은 말을 주고받아도 웃고 마는 막역한 친구가 되면 더 좋다. 내 친구는 전동휠체어 속도를 올릴 때 뒤따라오는 나를 보고 비장애인은 걸음이 느려터져 문제라고 놀려먹는다. 사회가 성소수자라 칭하는 남자 사람 친구에게 속 깊은 이성 친구가 돼달라고 하면 그런 건 진짜 이성애자에게나 부탁하라고 장난스레​ 쏘아붙인다. 반경을 넓혀주는 친구가 많아지면 오래된 규칙과 틀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친구들은 나를 ‘새로고침’ 해주는 ‘선생’이다. 주변에 이와 같은 선생들이 있다면, 몰라서 혹은 무심해서 상대를 아프게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줄어들 것이라고 믿는다.

역시나 올해도 후보들은 막말을 쏟아내며 선거판을 달궜다. 발언은 실수가 아니라 진심의 발로 같다. 저이는 주변에 다른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없구나,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어떤 말들은 오래 살아남아 떠돈다. 한 후보가 나이 들면 다 장애인이 된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그가 노인 비하성 막말을 했다고 비난했다. 논란이 커지자 그를 품었던 당은 그를 내치기로 했다.

나이 들면 다 장애인이 된다는 말에 사람들이 뜨겁게 반응하는 것을 보니, 내게만 그 말이 서글프진 않았나보다. <경향신문> 정유진 기자는 칼럼에서 “우리는 모두 잠재적 노인이고, 잠재적 장애인이다”라며 이 발언을 더 깊게 다룬다. 우리는 장애(인)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지금까지 장애는 누구나 늙는다, 누구나 죽는다는 정언명제의 영역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만일 동일선에서 다뤄진다면 사람이 나이 들어가면 (사실 나이와도 무관하다) 기력이 쇠하고, 걸음이 느려지고, 관절은 퇴행하고, 숨은 가빠지니, 무엇인가 지을 때 특별히 장애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시설로 제작하려 힘쓸 것이다. 그러니 굳이 장애(인)를 주어로 내세울 필요는 없다. 일상생활을 해나갈 능력 가운데 하나 또는 그 이상에 제약이 생겼음을 의미하는 장애를, 비장애인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멀찍이 떨어뜨려 대하니까 식당 앞에 경사로 놓는 비용을 아까워하고 노화와 장애가 한 문장 안에 쓰이기만 해도 화내는 게 아닌가.

환상 속에 아직 그대가 있다

장애와 노화와 질병의 경계는 흐릿하니, 몸 하나에 장애와 노화와 질병이 동시에 깃들기도 한다. 그 총체가 이번에 드러난 경북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정신병원을 일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뜨려놓고 싶겠지만 외면한 결과는 집단 죽음으로 돌아왔다. 계속 출현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환상 속에 아직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라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를 따라 부르며 묻는 것만 같다. 계속 이렇게 살 거냐고.


김민아 <아픈 몸 더 아픈 차별> 저자

*이번호로 김민아의 ‘노 땡큐!’를 마칩니다. 그동안 수고하신 김민아 작가와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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