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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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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교사가 수능 점수를 매긴다면

기약 없이 문 닫은 영국 학교, 시험 치르는 대신 찾은 대안…
우리도 교사에게 학생들 성적을 매기는 권한을 줄 수 있을까
등록 2020-03-28 23:51 수정 2020-05-03 04:29
3월20일 영국의 11학년 학생들이 영국 정부의 학교 폐쇄 조처 발표 뒤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3월20일 영국의 11학년 학생들이 영국 정부의 학교 폐쇄 조처 발표 뒤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3월20일, 영국의 모든 학교가 기약 없이 문을 닫았다. 언제 다시 열지는 이 전쟁을 어떻게 치르느냐에 달려 있다. 9월을 예상한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울었다. 아이들도 같이 울었다.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막내는 입술이 떨리고 다시 눈이 붉어졌다. 이렇게 갑자기 중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속상했다. 큰아이도 이렇게 흐지부지 칼리지(인문계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졸업식도 프롬파티(졸업파티)도 다 취소됐다. 삶의 크고 작은 의례를 챙기기에는 작금의 사태가 심상치 않다.

‘핵심인력’ 자녀들은 학교로

국가시험도 다 취소됐다. 올해는 GCSE(중등교육 일반자격 시험)도 A레벨 시험도 없다고 했다. 대학 입학을 위해서는 A레벨 시험을 봐야 하는데 그 시험도 취소됐으니, 비유하자면 수능시험이 취소된 것과 비슷하다. 우리 집은 올해 큰아이가 A레벨을, 작은아이는 GCSE를 볼 예정이었다. 맥이 빠졌다. 시험을 코앞에 둔 수험생으로 늘 시간에 쫓겼는데 이제 눈앞에 산더미처럼 빈 시간이 쌓였다. 9월까지 5개월 동안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낼지 아득하다. 영국 사회가 멈췄다. 학교도 극장도 식당도 카페도 술집도 대부분의 일터도 다 문을 닫았고 우리는 모두 집에 갇혔다.

바이러스 초기 진압에 실패한 결과다. 뉴스도 처음에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처럼 여유를 보였다. 그런데 몇 주 전부터 심상치 않은 소식을 전해왔다. 이런 식이다. “현재 영국 내 확진자는 2천 명입니다. 그런데 이는 검사 결과 양성반응을 보인 사람 수이고 실제 감염자는 이보다 몇 배 더 많은 것으로 추산합니다. 2만 명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영국 방송 <bbc> 앵커의 말에 귀를 의심했다. 이곳에서는 진단도 격리도 제대로 안 됐다. 지역감염은 손도 쓰지 못했다. 그래서 감염자 규모도 정확히 모른다. 단지 사망자 수만 알 뿐이다.
3월18일, 사망자가 100명이 넘자, 보리스 존슨 총리는 영국 내 모든 학교의 휴교를 선언했다. 전격적이었다. 단 예외를 남겼다. 바이러스와 최전선에서 싸우는 핵심인력(Key Workers)의 자녀와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취약아동은 등교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5, 6월에 있는 국가시험을 전면 취소했다. 대안을 모색해서 학생들이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교육부는 곧 바이러스와 싸우는 핵심인력이 누구인지 발표했다. 이런 사람들이다. 의사, 간호사, 의료지원인력, 사회복지사, 교사, 성직자, 언론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공무원, 식료품 유통업자, 배달기사, 경찰, 소방관, 군인, 대중교통 기사, 가스·전기·상하수도·인터넷·통신 기사 등. 이들의 자녀는 학교에 올 수 있다. 논리는 이렇다. 이들은 지금 이 전투에 가장 필요한 인력인데 학교가 문을 닫으면, 이 사람들은 자녀를 돌보느라 제대로 일할 수 없다. 반대로 이 사람들이 무리해서 일하면 그 자녀는 안전하게 보호받기 어렵다. 그러므로 학교는 이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학교가 보호해야 하는 또 다른 집단은 특수교육이 필요한 장애학생이나 특별한 돌봄이 필요한 취약계층 학생이다. 그 외에 모든 학생은 학교에 가는 것이 금지됐다.

교사단체 “걱정 마시라”
GCSE와 A레벨 시험을 전격 취소한 것은 6월까지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다음날 교육부 장관은 언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학생들이 이 시험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압니다. 그 노력을 충분히 고려해 자격증을 주는 합리적인 방안을 내일 발표하겠습니다. 대안 마련을 위해 수석교사노조와 대학들과 긴밀히 협의했습니다.”
이튿날 그 대안이 발표됐다. 골자는 이렇다. 성적은 ‘만약 시험을 정상적으로 치렀다면 학생이 받았을 점수를 예상해서’ 학교의 담당교사가 정한다. 교사는 학생의 평소 과제 점수, 국가모의고사 성적 등을 근거 자료로 활용해 예상점수를 정하고 이를 시험위원회(Exam Boards)에 제출한다. 이 성적은 시험위원회와 국가자격청(Ofqual)의 최종 심의를 거쳐 확정한다. 학생이 성적에 만족하지 않는 경우 국가자격청에 재심을 요청할 수 있다. 한편 국가고사를 치르기 원하는 학생은 2020년 하반기에 시행되는 시험이나 2021년도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대안의 핵심은, 일단 교사가 학생들의 성적을 준다는 것이다.
한 교사단체 대표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자격청, 시험위원회, 학교는 함께 협력해서 학생들에게 공정한 성적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교사는 자기 과목의 전문가이고, 이 자격시험의 모든 평가 요소를 낱낱이 아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우리는 학생들을 잘 알고, 그들의 성취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영국 방송 <itv> 리포트 3월20일치) 그 뒤에 생략된 말은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라”일 것이다. 나도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나는 우리 두 아이의 성적도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를 가르친 선생님들은 이 아이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점수를 주고, 그 점수는 실제 시험에서 받았을 성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과에 만족하지 않을 경우 재심을 청구하면 된다.
만약 우리에게 수학능력시험을 치르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우리는 어떤 대안을 찾게 될까? 우리도 교사에게 학생들의 성적을 매기는 권한을 줄 수 있을까? 교사의 전문성을 믿어줄 수 있을까? 물론 영국과 한국의 교육제도와 문화는 매우 다르다. 그래서 영국 교육에 좋은 점이 있다고 해서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나는 이번 영국 교육부의 결정에서, 교사를 믿고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몹시 부러웠다. 이런 신뢰가 재난 상황이 교육장면에서의 혼란과 파국으로 치닫지 않게 하는 안전망 같았다.

전원을 껐다 켰을 때
세상이 멈췄다. 어쩌면 강제로라도 멈추는 게 필요했는지 모른다. 기계가 잘 작동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흔히 전원을 껐다 켠다. 어떤 문제는 단지 그것만으로도 해결이 된다. 언젠가 이 사회의 전원을 다시 켤 때, 우리도 그동안 마지못해 끌고 왔던 여러 잘못된 관성을 멈추고, 우리가 살고 싶은 모습으로 삶을 다시 세팅할 수 있을까? 그런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상상력과 지혜를 모을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혹시 교육문제와 관련해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내 생각을 찬찬히 나누고 싶다. 일단 지금은 멈춘 기계가 완전히 고장 난 것이 아니기를, 전원을 켜면 다시 작동하기를 바라는 게 순서이겠지만.

이스트본(영국)=이향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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