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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의 우주방사선 피폭량, 기존 예측보다 더 높게 나타나

실제 측정해봤더니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사용 프로그램보다 최소 10% 이상 높았다
등록 2019-09-30 12:07 수정 2020-05-03 04:29
대한항공 승무원들이 A380 기종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대한항공 승무원들이 A380 기종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항공기 승무원의 우주방사선 피폭량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더 높을 가능성이 커졌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최근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이 그동안 사용해온 피폭량 예측 프로그램인 카리식스엠(CARI-6M)의 예측값이 우주방사선 피폭량 실측값보다 최소 10% 이상 낮았다.

항공기 승무원의 연평균 방사선 피폭량은 2.2밀리시버트(mSv)로 원자력발전소 종사자보다 많다. 다른 직종과 비교해도 가장 많은 편이다. 지구에서 고위도·고고도로 갈수록 우주에서 오는 방사선에 많이 노출되는데, 장거리 비행을 자주 하는 항공기 승무원은 몸에 그 피해가 누적된다. 그래서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은 항공사에 승무원들의 피폭량을 조사해 관리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기존 예측값보다 실제 피폭량 클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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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국내 주요 항공사들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를 위한 안전지침’에 따라 승무원의 우주방사선 피폭량이 연간 6mSv가 넘지 않도록 관리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사실 항공사들은 승무원이 연간 노출되는 우주방사선의 양을 직접 측정한 적이 없다. 대신 미국에서 개발된 카리식스엠으로 피폭량을 추정해왔다.

카리식스엠의 예측이 정확하다면 굳이 우주방사선을 실측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번 국토교통부의 측정 결과를 보면 카리식스엠의 예측은 다소 부정확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3월 ‘인천~미국 앵커리지~뉴욕~인천’ 노선과 6월 ‘인천~미국 워싱턴~인천’ 노선을 오가며 한 차례씩 우주방사선 피폭량을 측정했다. 노선별로 우주방사선 실측 장비 3대를 항공기에 실어 측정한 뒤 평균을 냈다. 그 평균값을 카리식스엠을 비롯해 우주방사선 예측 프로그램인 나이라스/세이프(NAIRAS/SAFE), 크림(KREAM)과 비교했다.

분석 결과, 카리식스엠의 예측값은 실측값의 72%에서 90% 수준이었다. 실제보다 우주방사선을 최소 10% 이상 적게 계산한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카리식스엠이 태양우주방사선의 영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실제보다 피폭량을 낮게 예측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나이라스(NAIRAS)는 실측값과 가장 큰 차이가 났다. 나이라스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한국 국립전파연구원 우주전파센터가 세이프(SAFE)라는 프로그램으로 가공해 사용하고 있다. 나이라스의 예측값은 실측값의 123~158%에 이르렀다. 실제보다 훨씬 높게 예측한다는 이야기다.

가장 실측값에 가깝게 예측하는 프로그램은 크림이었다. 크림의 예측값은 실측값의 85~113%로 거의 똑같이 예측한 경우도 있었다. 2016년 개발해 기상청이 사용하는 크림은 세 프로그램 중 가장 최근에 개발됐다. 다만 크림은 다른 두 프로그램과 달리 일반인이 사용하기 힘든 연구자용 모델이다. 크림 개발을 주도했던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민간인과 항공사에서 사용하려면 추가 개발과 지속적인 유지·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국토교통부의 측정 결과는 우주방사선 피폭량 예측 프로그램을 좀더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황 박사는 “예측 프로그램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먼저 항공 노선별로 장기간 실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항공기에 실을 만큼 가벼운 우주방사선 측정 장비를 개발하고 대량 생산하는 데만 최소 20억~30억원이 든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항공 종사자 암 발병률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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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방사선은 항공승무원에게 각종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지난 8월 강모열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교수, 윤진하 연세대 의대 교수 등 국내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을 보면 항공운송산업 종사자의 백혈병 발병률이 공무원보다 1.86배, 일반 노동자보다 1.77배 높았다. 여성 항공운송산업 종사자는 전체 암 발병률에서도 공무원보다 2.27배, 일반 노동자보다 2.09배 높았다.(참고문헌1)

이 연구는 한국에서 처음 항공승무원의 암 발병률을 분석한 것이다. 연구진은 2002년부터 2015년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항공운송산업 종사자 연인원 5만9751명의 암 발생률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논문 말미에 “유럽​​연합(EU)은 방사선량을 모니터링하고 방사선 노출을 줄이기 위한 계획을 세우며 코호트 연구를 수행하도록 항공사에 요구한다”며 “한국의 항공운송산업 종사자가 EU에서 일하는 승무원에 비해 보호 수준이 낮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고품질 연구를 시급히 수행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우주방사선 피폭 산재신청 벌써 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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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백혈병과 각종 암에 걸린 일부 대한항공 승무원들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역학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김승현 노무사(노무법인 ‘시선’)는 “우주방사선에 피폭돼 암에 걸렸다며 산재 신청을 한 승무원이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총 4명”이며 “산재 신청을 고민하고 상담해온 승무원은 훨씬 많다”고 했다.

황정아 박사는 “승무원뿐 아니라 외국 출장을 자주 다니는 일반인도 우주방사선에 피폭된다”며 “우주방사선 연구는 전체 국민의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변재일 의원은 “정확한 데이터만이 우주방사선의 막연한 공포를 없애고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만큼 정부와 실측 확대 방안을 협의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font size="2">참고문헌 1. doi:10.3390/ijerph16162906
</font>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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