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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까지 ‘신분제’

설렁썰렁
등록 2019-08-24 16:32 수정 2020-05-03 04:29
한겨레 김정효 기자

한겨레 김정효 기자

죽음은 평등하나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죽음의 격차’를 줄이려면 죽음을 ‘법의학적 부검’에 가두지 않고 ‘사회적 부검대’에 올려야 한다. 지난해 12월4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노동자 김용균(당시 24살)의 ‘사회적 부검’ 결과가 8월19일 발표됐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는 700여 쪽에 이르는 진상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김용균의 사인으로 석탄화력발전소의 원·하청 구조,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를 지목했다. 보고서를 통해 원·하청 노동자의 죽음에 ‘점수’를 달리 매기는 ‘죽음의 외주화’라는 참혹한 사실도 드러났다. 특조위는 13개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원·하청 노동자 1만5061명에게 작업환경·노동조건·안전사고 등을 설문조사해, 위험의 외주화가 김용균 개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를 옥죄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발전산업 원·하청 구조가 하청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한 것은 ‘숫자’로 여실히 드러난다. 발전 5사와 하청업체의 최근 5년간 재해율을 분석한 결과, 사고의 93%가 하청업체에서 일어났다. 특조위는 고용형태와 사고의 상관관계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하청업체 노동자가 1명 늘어날 때마다 연간 작업 관련 사고가 0.75회 증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5개 발전사에서 일하는 협력사(하청) 노동자 6220명의 임금은 정규직 임금 53~77%에 불과했고, 대신 2017~2018년 하청업체들의 영업이익률(9.1~19.5%)은 2018년 상장사들 평균 영업이익률(5.98%)보다 높았다.

원·하청 노동자의 죽음도 점수로 계량화해 차별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발전 5사는 정부경영평가와 연계해 내부 평가제도를 운영하는데, 한 발전사는 원청 노동자가 숨질 경우 계수 12를 곱해 평가점수를 깎았는데 하청 노동자는 계수 4를 곱했다. 또 다른 발전사는 원청 노동자에게 1.50(사망시)의 감점 계수를 적용했지만, 하청 노동자에겐 1.00을 적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평가는 발전사 직원들의 승진과 인센티브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원·하청 노동자 사이에 ‘신분제’가 존재했고, 이는 노동 현장부터 죽음까지 ‘사람을 차별하는’ 시스템으로 유지된 것이다.

이 구조에서 안전 비용 지출이나 안전 시스템 마련은 무시됐고, 원·하청의 소통 부재는 노동 현장의 사고 위험을 높였다. 이에 특조위는 발전사에 정비·운영 업무의 민영화와 외주화를 철회하고, 정부와 국회에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고 권고했다.

사회적 부검은 죽음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한 사회의 고통스러운 첫걸음이다.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의 호소를 흘려보내면 우리는 또다시 ‘사회적 부검’이라는 고통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무방비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지, 또 우리는 방관하고 살 수밖에 없는지, 앞으로 어떻게 생각을 바꿔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블라블라


젖 먹이는 국회의장


트레버 맬러드 뉴질랜드 국회의장 트위터

트레버 맬러드 뉴질랜드 국회의장 트위터

국회의장이 회의를 주재하면서 동료 의원의 아이에게 젖병을 물린다면? 영화나 드라마 속 한 장면이 아니다. 트레버 맬러드 뉴질랜드 국회의장이 8월21일(현지시각) 회의를 주재하면서 동료 의원이 데려온 아기를 돌봐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맬러드 의장은 회의를 마친 뒤 자신의 트위터에 아기를 돌보는 사진과 함께 “통상 의장 자리는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오늘은 VIP가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고 올렸다. 그의 ‘육아 도우미 활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년 전에도 본회의에서 동료 의원의 생후 3개월 아기를 안은 채 의사를 진행해 화제가 됐다. 당시 국회를 가족친화적 분위기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며 동료 여성 의원의 아기를 돌봤다.
이날 의장석에 앉은 ‘두 번째 VIP’는 지난 7월 태어난 노동당 소속 타마티 코피 의원의 아기다. 코피 의원은 배우자 출산휴가를 마치고 이날 의회에 출석했다. 동성애자인 코피 의원(남성)은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았는데, 현지 언론에 “동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느꼈다”고 등원 소감을 전했다. 다양성을 중시하며 성소수자, 마오리 사람, 장애인 등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해온 뉴질랜드였으니 가능한 일로 보인다.
미국·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선 아이와 회의장 출입이 가능하지만 이를 금하는 나라도 많다. 우리 국회 역시 이를 금한다. 지난 4월5일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은 본회의에서 배우자 육아휴직 확대 방안을 담은 법안 제안 설명을 하며 생후 6개월 된 자녀를 데리고 등원하려 했지만, 국회는 “영아의 본회의장 출입 문제는 의안 심의 등 본회의 운영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의안 심의권은 어떤 상황에서도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불허했다.
국회 앞에는 ‘민의의 전당’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이 되려면 국민을 닮아야 한다. 중년 남성 중심의 국회 얼굴이 양육자, 성소수자, 장애인 등으로 다채롭게 바뀐다면 뉴질랜드 의회의 따뜻한 장면이 먼 나라 일만은 아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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