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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과 합격은 어떻게 계급이 되나

공채 제도 모순 고발한 르포르타주 <당선, 합격, 계급> 펴낸 작가 장강명 인터뷰
등록 2018-05-24 10:01 수정 2020-05-03 04:28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함께 출입하던 2013년 국회에서, 장강명 작가를 처음 만났다. 그때 장 작가는 정당팀 기자였다. 소설 을 썼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지금은 중진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만날 때마다 장 작가의 소설만 아니라 기사도 언급했다. 은 물론이고 어떤 흔적에서든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게 뭘까, 궁금했다. 따로 대화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

현실 꿰뚫었던 문학의 상상

2년 뒤인 2015년 겨울, 장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사이 장 작가는 기자를 그만두고 국정원 댓글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 를 썼다. 나는 국정원 댓글 사건에 이어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 등을 취재했고 보도했다. 를 읽는 내내 2014년 즈음 만난 한 제보자가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삶을 걸고 군이 아닌 민간 영역에서 댓글 여론 조작을 어떻게 수행했는지 말하려 했다. 추가 취재해 보도를 준비했지만 기사는 내놓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보자가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는 말을 전해왔다. 직접 말하지도 못할 만큼 불안한 듯했다. 본인들을 보호해줄 수 없을 것이라는 말도 더해졌다. 솔직히 아니라고 자신할 수 없었다(언론사는 보도를 할 뿐 제보자를 보호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다).

“상상해서 쓴 겁니다.”

당시 장 작가의 답은 간명했다. 할 말이 많았지만 더 이어갈 수 없었다. 결국 2년 뒤 이 보도한 국정원 여론 조작 민간인 댓글팀 ‘알파팀’은 에 등장하는 여론 조작 업체 ‘팀-알렙’과 닮아 있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해외 도피 대목은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고 들었다). 진보 성향 일간지 K신문 기자가 등장하기도 했다. 상상이라는 말을 믿기 어려웠다.

2년여가 흘렀고, 5월15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장 작가를 만났다. 장 작가는 (민음사)이라는 446쪽짜리 사회과학 서적을 내놓았다. 공모전을 비롯한 공채 제도의 단면을 드러낸 르포르타주였다. 글은 에두르지 않고 곳곳에서 제도의 이면을 직격했다. 공모전을 만든 박맹호 민음사 회장 인터뷰나 강태형 문학동네 대표, 이기섭 한겨레출판 대표 등과의 대화에서는 한 치의 물러섬이나 주저함이 없었다. 작가 지망생 520명에 대한 여론조사도 직접 했다. “문학공모전을 거치지 않은 작가는 한국에서 활동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숫자가 65%라는 점도 놀라웠지만, 무응답이 4명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더 놀라웠다. 장 작가가 수행한 ‘취재’의 밀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했다. 21회 한겨레문학상과 5회 수림문학상 심사에 직접 참가해 날것 그대로를 묘사했다. 작가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면 곳곳에 밑줄 그을 만하다. ‘아쉬움은 없느냐’는 질문에 “할 만큼은 한 거 같다” “애초에 할 수 있었는데 안 했거나 그런 건 없다”는 답을 내놓은 것은 작가 입장에서 당연해 보인다. 순전히 장 작가의 노력으로 책에는 인터뷰와 자료가 빼곡하다. 그리고 두툼하다. 그럼에도 읽기는 수월하다. 스타일 때문이다.

변질된 공채 제도, 누가 떠받치나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나는 직설적으로 말하고 인간이나 세상에 거리를 두고, 바로 옆에서 그 사람을 쓰다듬기보다 한 발짝 떨어져서 냉정하게 바라본다. 그건 나의 스타일이다. 그리고 작가로서 그런 스타일은 단문으로 쓸 때 잘 살아난다. 짧은 문장은 무언가를 규정한다. 기사도 그렇다. 현상을 두고 이것이 무엇이다, 리드를 쓰고 주제를 잡는 것. 그 현상을 실어나르는 문장들은 다 짧고 강하다. 그런 스타일은 작가로서 성격이자 세계관이다.”

자기만의 스타일은 빈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인터뷰도 그랬다. 인터뷰를 하다보면 질문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거나, 질문의 의도대로만 얘기하는 대상을 만나는 일이 흔하다. 질문의 의도를 몰라서라기보다 솔직하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인터뷰에 응하는 이에게는 피곤한 일일 수 있다. 자칫 합을 맞춘 무술이 아닌 이종격투기가 되면 서로를 피투성이로 만들 수 있다. 결국 결과물은 불편할 수밖에 없지만 그런 인터뷰는 예외 없이 힘이 세다. 장 작가가 그랬다.

장 작가가 자신의 무대를 넓혀가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번 르포뿐만 아니라 그의 활동은 이미 곳곳에서 빛이 났다. 문학상만 휩쓴 게 아니다( 한겨레문학상, 수림문학상, 제주4·3평화문학상, 오늘의 작가상, 문학동네작가상 등). 에세이()를 내놓고, 6만 명이 매번 내려받는 독서 팟캐스트 를 진행한다. 일간지 칼럼도 눈에 띈다. 라디오 출연도 한다. 장 작가는 “독자와 접점을 넓히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 말만 듣기는 아쉬웠다. 차고 넘치는 말들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매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영리하게 이용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질문이 반복됐다.

“제 본업은 작가고, 제가 굉장히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은 소설이랑 논픽션입니다. 복잡한 얘기인가요?”

독자를 다양한 경로로 만나기 위해 애쓰는 태도는 그 자체로 독자에게 감사한 일이다. 다양한, 또는 즉각적인 사회적 발언을 강요할 수 없는 일이다(이것은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만의 세계에서 빚어지는 작품으로 그의 스타일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특정 방향의 답변이 듣고 싶어 의도가 있는 질문을 던지면 그는 그걸 바로 알아챘다. 대화의 고수였다. 나는 몇 번 그런 질문을 던졌다가 곧 항복하고 말았다.”(, 72쪽)

장 작가가 박맹호 회장과 대화 뒤 남긴 구절은 역할을 달리해 이날 반복됐다. 장 작가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그래도 궁금함은 남았다. 작가의 말대로 작가가 넓혀놓은 여러 지점에서 이 책은 어떤 논쟁거리가 될까. “(공채 제도로) 역동성이 점점 사라지고 우리 공동체가 계급사회 같은 모습”이 돼가지만 “한국에서 간판이 만드는 차별과 서열의 구조는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유지”된다는 진단에 얼마의 자성이 일어날 수 있을까. “어떤 새로운 종류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독자들의 문예운동”을 말하는 작가에게 결국 독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

마지막 질문, 이 책에서 꼭 기억해줬으면 하는 한마디를 부탁했다. 너무 진부한 질문이라 그랬을까. 오후 4시의 한 시간 반 인터뷰에 이어 밤 11시 추가 전화 인터뷰까지 단 한 번도 막힘없던 장 작가가 “잠깐만요”를 두 번 반복했다.

“아무리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라고 해도, 시험 한두 번으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는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두 차례 정정 끝에 어렵사리 내놓은 답변이다.

장소제공 어반 플랜트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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