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동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SOCAP’ 콘퍼런스에 다녀왔다. SOCAP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약자로, SOCAP 콘퍼런스는 사회적 영향력, 즉 임팩트를 고려해 자본을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 분야의 세계 최대 콘퍼런스다. 첫 번째 SOCAP 콘퍼런스는 2008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의 한복판에서 시작되었다. 슬로건은 ‘돈+의미’다. 예전이었다면 돈과 의미를 함께 좇는 투자라는 게 터무니없이 들렸겠지만, 리먼 사태 이후 ‘터무니 없는 주장’에 설득력이 실리기 시작했다. 금전적 이익에만 몰두했던 금융기관들이 우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자본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한 수익성 역시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던 때였다.
‘임팩트 투자’ 10년의 고민10년이 지난 지금, 자본의 탐욕에 대한 경종이 힘을 잃은 만큼 임팩트 투자 열기도 사그라졌을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다. 올해로 10년째를 맞은 SOCAP는 해마다 규모를 키워나가고 있다. 이번 SOCAP의 화두 중 하나는 ‘주류화’였다. 콘퍼런스 직전, 대형 글로벌 사모펀드인 TPG에서 ‘라이즈’(Rise)라는 이름의 임팩트 투자 펀드를 20억달러(약 2.3조원) 규모로 결성했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석 달쯤 전에는 또 다른 글로벌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털의 ‘더블 임팩트’ 펀드가 3억9천만달러(약 4400억원) 규모로 조성되기도 했다.
대형 펀드들의 시장 진입은 임팩트 투자가 금융업의 주류로 편입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혔고, 그 반응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시장의 확대가 더 많은 투자 기회, 더 큰 사회적 가치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는 반응으로, 주로 금융 전문가로서 이력을 키워온 이들 쪽에서 나왔다. 또 다른 반응은 회의 섞인 우려였다. 기존 임팩트 투자 자본이 리스크 관용도가 높고, 사회적 가치에 대한 신념 또한 강한 고액 자산가나 재단ㆍ기금 등에서 왔다면, 대형 사모펀드를 통해 유입되는 자본은 좀더 보편적인 금융의 문법을 따를 수밖에 없는 연기금이나 대형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에서 나온다. 보통 시민들의 금융자산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자본인 셈이다. 이런 자본은 훨씬 안정적인 수익률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임팩트를 요구한다. 이 기준에 부합하려면 결국 ‘진짜’ 임팩트가 아닌 것에 ‘측정 가능성’의 포장을 씌워 임팩트라고 이르는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그러다보면 여태껏 쌓아온 임팩트 투자의 진정성이 훼손되지는 않을까? ‘임팩트 우선’을 외치며 오랫동안 인내 자본을 제공해온 전통적인 임팩트 투자자들, 특히 자선재단이나 비영리기구에서 이력을 시작한 사람들이 던지는 이런 질문들이 주류화에 대한 반응의 또 다른 갈래를 이루었다.
이런 식으로 엇갈리는 반응이 그리 놀랍지는 않다. 내 이야기를 들은 김주온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최근 열린 기본소득 지구총회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본소득 역시 빠르게 확장 중인 의제다. 기본소득을 오랫동안 주장해온 사람들과는 별개로, 다른 각도에서 기본소득을 실험하는 주체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기본소득 의제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에 대한 기대와 함께, 새롭게 조명되는 기본소득이 ‘우리’가 주장해온 ‘진짜’ 기본소득이냐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존재할 것이다. 이런 기대와 우려의 공존이야말로 한 시기에서 또 다른 시기로 넘어가는 변곡점의 증거일 것이다.
“우리는 닮은 것이 더 많다”과거에는 도외시되었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는 현장에서 우리는 기대와 우려가 함께 등장하는 것을 본다. 핵심은 기대하는 이들과 우려하는 이들이 서로 예의를 갖춘 채 한 테이블에서 논의하는 장이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내가 SOCAP에서 본 것은 양쪽 모두에게 마이크를 줌으로써 양쪽을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묶어내려는 노력이었다. “우리는 다른 것보다 닮은 것이 더 많다.”(We are more alike than unlike.) SOCAP 10주년 기념책자에 적혀 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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