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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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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데 너무 어린 나이는 없다

[아삭아삭 민주주의 학교] 목수정 작가와 장석준 활동가가 들려주는 역사와 사회 이야기
등록 2016-11-16 22:35 수정 2020-05-03 04:28
이 지면은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학부모를 위해 과 가 함께 만듭니다. 경제·철학·과학·역사·사회·생태·문화·언론 등 분야별 개념과 가치, 이슈를 다루는 ‘아삭아삭 민주주의 학교’와 아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고래토론’을 격주로 싣습니다.
목수정·장석준
그림 허지영

문화 목수정_ 다른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한 대로 살아가는 이모야. 편견과 관습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실천하려고 노력해. 프랑스에 살면서 여러 신문에 글을 쓰고 있어. 쓴 책으로 등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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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모의 아빠 이야기를 들려줄게. 이모의 아빠는 ‘따르릉따르릉 비켜나세요’로 시작되는 동요 를 지으신 아동문학가 목일신 선생님이야. 살아 계시는 동안 모두 400여 편의 동시를 쓰셨다고 하는데, 이모는 아빠가 동시 쓰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단다. 왜 그런 줄 아니? 이 모든 동시는 아빠가 어린 시절에 쓰셨기 때문이야. 를 쓰신 나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였대. 그리고 나머지 모든 시도 10대 시절에 쓰신 것이지.

재미있는 것은, 이 동시에 곡을 붙여주신 작곡가 김대현 선생님도, 작곡을 중학생 때 했다는 거야. 기차를 타고 학교에 가다가 잡지에서 이 시를 발견하고, 바로 종이를 꺼내 오선지를 그리고 한달음에 작곡한 곡이, 신나는 동요 가 된 거지. 소년 둘이 작사하고 작곡한 노래를 한 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온 국민이 불러온 거야. 그런데 이 이야기는 그리 놀라운 게 아니었단다. 그때 만들어진 수많은 동요의 창작자는 이처럼 어린이들이었거든.

일제강점기에는 수많은 어린이 잡지가 생겨났고, 어른이 읽는 일간지에도 어린이가 쓴 동시를 많이 실어주었어. 그때는 모든 문인의 활동이 감시와 탄압 속에 기를 펴지 못하던 시절이었거든. 그래서 어린이가 주인공이 되는 아동문학운동이 일제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운동으로서 자리하게 된 거야.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쓰고 어린이날을 만드셨던, 방정환 선생님이 ‘색동회’라는 어린이문화운동 단체를 만든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야. 일제가 학교에서 일본어를 교육했고, 우리말을 못 쓰게 했거든. 그럴수록 우리말을 통해 생각을 표현하고, 노래할 수 있는 길을 찾은 거지. 그건 문화운동인 동시에 독립운동이기도 했단다.

1929년 말부터 6개월간 이어진 광주 학생운동도 이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 항일운동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져, 350여 개 학교 학생이 일제에 항의해서 동맹휴학(어떤 주장을 이루어내기 위해 학생들이 집단으로 한동안 학교를 쉬는 일을 말해)을 하고, 거리에 나가 만세를 부르며, 전단을 만들어 뿌리고 항일시위를 했지.

물론 무수히 많은 학생이 감옥에 가야 했어. 이모의 아빠도 그중 한 사람이었고. 지금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에 맞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청소년들이 있긴 해. 하지만 그들이 주인공이 되어서 전국적으로 큰 사회운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게 현실이야.

이런 역사 속 사건을 되짚어보면서, 혹시 그때 어린이들이 지금보다 사회적 지위가 훨씬 더 나았던 게 아닐까 생각했어. 그것은 어린이 문화운동을 통해, 단순히 어른이 만든 문화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창작의 주인공으로 나섰기 때문 아닐까. 어린이가 단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미숙한 존재여서, 어른이 정해놓은 대로 생활하고 그들이 그려놓은 길을 따라 걸어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어린이의 감수성과 시선으로 세상에 목소리를 내고, 세상을 더 멋지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걸 많은 사람이 일깨우려 노력했고, 그 결과 당시 어린이는 더 성숙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간 거지.

“세상을 바꾸고 싶은 꿈을 갖는 데 너무 어린 나이는 없다”는 말이 프랑스에 있는데, 이모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데 너무 어린 나이는 없다”라고 동무들에게 말해주고 싶어. 일제강점기를 산 아이들이 시를 쓰고 동요를 지어 어른과 함께 부를 아름다운 노래를 세상에 선사하고, 용기와 희망을 모두에게 불어넣었던 것처럼 말이야.

사회 장석준_ 진보정당에서 정책을 만들고 교육하는 활동가야. 진보적 시각으로 사회문제를 해석하고 대안을 만드는 연구활동을 하고 있어. 지은 책으로 등이 있어.

몇 년 전 독일에서 대학생들이 거리에 나와 시위를 했어. 대학생들은 “대학 등록금을 없애야 한다”고 외쳤어. 동무들도 등록금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니? 대학생이 되면 학교에 등록금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내야 해. 그래야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어. 한국에서는 대학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에도 등록금 제도가 있단다. 동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랑은 달라. 등록금을 못 내면 학교에 더 다닐 수 없지.

독일 대학생들은 이 등록금을 없애려고 시위를 한 거야. 이때 독일 대학 등록금이 우리 돈으로 얼마였느냐면 한 학기 70만원 정도였어. 동무들이 보기에는 꽤 큰돈이지? 그런데 한국 대학 등록금은 얼마인지 아니? 700만원이 넘는 곳이 많단다. 독일의 10배가 넘어. 한국 대학 등록금이랑 비교하니까 독일 대학 등록금은 정말 적어 보이지? 그런데도 독일 대학생들은 대학교가 등록금을 받아선 안 된다며 시위를 벌였어. 독일 대학생이 한국에 와보면 정말 까무러치지 않을까.

실은 독일에서 대학 등록금을 받기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됐단다. 그 전에는 학생들이 거의 돈을 내지 않았어. 이렇게 학생들이 따로 돈을 내지 않고 교육받는 걸 ‘무상교육’이라고 하지. 독일은 오랫동안 대학까지 무상교육이었어. 그러다 등록금을 조금 받기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대학생들의 반대에 부딪혔어. 요즘 독일에선 다시 대학까지 무상교육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

한국에서도 동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무상교육이야. 하지만 고등학교, 대학교로 갈수록 엄청난 돈을 내야 해. 도대체 한 학기에 700만원이나 되는 돈을 별 걱정 없이 낼 수 있는 집이 얼마나 있겠어? 그래서 많은 대학생 언니, 오빠가 편의점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그래도 돈을 다 마련할 수 없어 은행에 빚을 져서 등록금을 내기도 해. 20대 젊은 시절을 빚지고 다시 이걸 갚는 데 다 보내고 있어.

정말 답답한 현실이지. 한국 사람이 독일 사람보다 10배 더 잘사는 게 아니잖아. 오히려 독일 사람이 우리보다 몇 배 더 잘살지. 그런데도 독일은 대학까지 무상교육인데 한국은 대학교 가려면 온 가족이 고생해야 해. 수많은 젊은이가 빚쟁이가 되고 말이야. 이걸 하루빨리 바꾸지 않으면 몇 년 뒤 동무들과 부모님들도 이런 일을 겪어야 한단다.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을까? 독일은 도대체 어떻게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할 수 있는 걸까? 그 이유는 독일 대학이 공립대학이기 때문이야. 독일 대학은 대부분 중앙정부나 시청, 도청에 속해 있어. 그래서 세금으로 운영되지. 돈 많은 사람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둬 대학을 운영해. 가난한 학생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게 아니라.

반면 한국 대학들은 대부분 사립대학이야. 돈 많은 사람이 모여서 재단이라는 곳을 만들고 이 재단이 학교를 운영해. 실은 이 재단이 자기네 돈을 써서 학생을 교육해야 하지. 그런데 현실은 반대야. 오로지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학교를 운영해.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돈을 남겨서 대기업처럼 덩치를 불리지. 이런 교육 장사에 수많은 젊은이와 그 가족이 희생양이 되고 있어.

동무들이 보기에 어느 쪽이 더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니? 교육은 단순히 한 사람만의 성공을 위한 것은 아니야. 한국 사회 전체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꼭 필요한 일이지. 그렇다면 독일처럼 사회 전체가 대학 교육까지 책임지는 게 올바른 방식 아닐까?

우리도 이렇게 되려면 결국 한국 대학들도 사립대학에서 공립대학으로 바뀌어야겠지. 등록금을 없애려고 시위를 벌였던 독일 대학생들처럼 동무들과 부모님들도 이제 한국의 대학 교육을 바꾸는 운동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

*스스로 생각하는 힘, 동무와 함께하는 마음이 교양입니다. 하나뿐인 어린이 교양지 와 만나세요. 구독 문의 031-955-9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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