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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하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녹색의 삶과 여성운동 활동가의 삶을 꿈꾸는 두 청년,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이들에게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
등록 2016-10-12 18:51 수정 2020-05-03 04:28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두 명의 20대 여성이다.
이들은 지금과 다른 세상을 꿈꾸고, 그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현실에서 분투하고 있다. 생태마을을 꿈꾸는 한 명은 지속 가능한 녹색사회를 고민하는 민간연구소에서 반상근 연구원으로, 여성운동에 관심이 많은 한 명은 시민사회단체 상근 간사로 일한다.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다.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 서울살이의 팍팍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20대 여성이다. 돈이 없을 땐 주로 김밥과 ‘친구’처럼 지낸다. 대안학교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를 지난 8월 졸업했다. 1천만원 안팎의 학자금 대출이 남아 있어 다달이 이자를 내야 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환상이 되어버린 생태적 삶 </font></font>
좋아하는 일과 돈을 버는 일 사이에 접점을 찾았지만, 월급이 넉넉하진 않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하고 싶은 일도 종종 밀어낸다. 이들은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으로도 기본소득이 꼭 필요하다고 느낀다.
유토피아 같은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는 절박한 마음에서 나온다. 의 기본소득 스토리펀딩 프로젝트는 절망이 가득한 시대에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싹 틔워보자는 사회적, 정치적 제안이다. 어려운 현실임에도 다른 세상을 꿈꾸길 멈추지 않으며 기본소득 도입을 간절히 바라는 김민서씨와 최민솔씨를 만난 까닭이다.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지원서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font size="4">기본소득 스토리펀딩 프로젝트 지원서</font>

김민서씨는 생태마을을 만들어 그곳에 살면서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 류우종 기자

김민서씨는 생태마을을 만들어 그곳에 살면서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 류우종 기자

1) 이름 <font color="#00847C">김민서</font>

2) 나이 <font color="#00847C">만 24살</font>

3) 성별 <font color="#00847C">여성</font>

4) 직업 <font color="#00847C">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주 3일 근무)</font>

5) 거주 지역 <font color="#00847C">서울(자취 중)</font>

6) 내가 기본소득을 받는다면?<font color="#00847C">오늘도 떡으로 끼니를 때웠다. 지하철역 안 가판대에서 파는 1천원짜리, 아마도 중국산 쌀로 만들었을 떡. 내일 점심은 한 줄에 1500원짜리 김밥을 먹어야겠다. 김밥과 떡은 내 친구~.
어제 친구들을 만났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너무 비싸니까 딴 데 가자”고 친구들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친구들을 만난 다음날 주식은 항상 떡이나 김밥이다.
서울에서 자취생이 아낄 수 있는 생활비는 식비밖에 없다. 주거비를 아끼려고 고시텔에도 들어가봤고, 친구들 여럿과 같이 살아보기도 했다. 집값 비싼 서울 하늘 아래 살려면, 주거비는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더 줄일 건 먹는 것뿐이다. 굶기도 많이 해봤다. 아니면 오늘처럼 대충 때우거나. 녹색전환연구소에서 주 3일 일하고, 가끔 번역이나 일일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을 보태도 항상 월 95만원 안팎 드는 생활비는 빠듯하다.
떡과 김밥을 씹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거 전부 외국산으로 만든 거잖아. 화학비료로 재배했을 거고.’ 입안이 씁쓸하다. ‘내가 지속 가능한 농업과 먹거리를 고민하고 말하는 사람인데….’ 싸다는 이유만으로 비생태적 먹거리에 손을 뻗은 나 자신이 싫어진다. ‘나도 생협 같은 곳에서 이 땅을 살리는 농부들을 위해 생태적 소비를 하고 싶다고!’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안타깝지만 당장 한 푼이 아쉬운 마당에, 유기농 음식을 사먹을 수 없다.
나는 생태마을을 꿈꾼다. 귀농·귀촌해서 작은 생태마을을 만들어 그 안에 살면서 생태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을 하고 싶다. 사람들이 각자도생하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을 고민하는 마을에서, 먹거리는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업으로 최대한 자급자족하거나 지역의 농부가 재배한 로컬푸드를 사먹고, 적정기술을 활용해 생태건축으로 지은 집에서 태양열에너지로 전기를 돌리며 최대한 탄소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며 살고 싶다.
고등학교 때부터 오랫동안 품어온 꿈이다. 경기도에 있는 대안학교를 다녔는데 거기선 생태수업, 농사수업을 했다. 부모님은 평범하지만, 한국 사회 공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고민이 남다르셨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퇴직한 아버지가 새로운 일을 벌이느라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이었지만, 공립학교보다 학비가 비싼 대안학교에 자식들을 보내느라 많이 애쓰셨다. 부모님께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고등학교 때 덴마크의 생태마을, 시민교육을 처음 알게 됐고 직접 가보고 싶어졌다. 6년을 고민하고 준비했다.
2012년, 본격 준비에 나섰다. 대학을 휴학하고 나서 1년6개월여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울 신촌에 있는 대학교 안 성당 사무실에서 일하고, 다른 아르바이트도 병행했다. 집에서 용돈을 받을 때였고, 친구랑 같이 살면서 생활비를 월 40만원 이하로 아낀 덕분에 1000만원을 모을 수 있었다. 그 돈으로 덴마크에 갔다. 처음 6개월은 교환학생 신분이었고, 그 뒤 6개월은 덴마크 안에 있는 생태마을과 생태농장에서 일했다. 영국, 이탈리아, 포르투갈의 유기농 농장과 생태공동체도 체험했다. 생태마을 안에서 농사를 도우면 숙식을 제공해주는 교육 프로그램이라, 반 무전여행처럼 다녔다. 힘들었지만,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때 확신했다. 내가 농사일을 좋아하고 그 일을 할 때 행복하다는 걸.
“네 꿈은 너무 비현실적인 거 아냐? 생태마을? 유토피아 같은 거잖아.” 대학교에 들어온 뒤로 그런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실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리라고. 유럽에서 1년간의 경험은 그 대답이었고, 스스로도 내 길을 찾았다는 확신을 얻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꿈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주변에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도 많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몰라도, 그 친구들도 삶을 힘겨워하고 때로 공허해한다. 나는 돈을 많이 못 벌지언정 행복한 삶을 살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한국에 돌아온 뒤, 조금씩 흔들린다. 집안 형편이 부쩍 어려워진 탓이다. 일단 내가 감당해야 할 빚 1천만원. 대학 4년간 등록금을 모두 학자금 대출로 댔다. 장학금을 많이 받은 편이지만, 아직 갚을 돈이 많다. 월 5만~6만원씩 대출이자가 꼬박꼬박 나가고, 내년부터 원금 상환에 들어가면 월 10만원씩 부담이 늘어날 것이다.
지금은 각종 활동비로 어찌어찌 생활을 꾸려가지만, 그다음은? 집안의 빚까지 생각하면 더 아득해진다. 귀농은 언제 하지? 아, 빚은 갚고 가야 하는데…. 귀농했던 한 친구는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바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뭔가 높고 단단한 벽에 부딪힌 느낌이다.
여전히 나는 꿈을 포기하진 않았다. 뜻 맞는 이들과 함께 국내외 생태마을을 방문하고 생태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모임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녹색전환연구소에서도 지속 가능한 생태사회와 관련된 일들을 한다. 하지만 요즘은 자꾸 다른 생각이 삐죽이 나를 찌른다.
얼마 전에 운 좋게 행복주택에 당첨됐다. 4년간 월 18만원씩만 내면 살 수 있는 안정된 주거공간이다. 그것도 서울에. 처음엔 기뻤고, 다음엔 고민됐다. 그럼 귀농 대신 4년간 서울에 살면서 큰 회사에 취직해 빚을 먼저 갚아야 하는 걸까? 나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머리보다 몸이 먼저 느낀 시기도 지난해부터다. 2012년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을 하는 대학 친구한테 기본소득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어떤 개념인지 확 다가오진 않았다. 그런데 ‘생계’ ‘생존’ 이런 단어들이 내 삶에 중요해지면서 기본소득이라는 단어도 절박하게 와닿기 시작했다. 월 30만원, 40만원이라도 기본소득이 있다면 밥 한 끼 덜 굶어도 되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마음대로 만날 수 있을 텐데….
20대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해서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라는데, 나는 늘 머뭇거리고만 있다. ‘앗, 이 교육 프로그램 정말 들어보고 싶다.’ 신청비가 3만원? ‘이걸 해도 될까? 음… 가만있자, 3만원 추가 지출이 생기면 이달 생활비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렇게 내 삶의 반경이 계속, 점점 줄어든다. 항상 뭘 포기해야 하지, 뭘 먼저 버려야 하지 고민하는 시간들이 괴롭다. </font>

해리씨는 지난여름 드라마 (JTBC)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배우 한예리가 연기하는 윤진명이라는 캐릭터는 가난한 청년이다. 식물인간 상태인 남동생의 병원비와 대학 등록금 때문에 빚이 너무 많아서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성추행도 참아내며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돈이 없고 시간이 없어, 친구를 만나거나 연애하는 건 상상도 못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삶의 반경이 조금씩 줄어든다</font></font>

해리씨는 “윤진명이 힘들어하는 게 뭔지, 포기해야 하는 게 뭔지 너무 잘 알겠더라”고 말했다. 한예리가 나올 때마다 감정이입해서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드라마 속 한예리와 비슷한 청년을 현실에서 찾기는 어렵지 않다. 씩씩해 보이는 최민솔씨도 돈 때문에 가끔 운다고 털어놨다. “돈이 너무 없는데, 왜 없어지는지 모르겠어서” 울고 “돈 때문에 사람을 만날 수 없어” 울었다.

<font size="4">기본소득 스토리펀딩 프로젝트 지원서</font>
여성운동을 하고 싶은 최민솔씨는 기본소득을 받아 팍팍한 삶에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 류우종 기자

여성운동을 하고 싶은 최민솔씨는 기본소득을 받아 팍팍한 삶에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 류우종 기자

1) 이름 <font color="#00847C">최민솔</font>

2) 나이 <font color="#00847C">만 23살</font>

3) 성별 <font color="#00847C">여성</font>

4) 직업 <font color="#00847C">시민사회단체 간사(취업 3주차)</font>

5) 거주 지역 <font color="#00847C">서울(자취 중)</font>

6) 내가 기본소득을 받는다면?<font color="#00847C"> 900원짜리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할 때가 종종 있다. 돈이 없어서다. 그럴 땐 친구도 못 만난다. 한 끼를 900원에 해결하는데, 친구 만난 기념으로 4천~5천원짜리 커피를 마실 수는 없으니까. 돈 없을 때 스트레스 1순위는 밥이고, 2순위는 사람 못 만나는 일이다.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와서 자취하다보니 여기저기 돈 들어갈 곳이 많다. 수도권에서 부모님과 같이 사는 친구들은 밥이라도 안 굶지, 자취생들은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몽땅 생활비로 써야 한다. 서울에서 혼자 살려면 생활비 월 80만원은 기본이다. 그래도 나는 지난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 임대주택에 당첨돼 형편이 좀 나아졌다. LH에서 전세금을 대출해주고 나는 보증금 없이 월 13만원씩만 내면 되니까, 주거비 걱정을 한결 덜었다.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로,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빵집에서 생크림을 짜고, 부동산 회사에서 등기부등본을 떼고, 전자담배가게에서 전자담배를 팔고,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전시회를 보러 갔다. 그래도 생활비는 늘 부족했다. 생활비의 절반 정도는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유기농 달걀을 배달하는 양계장을 운영하신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 부모님께 손 내밀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특히 아르바이트가 끊겨 벌이마저 없을 때는 죄책감이 심해졌다.
죄책감은 분노가 되기도 한다. 왜 대학 등록금은 400만원이나 하는 거야? 학자금 대출로 진 빚 1천만원은 언제 다 갚지? 왜 조금밖에 안 샀는데 장 보는 비용이 3만5천원이나 나온 거지? 무슨 물가가 이렇게 비싸? 내가 아무리 아등바등 장학금 받아서 내야 할 등록금 액수를 줄이고, 밤낮으로 아르바이트하며 생활비를 벌어도 내 삶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인데, 왜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지? 내 안을 향했던 분노가, 밖으로 터져나와 사회를 향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기본소득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돈을 벌어야 사람 구실 하는 걸로 여겨지고, 돈의 가치로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당함을 어느 정도 덜어주는 제도가 기본소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식물인간, 장애인, 심지어 가정에서 드러나지 않는 가사노동과 감정노동을 하는 엄마라는 존재의 가치도 기본소득은 인정해주니까.
3주 전에 시민사회단체에 취직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차별에 민감한 사람이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남녀 차별적인 표현, 외모 평가 이런 것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 작은 파열음이라도 내고 싶어 서울 강남역 사건에 목소리 내고 ‘밤길을 되찾자’ 같은 여성주의 캠페인도 벌였다. 앞으로도 쭉 여성운동을 하면서 살고 싶다. 시민사회단체 취직은 얼떨결에 했지만, 내 꿈과 현실의 접점이다.
기본소득을 받으면 아마 학자금 대출 갚는 데 다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빚이 없다면, 하고 싶은 게 정말 많다. 밴드에서 드럼을 쳤는데, 월 15만원 남짓 되는 레슨비가 부담돼서 꾸준히 배우지 못했다. 드럼 레슨도 받고 싶고, 공연 보는 걸 좋아하는데 태어나서 뮤지컬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비싸서! 뮤지컬, 콘서트, 연극….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font>

“요즘 청년들은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도 하기 전에, 빨리 학자금 대출 갚고 돈 많이 벌어 제 몫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부터 받아요. 청년들이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가 우리 사회의 앞날을 말해주잖아요. 모두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대기업으로 몰려가면 정작 사회의 중요한 부분에는 청년들이 점점 없어지게 될 텐데. 30~40년만 살고 이 나라를 폭파해버릴 게 아니라면, 청년들이 무언가 선택할 수 있게 해줄 의무가 국가에 있다고 생각해요.” 김민서 씨는 청년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청년들이 불쌍하니까, 어려우니까 도와주자는 시혜가 아니라 청년 기본소득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기본소득이 희망이나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이 되는 세상은 가능할까?

민솔씨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되면 좋겠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안 될 것 같다”며 웃었다.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기득권을 해체할 수 있을까? 해체할 수 있다 해도 엄청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해리씨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생각보다 빨리 올지 모르겠어요. 요즘 정치권이 반응하는 걸 보면, 내년 대선에서 공약으로 들고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요. 여러 상황이 너무 바닥을 치고 있잖아요. 정치권도 기존 방식으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고 뭐라도 해야 할 텐데, 그 ‘뭐라도’가 기본소득이 되지 않을까요?”

“(기본소득처럼) 세계를 재창조하는 정치적 기획으로 유토피아적 희망을 함양하는 것은 그저 다른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넘어, 스스로 지금과 다르게 되기를 의지하고자 하는 분투이다.”(케이시 윅스, )

<font size="4"><font color="#008ABD">지금과 다른 삶을 위한 분투</font></font>

의 기본소득 스토리펀딩 프로젝트가 해리씨와 민솔씨의 ‘희망’과 ‘분투’에 작은 응원이라도 되길 기대한다. 다음호에는 기본소득이라는 유토피아적 희망을 다룬 신간 의 내용을 다루고, 기본소득을 깊이 곱씹어보는 인터뷰가 이어진다.

<font color="#008ABD">글</font>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font color="#008ABD">영상</font> 조소영 한겨레TV PD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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