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칭 예술가가 한 대학 입구에 ‘일베’ 조형물을 만들어버렸다. 눈살이 찌푸려진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다음날 곧 부숴버렸다. 내 주위 사람들의 대다수는 “그것 참 잘했다. 속이 시원하다”고 말한다. 일부는 아무리 그래도 절차에 맞춰 반대했어야지 자력구제 금기를 어긴 건 부적절하다고 한다. 하지만 귀가 얇은 나는 스스로 책임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그런 조형물을 만들 수도 있고, 또 그걸 부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예술의 무제한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만일 그 예술작품이 매우 적극적으로 여성 학대 혹은 차별이나 특정 지역 비하를 표현했다면 결론은 단순했을 거다. 그런데 이 조형물은 기껏해야 ‘일베’라는 글자의 초성을 표현하는 손 모양에 불과할 따름이다. 감상(?)하는 사람 입장에선 그걸 하필 대학교 입구에 설치한 게 어떤 의도인지, 일베가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이 세상이 결국 다 일베라는 건지 그러니까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건지 도대체 알 수 없다. 그걸 해석하고 문제가 무엇인지를 우리 스스로 의식하도록 하는 게 사실은 ‘예술’의 역설적 역할일 수 있다.
이른바 하켄크로이츠나 욱일기의 예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소수자나 민족에 대한 혐오, 광기 어린 제국주의를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으나 어떤 상징이라는 이유로 대중문화적 표현에서 분명하게 금지되어 있지 않은가?
종종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컴퓨터 게임을 즐긴다.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독일군의 입장이 되어 세계를 정복할 수도 있다. 굳이 나치 체험을 해보는 사람의 심보까지 제한할 순 없겠으나, 가상적 세계 정복 의지를 역사적 진실로부터 구원하려는 최소한의 시도는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나치 깃발은 하켄크로이츠가 될 수 없다. 적어도 무슨 독수리이거나 철십자이다. 눈 가리고 아웅이랄 수 있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윤리적 선택이다.
예를 들어 같은 영화 시리즈에 나치의 상징이 주야장천 나온다고 해서 우리가 조지 루카스나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나치는 바보 같은 선택을 반복한 끝에 죽거나 다치거나 우스꽝스러운 최후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예술을 통해 묻는 것은 이 사회에 현존하는 악행들에 얼마나 어떤 수단을 통해 맞설 것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 맥락에서 ‘일베의 손’은 그냥 존재할 수도 있고 박살이 날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어떤 물신화의 미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다. 때만 되면 반복되는 욱일기 논란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욱일’이란 표현을 반대하는 건 강대국의 제국주의가 불러온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지 ‘욱일’이라는 특정한 표현 자체를 모든 매체에서 없애려는 게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제국주의 반대를, 원형을 둘러싼 직선들의 특정 형태에 대한 ‘불매’로 대체하고 있다. 이건 소비주의적 생활양식으로 가득 찬 현대사회의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예술이 우리를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까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 우리가 생각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글·컴퓨터그래픽 김민하 편집장※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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