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학에 ‘꿀알바 대탐험’이라는 이름의 공고가 나붙었다. 뉴질랜드의 양목장에서 대자연을 벗 삼아 높은 보수의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비행기삯을 비롯해 모든 비용은 주최 쪽에서 대겠다고 했다. 지원자가 모여들었고, 선발을 위한 면접 절차가 시작됐다.
면접은 다소 특별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 명의 지원자가 양 역할을 하고, 다른 지원자가 양털 깎는 시늉을 했다. 양 성대모사를 하라고 하기도 했다. 쌀 포대를 지고 달리며 뉴질랜드에 꼭 가고 싶다고 외치거나, 강아지를 풀어서 어떤 지원자에게 가는지를 봤다. 급기야는 지원자들 간의 랩 배틀이 벌어졌다. 지원자들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이 순간만 버티면 뉴질랜드에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들로 하여금 그 수난을 견디게 했다.
그런데 면접이 끝나고 갑자기 누군가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짜잔, 몰래카메라였습니다.” 심지어 그는 이경규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글쎄, 아마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을 다 퍼부어주고 싶은 심정 아니었을까?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이 찍혔고, 심지어 새로 개국하는 어떤 방송국에서 방송될 것이라는 통보까지 이어졌다.
결국 문제가 됐다. 면접에 참여했던 15명은 방송국 쪽에 문제를 제기했고, 방송국은 요즘 유행하는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한 번 시전했다. 다시 또 항의. 결국 촬영분 전량 폐기, 해당 PD와 작가의 해임, 피해자들에 대한 응분의 보상으로 막을 내렸다.
이 짧은 생각을 비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사실 더 보편적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여러 부분에서 ‘그래도 된다’라는 판단이 자연스럽게 내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먼저, 취업이나 여러 가지 선발 과정에서 지원자를 모욕해도 좋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알려진 합의점이다. 가령 아모레퍼시픽은 한 면접에서 지원자에게 직무와 상관없는 국정교과서 찬반 여부를 강압적 태도로 물어봐 빈축을 샀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압박 면접을 비롯해, 기상천외한 면접법들이 지원자를 노린다. 선발 과정이 강화되는 근원적인 이유는 준비된 자리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이 지원하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히 경쟁의 심화를 의미한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면 “(국정화 찬반 질문은) 지원자의 사회에 대한 관심과 답변 스킬, 결론 도출의 논리성 등을 평가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하면 되고, ‘면접 몰카’는 “면접시 대처 능력을 보고자” 계획했다고 주장하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면을 보자. 방송이나 언론이 소재주의와 선정주의, 그리고 자신들과 시청자·독자의 편견을 만족시킬 만한 ‘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했던 왜곡을 생각해보자. 여기에는 방송 프로그램의 외주 제작이 거의 전면화되면서 낮은 인건비와 열악한 제작 여건, 촉박한 시간 같은 것이 방송 제작의 기본 조건처럼 되어버렸다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그리고 방송과 언론에 종사하는 몇몇 이들은, 모든 국민을 유명해지고 싶어서 안달이 난 연예인이나 선거철 정치인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다른 배경도 있다. 즉, 제작·노동 조건의 악화가 가져온 저널리즘의 증발과 카메라를 권력으로 여기는 이들의 존재가 이런 것을 ‘그래도 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보자. 최근의 논쟁 중 하나는 여성에게 (성폭력으로서의) “몰카에 주의하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찍힌 네가 잘못”이라는 말이 나온다. 몰카를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천재지변 같은 것쯤으로 여기는 사회이니 카메라가 권력이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보편적 허용’이 무서워서 나는 눈을 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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