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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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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보도연맹 재학살!

등록 2001-11-29 00:00 수정 2020-05-03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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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3" color="#a00000">대전 동구청이 방관한 3천여 유골 위의 교회건축 공사, 유족들의 통곡과 분노</font>

“아이고∼ 아이고∼. 이게 뭔 일이여. 이게….”

송영길(산내학살 대전지역유족모임 회장)씨가 흙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연신 흙바닥을 어루만지며 쉴새없이 ‘아이고∼’를 반복했다. 송씨의 주변에는 하얗게 햇빛에 바랜 ‘사람의 뼈’가 유리파편처럼 부서져 널려 있었다. 혹 꿈에도 그리던 ‘아버지’의 유골이 아닐까를 생각했을 송씨의 얼굴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포크레인 삽날에 잘리는 유골들

눈에 보이는 대로 수습한 뒤였지만, 이미 잘게 부서져 뒹구는 유골은 달리 처치할 방도가 없어보였다. 포크레인 삽날에 잘린 흙더미 속엔 여지없이 동강난 유골의 잔해가 셀 수 없이 박혀 있었다. 무너져내린 흙덩이 주변엔 치아도 널려 있었다.

“이것 좀 보소! 이것 좀 보소!” 다급한 목소리 뒤에 여기저기 흩어져 유골을 줍던 유가족들이 모여들었다. 배수로를 파면서 모아놓은 흙더미 속에서 두개골로 보이는 뼛조각들이 한 움큼 모습을 드러냈다. 흙더미를 계속 헤쳐나가자 잇몸뼈, 턱뼈, 으스러진 머리뼈들이 그득했다. 뼛조각을 보는 유족들의 두눈은 하나같이 빨갛게 충혈됐다.

또다른 흙더미를 파헤쳤다. 이번엔 다리뼈가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 부러지고 쪼개진 채로. 누가 봐도 공사 도중 나온 유골을 인부들이 주워모아 대충 묻어놓은 것으로 보여졌다. 삭이고 참아왔던 유가족들의 분노가 일시에 터져나온 것은 이때였다. 그 분노는 곧바로 부근에서 교회 건축공사를 벌이는 신도들과 상황을 지켜보던 대전 동구청 공무원에게 향했다.

“네놈들이 사람이여. 조상있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해! 어떻게….”

“교회 지을 때 나온 뼈는 어디다 감췄냐. 내놔라. 우리 아버지 유골 내놔!….”

“당장 공사 그만두지 못할까, 이놈들아!”

고함을 지르는 송씨의 일그러진 얼굴 위로 물기가 번져 있었다. 분노와 슬픔이 교차하는 걷잡을 수 없는 심경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11월20일 대전시 동구 낭월동 골령골 13번지. 한국전쟁 발발직후인 7월 초, 군·경에 의해 당시 4·3사건 관련자 등 대전형무소 수감자 및 대전·충남지역 보도연맹 관련자 3천여명이 집단학살돼 암매장된 한맺힌 땅. 반백년 긴 기다림 끝에 아버지와 아들, 형제들은 이렇게 건축공사장에서 만났다. 그들의 처참한 첫 만남은, 따라서 너무도 쉽게 울분으로 뒤바뀌었다.

“반백년 맺힌 한으로 이 가슴이 썩어 문드러졌소. 죽기 전에 아버지 유골 찾아 향 한 자루 떳떳하게 피워드리려고 했는데…. 이 쪼개진 내 아버지를 보오. 내 아버지를….” 제주에서 올라온 양정무(제주 4·3사건 대전유족회원)씨가 부서진 유골을 부여잡고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순간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몇몇 유족들은 넋을 놓고 주저앉아 눈물을 훔치며 무심한 하늘을 오래도록 올려다보았다.

유골 매장지인 줄 몰랐다?

하지만 같은 시간, 유골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땅 위엔 교회건물(63평 단층)이 쉴새없이 지어지고, 주위엔 손을 댈 수조차 없을 만큼 부서진 유골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1950년 전쟁통에 아무런 절차도 없이 무차별로 끌려가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한 사람들. 그리고 평생을 ‘입조심’, ‘몸조심’하며 강요된 침묵 속에 쥐죽은 듯 살아온 유족들.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이제 죽기 전에 말 못하고 살아온 반백년 한이 풀릴까 기다리던 유족들에게 일어난 난데없는 사단은 무엇일까.

집단 유골 매장지에 건축허가를 내준 대전시 동구청 도시개발과의 담당 공무원은 “이곳이 정확히 유골이 매장돼 있는 지역인지 알지 못한데다 사유지여서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동구청은 정말 이곳이 유골 매장지인지 몰랐고, 사유지여서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일까.

대전참여자치연대는 2000년 3월 대전시와 대전 중부경찰서, 대전 동구청 등에 ‘산내학살 진상조사를 위한 골령골 일대의 현장보존’을 요청했다. 이 요청문에는 ‘낭월동 13번지 일대’로 지번도 명확히 표기돼 있다. 이에 대해 동구청을 비롯한 각 기관은 ‘유골훼손 사례를 방지토록 해당지역 주민들에게 홍보하고… 개장시 기록보존 철저 등 조사활동에 협조 하겠다’(2000년 3월3일)고 답했다.

뿐만이 아니다. 현장에는 ‘여기는 산내집단 학살지입니다’라는 큼지막한 표지판(가로 2m, 세로 1.5m, 높이 3.5m)과 세세한 사건 개요를 새겨놓은 안내문도 세워져 있다. 게다가 해마다 이 자리에서 위령제를 지내왔고, 동구청 관계자들이 행사를 참관해왔다. 따라서 이곳이 집단 유골 매장지인지 몰랐다는 구청쪽 설명은 거짓이거나 현장 한번 나가보지 않고 건축허가를 내줬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또한 동구청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정한 ‘개장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일정한 기간과 지역을 정해 연고자들과 협의를 거쳐 이장하도록 한 규정과 무연자 처리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동구청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도시개발과에서 단 한 차례 업무협의만 했어도 관련법에 따라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동구청의 어이없는 행정처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동구청은 건축주가 공사도중 건축허가 외 구역을 건드려 수많은 유골이 훼손될 때까지 현장 감리를 하지 않았다. 게다가 유골훼손과 방치실태를 유족들이 신고했는데도, 일주일 이상 건축공사를 계속하도록 손을 놓고 있었다. 법률에는 건축공사 때 유골 등이 발견되면 건축공사를 중단하고 관련절차에 따라 유골 수습에 나서도록 규정하고 있다.

건축주도 도덕적 비난 피하기 어려워

땅주인인 건축주(윤아무개씨)와 교회 신도들도 이 자리가 유골 매장지임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건축주는 공사 도중 유골이 드러났는데도 이를 신고하지 않고 방치, 훼손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규희(산내학살대책위원)씨는 “지난해 땅주인과 몇 차례 만나 해당지역이 유골 매장지인 것을 설명했고 서로 땅값 흥정까지 했다”며 “올 상반기 교회 신도들에게도 유골 매장지임을 여러 차례 설명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동구청과 건축주는 각각 사유재산임을 내세워 유족들의 건축공사 중단 요청을 묵살해오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구성된 정부위원회와 제주도지사의 유골 수습과 원형보존 요청을 받고서야 공사를 중단시키는 ‘강단’을 보였다. 그리고 언제 다시 ‘사유재산’임을 내세워 공사를 재개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다.

1950년 7월, 길고 깊게 파놓은 구덩이, 손목이 묶인 채 총구 앞에 늘어선 겁에 질린 사람들, 구덩이 안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주검더미, 그 속을 헤집으며 또다시 뒷머리에 총알을 박아놓고 돌아서는 군인과 경찰들…. 골령골 하늘마저 하얗게 질리게 했을 그날과 반백년 뒤의 지금이 정말 차이가 있기는 한 것일까.

길게 파 일궈놓은 웅덩이, 겁에 질린 듯 하얗게 드러난 유골들, 삽날에 찍혀 쪼개지고 인부들의 발길에 밟혀 부서진 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사람들의 흔적, 아무렇지도 않게 건축허가를 내주고, 또다시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깊고 무거운 어둠의 공간에 갇힌…, 그래서 태연히 잠자고 있는 민간인학살 특별법….

정녕 주검에 ‘색깔’이 있기 때문일까? 최소한 지금 이 시간 동구청 관련 공무원들과 건축주는 유족들에게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기는 한 걸까. 그래서 늦었지만 참회의 심정으로 건물철거, 현장보존, 유골 수습 등을 요구하는 유족들의 바람을 받아들여 위로할 용의가 있는 걸까.

하지만 아직까지 어디에서도 성의있는 조처는 나오지 않고 있다. 아니, 이미 행정기관과 건축주가 보여준 수천여 원혼들에 대한 무관심과 푸대접은 유족에게 또 한번 아물지 않는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20일 오후, 한 제주유족은 쓰레기처럼 나뒹구는 유골을 뒤로 한 채 되돌아가며 한마디 말을 남겼다. “또 싸우러 올 겁니다. 하지만 내가 싸우다 여기서 죽더라도 대전 땅에는 절대 묻히지 않을 겁니다.”

대전=글·사진 심규상/ 충남지역신문협회 기자 sim041@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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