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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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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닮은 사람이 산다네

등록 2001-10-18 00:00 수정 2020-05-03 04:22

전남 보성의 덕만이네가 함께 사는 풍경… 목수와 염장이로 자연의 제멋 즐긴다

‘제멋대로 사는 맛.’

전남 보성군 회천면 봉강리에 있는 ‘덕만이네’ 식구들이 제대로 보고 있는 맛이다. 덕만이네에는 자연을 닮은 목수와 염장이들이 모여 산다. 대문 앞에 버젓이 서 있는 ‘맹글고 물 먹이는 덕만이네’란 문패가 그것을 웅변해준다. 혈연이나 제도로 살림을 차린 가족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맞아 들어간 성정’으로 이뤄진 일가다.

“끼리끼리 사는 거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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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처음 이 집에 터를 잡은 사람은 맏형인 목수 김광철(37)씨와 염장이 김희덕(34)씨. 어렸을 적 이름이 ‘덕만이’인 희덕씨는 부산 해운정사에서 목탑 만드는 일을 하던 선배를 만나러 갔다가 목수 광철씨를 우연히 보고 동생이 돼버렸다. 묵묵하지만 자연을 닮은 그 성정이 좋았고, 그 인연은 한집살이로 이어졌다. 한옥 고가인 덕만이네는 영광 정씨 종갓집이다. 주인이 도시로 나가 비우게 된 집과 논밭을 광철씨가 맡게 된 것이다.

핏줄도 돈벌이도 아니면서 한 데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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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총각 목수와 염장이가 살림을 차린 뒤 또 한 염장이가 찾아들었다. 아예 솔가하고 덕만이네로 왔다. 염색공부를 하면서 ‘무색’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 김연대(32)씨. 염색가인 정옥기씨의 소개로 덕만이네 식구가 됐다. 그 무렵 찾아온 또 한 사람. 염색하는 살구님. 월간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소개된 덕만이네 이야기를 보고 먼 곳에서 찾아들었다. 우연히 만나고, 사람 소개로 만나고, 제 발로 걸어들어온 인연들이 모여 덕만이네가 만들어졌다.

덕만이네가 사는 방법은 참 단순하고 태평하다. 삶의 스승은 자연이다. 논밭에 농사짓고 주변 산과 들에서 재료를 구해 염색하고, 집이 필요한 곳에 집을 짓는다. 아직은 밭농사로 식탁을 해결하는 정도지만 자급자족을 꿈꾸고 있다. 농사는 가족 중 비교적 힘이 실한 희덕씨와 연대씨가 맡았다.

두 사람 모두에게 농사는 제대로 해보고 싶었던 일이다. 하지만 덕만이네 논밭을 보는 동네사람들의 마음은 시끄럽다. 저것이 농사인가 싶다. 벼논인지 풀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하게 자란 잡초가 엉클어져 쌀을 제대로 수확할 것 같지가 않다. 그래도 덕만이네는 태평이다.

희덕씨는 태평농법을 배우겠다며 무작정 태평농부 이영문씨를 찾아간 전력이 있다. 한 삼년 배우게 해달라고 청하는 그에게 이영문씨는 농사는 ‘3일이면 다 배운다’는 의미있는 말을 건넸다. 자연의 순리에 맡기라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 이치대로 농사일을 한다. 땅도 갈지 않고 비료나 약을 뿌리지도 않는다. ‘땅이 농사짓는 것’을 그저 바라본다. 가끔 너무 성한 잡초들만 손으로 끊어주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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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만이네가 사는 모습도 농사짓는 것이랑 매한가지다. “산을 멀리서 보면 그냥 하나의 산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각양각색의 나무들이 그 안에서 제멋대로 자라고 있잖아요. 그 나무들을 인정하지 않으면 산이 존재할 수 없는 거지요.” 희덕씨 말처럼 덕만이네는 한 식구를 이루고 살지만 각자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간다.

공동체의 원칙이라는 것이 굳이 없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제멋대로 살아도 특별히 서로에게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각박하고 부자연스러운 세상살이에서 뛰쳐나오려고 몸부림쳤던 삶의 역사가 있어서인지 모두들 ‘이 멋대로 자연스러운 삶’이 너무도 만족스럽다.

장성 백양사 아랫마을이 고향인 희덕씨는 어렸을 때 백양사 자락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그저 내 수고로 음식 팔아 돈 번다’고 자신만만해하는 것이 불만이었다. 많은 사람을 불러모으는 산이며, 찾아와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자연과 사람, 그리고 세상 속의 보이지 않는 유대를 봤던 것이다.

대학을 다니다가 재미없어 그만두고 직장생활을 했지만 영 성정에 맞지 않아 자꾸 다른 곳을 기웃거렸다. 태평농법을 배우고, 우리 밀로 빵 만드는 일도 하고, 산 속에 들어가 빈집에서 혼자 농사짓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런 자식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아버지의 손에 끌려 다시 산 밖으로 나왔지만 다시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천연 염색가 정옥기 선생을 찾아 염색을 배우고 드디어 마음 맞는 사람들과 땅이 있는 곳에서 일가를 이룬 것이다.

뜻 맞고 맘 통해 자연을 스승으로 삼아

일이 있으면 몇달이고 집을 비우지만 덕만이네 기둥 역할을 하는 맏형 광철씨는 말없는 사람이다. 해남에서 자라고 10여년 동안 짜구질이며 나무 보는 법, 날 가는 법, 설계하는 일 등을 익히고 이제 도편수(대목) 일을 해보려고 한다. 자연이 내어주는 것 중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다 먹고 여간해서 버리는 것이 없는, 자연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다.

덕만이네 식구 중 그래도 도시물을 가장 많이 먹은 사람은 부산에서 온 연대씨. 이제 ‘무색’이 됐지만 참 복잡한 색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빨리 자립해야겠다는 생각에 전자공고를 졸업하고 현대전자에 입사했다. ‘운이 좋아’ 반도체연구소 연구보조원으로 근무했는데 ‘그놈의 학벌에 치여’ 갑자기 생이 답답해졌다.

회사 동료인 강희순(28)씨와 결혼 뒤 사표를 던지고 민속주점을 했다. 하지만 건물주의 부도로 그마저 손털고 산자락 생활을 하고 귀농을 시도했다. 그런데 ‘터’가 있어 가보면 ‘한 사람’이 너무 세서 안착하기 힘들었다. 대전에서 우연히 천연 염색가 정옥기 선생과 인연이 닿아 염색을 배우고 ‘터’도 ‘사람’도 자연스러운 덕만이네의 새 식구가 된 것이다.

이 집의 살구님은 그냥 살구님이다. 올 봄 책을 보고 덕만이네를 찾아왔는데 함께 살고 싶다고 해서 식구가 됐고 내력을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다들 더이상 묻지 않았다. 덕만이네는 그렇게 새로운 인연들을 맞이하고 수십명의 사람들이 오고 갔다.

“농사지어서 밥 먹고, 물들인 천으로 옷 해입으면서 살면 되죠 뭐.” 덕만이네가 사는 법은 희덕씨의 말처럼 단순하지만 ‘그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 구석이 있다. 잡초 무성한 밭을 보면서 처음엔 혀를 찼던 마을사람들이 요즘에는 벌레 하나 먹지 않은 덕만이네 고추를 보면서 신기해한다.

“하느님이 덕만이네만 살피는갑서.” 우스갯소리도 던진다. 덕만이네 농사법을 은근히 인정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상한 놈들’이라는 오해가 풀리고 ‘저렇게 살아도 되겠구나’하는 자연스러운 동감이 늘어갔으면 하는 것이 덕만이네의 속마음이다. 논에서 풀을 끊고 있는 희덕씨에게 동네 할머니가 “우리집 냉장고 냉장실이 자꾸 얼어” 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보면 그런 날이 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 가족공동체의 밀알이 되련다”

봉강리 마을사람들과 한 식구가 되는 것과 함께 덕만이네가 바라는 것은 이 마을로 찾아드는 인연을 소중하게 가꾸는 것이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덕만이네 이야기를 들은 박프란체스카 수녀가 놀러왔다. 그리고 뜻있는 일을 의논했다. 덕만이네는 특수장애인 중심의 ‘가족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수녀님을 적극 돕기로 했다.

9월22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인사동 학고재갤러리 앞 공터에서 열린 바자회에 천연 염색한 옷감과 밭에서 키운 깨 등 농작물을 내놓았다. 취재에 응한 것도 박프란체스카 수녀가 추진하는 일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고 하니 그 마음이 참 살뜰하다. 그래서 인사를 빼놓을 수가 없다. “덕만이네랑 인연 만들어준 박 프란체스카 수녀님 감사합니다.”

보성=글 이서영/ 엔터닷컴 기자
사진 박성배/ 엔터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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