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바보’ 전국적인 언론개혁운동의 사령탑으로… 풀뿌리 언론의 대안 <옥천신문>도 한몫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사람들을 찾아내라”,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을 알려라”, “절독을 권유해라”, “절독할 때까지 포기하지 마라”, “조선일보와의 전투(활동)상황을 세밀히 공개해라”….
‘조선일보 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이하 조선바보)에 참여한 ‘독립군’(회원)에게 내려진 ‘작전명령’이다. ‘조선바보운동’을 벌이는 회원들을 독립군으로 부르는 것은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열번의 성명서보다 한부의 절독 권유를
지난해 8월15일 충남 옥천 주민 33명이 모여 ‘조선바보’를 결성하고 ‘조선일보로부터의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이후 옥천 일대에서는 연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리고 옥천에서 1천여부에 이르던 조선일보는 1년 만에 절반 가까이 추방됐다.
성공적인 전투상황은 조선바보의 주무기인 인터넷사이트 물총닷컴(www.mulchong.com)을 타고 전국에 생중계됐고, 서울과 경기도를 비롯해 광주·홍성·남해·대구·대전 등 15개 지역과 1개 단체(전교조 충북지부)가 사이트를 분양(?)받아 본격적인 구독중지운동에 돌입한 상태다.
사이트를 분양한 지 두달도 채 안 됐지만 접수된 구독중지 건수는 이미 200여건을 넘어섰다. 조선일보의 왜곡된 파업보도에 강력히 항의했던 대한항공조종사노조도 ‘물총’을 통해 2∼3일 만에 30부의 구독중지 요청을 하기도 했다. 이는 독립군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놀랄 만한 성과다.
도대체 조선바보가, 또 인구 6만명의 작은 변방인 옥천이 전국 조선일보 추방운동의 사령탑이요 성지로 불리게 된 이유가 뭘까. 더구나 조선일보 반대운동은 조선바보 결성 이전부터 꾸준히 있어온 일 아니던가.
옥천의 독립군들은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설명을 통해 절독을 권유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선언적 운동방식과 구분된다. 열번 성명서 내는 일보다는 한부의 조선일보를 끊는 실천을 중시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주민 사랑, 지역 사랑의 마음은 독립군들이 가져야 할 기본 덕목이다. 이들이 조선일보를 불량식품이나 상한 음식에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 이웃이 잘못된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냐는 거다.
당연히 독립군들은 조선일보를 색출해내는 일이 몸에 배어 있다. 식당에 가서는 식사를 주문하기 전에 조선일보를 보는 식당인지 아닌지를 확인한다. 주민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무슨 신문을 보는지, 조선일보가 왜 사회적 해악인지, 조선일보를 끊었는지 등을 묻고 설명하고 또 묻는다. 이런 활동 탓에 주민 대다수가 조선일보 구독중지와 구독거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즉 옥천에서 조선바보운동은 지역주민의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주민자치운동이고 생활현장운동이다.
지극히 옥천적인 독립군들의 움직임은 오히려 이 운동을 ‘서울화’, ‘전국화’한 기폭제가 됐다. ‘안티조선’ 대신 ‘조선일보 바로보기’나 ‘독립군’을 쓰는 것도 옥천 주민들과의 만남 속에서 만들어낸 눈높이 용어이기 때문이다. 조선바보의 독립군인 오한흥씨는 “조선일보 반대운동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운동이 아닌 평범한 옥천 주민들이 앞장서는 일”이라며 “우리는 옥천을 중심에 놓고 활동한다”고 말했다.
지역의원의 언론관을 바꾸다
옥천의 독립운동은 지역사회 지배이데올로기를 해체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조선바보 전정표 대표는 “조선일보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전근대적 의식구조와 불의가 판치는 세상을 방치했던 우리의 부끄러운 과오를 자각하자는 운동이고 옥천의 의식과 정신을 밝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실제 지역민들의 왜곡된 의식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지난 8월15일 옥천장터에서 만난 김아무개(44)씨는 “조선일보를 보느냐”는 질문에 “몇년을 보다가 끊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를 “조선일보가 행한 반역사적 행위를 모르고 봤지만 어떻게 알면서도 볼 수 있느냐”는 말로 대신했다. 또 “(조선일보 추방운동은) 많은 옥천 주민들이 나서서 하는 일인데 당연히 협조해야 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주민들은 조선바보운동에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고 조선바보는 이를 통해 지역민의 정주의식과 참여의식을 높이고 있다.
옥천에서 조선일보 추방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풀뿌리신문으로 불리는 옥천신문의 존재다. 중앙언론 중심의 우리나라 언론체제는 곧잘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에 비유된다. 중앙언론을 통해 교실 붕괴라는 끔찍한 뉴스를 접하면서도 정작 내 자식이 다니는 학교상황을 아는 학부모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옥천신문은 ‘등잔 밑을 밝히는 신문’으로 통한다. 창간 이후 12년째 지역권력을 감시하고 지역사회 기득권층의 부당한 영향력에 대항해 주민의 신뢰를 받고 있다. 때문에 최고부수를 자랑하는 조선일보에 비해 독자 수도 세배 이상 많다.
조선일보 추방운동 과정에 옥천신문은 6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조선일보 친일기사 사례가 담긴 독립군 의견광고를 실었다. 조선일보 15년 독자인 중국음식점 ‘서림반점’ 주인 유동근(44)씨도 옥천신문에 실린 의견광고를 보고 구독을 중지한 경우다.
옥천신문은 이 지역의원인 한나라당 심규철 의원의 언론관을 바꾸는(?)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대한매일>과 <한겨레>를 정권의 처첩으로 비유해 물의를 빚었던 심 의원은 지난 7월 말 옥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민운동 차원의 언론개혁운동은 적극 지지한다. 옥천지역의 운동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의 친일행위에 대해서도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잘못된 부분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를 전제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른 한편 옥천의 사례는 지역사회 개혁운동이 기존 언론의 개혁과 함께 ‘주민언론-풀뿌리언론’의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장호순 교수(순천향대 신문방송학)는 “전국적인 언론개혁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는 언론과 지배집단과의 유착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며 “옥천신문과 같은 풀뿌리 지역신문은 작지만 한국의 왜곡된 언론구조와 행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고질적 모순을 바로잡을 수 있는 개혁의 실마리를 쥐고 있다”고 강조한다.
옥천전투는 여전히 진행중
한편 외부의 찬사와 달리 옥천 조선바보 내부에서는 자신들의 활동이 실제와 달리 과장됐다며 거품을 걷어내는 일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옥천은 이미 싸움이 끝난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옥천전투는 ‘진행중’이며 ‘이제 시작’이라는 자체 평가와 결의가 그것이다.
지난 8월14일. 전국 각지에서 수백여명의 독립군들이 1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옥천으로 모여들었다. 이날 옥천 조선바보 활동을 담은 6mm 디지털 장편다큐멘터리영화 <옥천전투>(감독 황철민·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가 첫 상영되기도 했다. 다음날인 15일. 참가자들은 지난해 첫 출범식 때처럼 옥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지용 흉상 앞에 서서 다시 한번 ‘조선일보로부터의 옥천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경기지역에서 참여한 한 독립군은 1주년의 감회를 이렇게 술회했다. “이렇게 조그만 읍에서 큰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그저 고맙고 감격스러울 뿐입니다.” 이날 참가자들은 조선바보운동이 단순히 특정신문 반대운동이 아닌 지역의 희망을 만드는 지역운동으로 커나가고 있다는 규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옥천=심규상/ 충남지역신문협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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