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size="3" color="#a00000"> 5월항쟁의 중심에 섰던 ‘민파’ 회원들… 관현장학재단 설립 등 시대정신 구현</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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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부채를 갚는 시간이다. 신이 있다면 우리 인생은 신에게 약속한 부채를 갚는 시간이다. 또 인간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서로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이 인생이다.’
1980년 5월에 태어난 아이들이 벌써 스물둘의 청년이 된 지금, 5·18 당시 스물둘의 청년이었던 사람들이 백발 희끗한 중년이 되어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80년 당시 전남대총학생회동지회 ‘민파’(민중의 파도) 회원들.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는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들’이다. 지난 5월12일, 민파가 20여년 이어온 숨은 힘을 들여다보고자 청했던 자리에서까지, 그들의 ‘부채담론’은 계속되고 있었다.
전남대총학생회동지회로 20여년 이어와
전남대총학생회동지회(회장 유용영)는 80년 당시 광주·전남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전남대 총학생회 집행부와 각 단과대학 회장단의 모임이다. 박정희 암살 이후 광주·전남의 학생운동을 재건하고 민선 총학생회를 탄생시켰으며, 전국 학생운동세력의 조직화를 시도하고 5월 횃불시위를 주도하거나 5·18항쟁 지도부로 참여했던 주역들이다. 80년 이후 이들 대부분은 지명수배되고 투옥되어 옥고를 치러야 했다.
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 회장이었던 고 박관현씨를 비롯하여 총학생회 총무부장 양강섭(48·관현장학재단 상임이사), 사회운동단체의 정용화(49·5·18기념재단 사무처장), 비밀결사조직의 기획실장 송선태(47·5·18후원회 회장), 법대 학생회장 이성길(45·전 5·18기념재단 사무처장), 원순석(50), 김영휴(46·동광주병원 임상병리과장), 박선정(46·광주시의원), 차명섭, 천국웅, 이공근, 장성훈, 정경자씨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싸움은 못해도 모여 있기라도 하자, 모여 있으면 조금이라도 물결이 일 것이고, 이것이 또 커져 파도를 이룰 것이다. 그렇게 84년 추운 겨울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관현장학재단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양강섭(48)씨에게 ‘추운 겨울날’은 물리적 기온이나 계절을 일컫는 게 아니다. 공식적인 이름을 ‘전남대총학생회동지회’라고 붙이고도 ‘민파’라는 별칭을 써야 했던 이유도 바로 이 ‘추운 겨울날’ 때문이었다. 동지를 동지라 부를 수 없던 시대, 이들은 ‘전남대총학생회동지회’라는 이름은 가슴에 접어둔 채 ‘민파’라는 그들만의 ‘암호’로 모여왔다. 함께 죽음을 넘나들었던 친구의 얼굴을 보는 것도 허락되지 않던 시대였다.
친구. 여기서 부채 담론은 다시 이어진다. 전남대총학생회동지회 한가운데는 박관현이라는 한 친구의 죽음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80년 광주의 봄을 이끌었던 박관현 회장이 1982년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교도소 단식투쟁중에 산화한 것이다. 박관현씨는 법관이 꿈이었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겠다는 신념으로 ‘대학생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던 학구파. 그러나 함께 어울리던 정용화씨가 78년 교육지표사건으로 투옥되고 양강섭씨도 학교를 떠나자 박관현씨는 두 친구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학생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다 80년 총학생회 회장이 되었고 계속된 수배생활 끝에 투옥되어 ‘감옥에서 나팔꽃씨 넣은 밥 먹으며 싸우고 싸우다가’ 죽어나온 것이다. 나이 서른에.
박관현씨에게 빚을 주고 떠났던 두 친구는 다시 박관현씨에게 빚을 지게 되고, 모든 회원들은 친구의 죽음 앞에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박관현열사정신계승발전’, 이것이 민파의 숙제가 된 것이다. 1987년 회원들은 ‘박관현열사기념사업회’(초대회장 양강섭)를 결성해, <광주의 넋 박관현>이라는 전기를 발간하고, 같은 해 11월 영광군 불갑면에 묻혀 있던 박관현을 망월동 5월 묘역으로 이장했다. 또 1989년에는 ‘박관현상(현 관현민주대상)’을 제정하여 임수경씨, 고 이철규씨, 임종석·송갑석씨 등에게 시상해오고 있다. 1995년에는 회원들이 5·18보상금 10%씩 출연하여 박관현장학재단(현 관현장학재단)을 설립해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겠다는 박씨의 정신을 잇고 있다.
광주의 일꾼으로 사회활동 적극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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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태 5·18기념재단 후원회장은 민파의 정신을 80년 5월 광주의 삶에서 찾았다. 5월 정신이 오늘날 모든 회원들의 삶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고, 그 연대나 의지가 오늘까지 강한 일체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송선태씨는 “이성길 전 재단 사무처장은 그 원칙을 지키다 고개가 비틀어진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80년 당시 장기 수배생활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머리를 벽치기했던 후유증과 혼신을 다해 5·18재단 일을 보다가 심한 스트레스로 지난해부터 고개가 자동적으로 돌아가버리는 병(파킨스병의 일종)을 앓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성길씨의 한쪽 손은 항상 고개를 받치고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에게 남은 5월의 무게인지도 모른다.
80년 당시 학생운동은 목숨을 걸지 않으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네 뱃가죽은 철판 깔았냐’며 면도칼을 동봉한 우편물을 받기도 하고 경찰들의 교문 밖 체포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었다. 송선태씨는 학교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2월부터 5월16일 횃불행진 끝나고 집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했다고 한다. 빨래는 여학생 화장실에서 하고 커튼을 뜯어서 잠을 청했다. 박관현·양강섭·이성길 등 모두 마찬가지였다.
술 한잔을 하고 싶어도 잰 걸음이었다. 전남대 정문쪽 만화방에서 라면이나 정어리찌개를 끓여주면 냄비째 들고 학교로 뛰었다. 거기서 잡히면 안 되니까 학교 아스팔트에 앉아 마시다가 그대로 누워 잠이 들었다. “이리 탱크가 들어올지 모르것소” 하는 누군가의 잦아드는 목소리. 탱크가 눈앞에 가물거려도 ‘피곤’이라는 장사는 눈꺼풀을 내리눌렀다.
인도 턱을 베개 삼아 아스팔트에 누웠던 이들은 결국 5월 이후 상무대 영창에서 다시 만난다. 정용화씨는 “5·18사태가 아닌 ‘오리발 사태’라고 부를 정도로 고문과 숨막히는 순간들이 많았다”며 “6월30일 온몸에 피멍이 들어 상무대 영창에 들어가니까 ‘저 새끼가 뭣을 불어부렀능가’ 하고 동기들이랑 선배들이 전부 창살로 달라붙었다”고 당시를 증언했다.
전남대총학생회동지회는 80년 이후에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각 분야에서 낯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일해왔다. 사회운동단체가 결성되면 민파 회원들이 각 요직을 맡으며 그 운동체의 방향을 이끌어왔다. 정용화씨는 5·18재단 사무처장, 양강섭씨는 관현장학재단 상임이사, 차명섭씨는 구속자회정상화를위한총회준비위원장, 송선태씨는 5·18재단 후원회장을 하는 식이었다. 민파가 사령부는 아니지만, “네가 포진을 해라, 내가 담당할란다” 하면서 전반적인 것을 파악해 배치하고 지도해왔다. “보이지는 않지만 굉장히 중요한 힘이었다”고 회원들은 믿고 있다. 80년 이후 광주·전남의 사회운동에 잔잔한 파도를 일으켜온 것이다.
부채의식을 덜 수 있는 날은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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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파는 자신들만을 고집하지 않고 학생운동을 지속적으로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후배들을 회원으로 영입하고 있다. 최근엔 전대협 의장이었던 송갑석씨까지 받아들여 모두 25명의 회원이 활동중이다. 이들은 다달이 18일 되는 날마다 정기모임을 열고, 지난해부터 5월18일 아침 7시에 전남대 정문 앞 5월항쟁사적지 제1호 표지석에 모여 전남대총학생회와 함께 기념식을 열고 있다.
마지막으로, 민파의 계획을 물었다. 그랬더니 저쪽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달려나왔다. “우리는 ‘앞에 짐이 있으면 치우고 가자’이지, 짐을 미리 앞에 놓고 ‘누가 해라’ 하지 않아요.” 80년 이후 20여년을 이어온 그들의 삶의 방식이 꼭 그랬다. 그리고 그 방식은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시간이 가고 또 세월이 바뀌어도, 그들에게 무거운 부채의식을 짊어지게 할 또다른 시대의 ‘친구’가 거듭 그들 앞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광주=글 정금자/ 엔터닷컴 기자
사진 형민우/ 엔터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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