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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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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신문에 정이 흐른다

등록 2001-02-22 00:00 수정 2020-05-03 04:21

대전 내동 롯데아파트 주민들의 신문을 통한 이웃사촌 만들기 17개월

“‘이달의 이웃’으로 매일 화단에 물 주시는 106동 할아버지 어때요?”

“그분보다는 수석 모으는 105동 할아버지가 낫지 않을까요?”

편집위원들의 회의진행이 일사천리다. 지난호에 대한 평가를 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다음호에 대한 기획과 취재, 원고 청탁, 광고 등 역할 분담까지 끝냈다. 회의에 나오기 전 미리 자기 코너에 대한 준비를 해온데다 여러 번 일을 해오는 동안 이력이 붙은 때문이다.

1600여 세대를 꿰뚫고 있는 아줌마들

“처음엔 다들 웃더라구요. ‘아줌마들이 뭘 한다구’ 하며 대놓고 면박을 주는 사람도 있었어요.” 이렇게 시작한 대전 내동 (매월 1700부, 4면 발행)이 훌쩍 창간 1주년을 넘겼다. 지난 99년 10월 창간된 뒤 17개월 동안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았다. 몇번하다 말겠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주민들의 태도가 하나둘 달라진 건 물론이다. 이제는 며칠만 늦어도 “신문 왜 안 오냐”며 찾으러 나서는 주민까지 생겨났다.

“주민들이 이것 좀 내달라고 부탁을 해오거나 새로운 정보를 알려줄 때면 기분이 참 좋아요. ‘독자’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편집위원 6명 중 편집위원장인 이문희(40)씨만이 유일한 남성이고 그 밖엔 아이 한둘 이상 있는 ‘아줌마’들이다. 이들은 또 대부분 이 아파트 전·현직 동대표들이다. 이문희씨를 비롯해 권미숙(40) 민아강(37)씨 등이 동대표를 지냈고, 이명희(44) 최원우(45)씨는 현재 동대표를 맡고 있다. 덕분에 이들은 이 아파트 1600여 세대의 사정을 꿰뚫고 있다.

이들이 처음 신문 창간을 결의한 곳도 동대표 회의에서였다. “시간내기 어렵다”, “능력도 없는데” 등의 회의와 “무슨 돈으로”, “과연 될까”라는 우려를 넘어설 수 있었던 것도 동대표 회의에서 만장일치 의결로 힘을 모아줬기에 가능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이웃끼리 어떻게 하면 눈인사라도 한번 하게 할까 생각하다 신문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어요. 서로와 서로의 소식을 전해서 이웃이라는 친근감을 심어주자는 것이었죠.” 맨처음 신문만들기를 제안했던 이문희씨의 말이다.

그동안 신문을 통해 수년째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줘온 ‘비둘기 할머니’를 찾아냈고 ‘아파트 최고 어른’을 알려 냈다. ‘효행 가정’을 발굴했고 ‘7명의 자녀와 사는 아파트 속 대식구의 가족사랑법’도 소개됐다.

아파트 단지에 사람 사는 냄새 전한다

더욱 나은 아파트 운영과 관리방법 찾기도 이 신문의 주된 관심사의 하나이다. 수도관 녹물방지를 위해 사용하는 방청제 문제를 제기해 규산염 사용을 중단하게 만들었고, 아파트 내 ‘얌체 불법주차’ 문제를 완전 근절시킨 것은 그 한 예다. 이 밖에 승용차 함께 타기, 쌀 좀두리운동, 장롱 속 헌옷 찾기, 어린이 글짓기 대회 등 다양한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기획해 거뜬히 성공시켰다. 월 20여만원의 신문제작비로 얻어낸 성과치고는 거의 ‘마술’에 가깝다.

“지난해 창간 1주년을 맞아 주민 설문조사를 했더니 주민 대다수가 ‘아파트 신문’의 존재와 역할에 후한 점수를 줬어요. 신문을 통해 아파트 단지에 물씬 사람 사는 냄새를 전하고 싶어요.” 편집위원장 이문희씨의 소망이다.( 042-534-8317)

대전=심규상/ 충남지역신문협회 기자 sim041@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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