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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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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몰염치에 성난 시민들

등록 2001-02-22 00:00 수정 2020-05-03 04:21

부인 인사비리 관련 정읍시장 사퇴 운동… 법적 무혐의 처분에도 도덕적 책임은 여전

둥둥둥…. 요즘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오후 3시가 되면 정읍시청 앞 신문고가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에 맞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진다.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가 하면, 전단을 나눠주며 서명을 받기도 한다. 어찌보면 100여년 전 이곳에서 죽창을 손에 든 이들의 외침과도 비슷하다.

“부정부패를 일삼는 탐관오리를 척결하라!”

그때 민중처럼 동학의 후예들이 부정부패 관료들을 몰아내기 위해 또다시 일어섰다. 이들은 정읍경실련, 농민회 등 21개 단체로 구성된 ‘인사청탁뇌물비리 국승록 시장 사퇴촉구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부인의 인사비리로 시장직 사퇴 위기에 놓여 있는 정읍시장을 두고 시민들의 퇴진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사청탁 받은 부인이 홀로 돈 챙겨?

연초 벽두부터 전북도 내 지방정가를 강타한 이 사건의 발단은 국 시장의 부인이 승진 대상자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지난 1월12일 구속되면서 비롯됐다. 하지만 검찰에 소환된 국 시장은 부인과의 공모혐의를 적극 부인해 무혐의로 풀려났다.

애초 예상과 달리 검찰이 부인만을 구속하는 선에서 수사를 매듭짓자 거센 반발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곧 ‘정읍시장 사퇴촉구 비상대책위’가 설립되고 1월16일 시가행진을 시작으로 시장퇴진운동이 열기를 더하며 계속되고 있다. 시위에 참여한 김연주(25·학원강사)씨는 국 시장이 묵묵부답하고 있는 것에 대해 “최소한 자신을 지지해준 시민들을 모독하는 행위”라면서 “실추된 시민과 공직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 운동은 온라인에서 더 빛나고 있다. 정읍시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는 연일 네티즌의 성난 목소리가 수십건씩 올라온다. “자신의 가정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시정을 책임질 수 있겠나”, “병든 조강지처한테 모든 죄를 몰아 씌운 국 시장에게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낀다”…. 이런 글에 대한 조회건수는 대부분 수백건에 이를 정도이다.

현행법은 형사처벌 받은 경우를 제외하곤 지자체장이 정책을 소신껏 집행할 수 있도록 임기를 보장한다는 이유로 주민소환제를 배제하고 있다.

100년 전 죽창 들었듯이 거리로 나선다

국 시장 퇴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읍경실련 이재산 사무국장은 “지역의 수장으로서 도의적인 책임에 어긋나는 일이다. 국 시장 퇴진운동은 선거 전날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임기가 끝나는 날만을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주민소환제도도 없는 상황에서 단체장을 사퇴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에 오늘도 정읍시민들은 영하의 차가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시장퇴진운동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이번 국 시장 사퇴촉구운동은 개인비리를 밝히는 차원이 아니라 정치인과 자치단체장의 부정과 비리의 구조적 모순을 바로잡고 방지책을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데까지 연결돼야 한다. 풀뿌리 지방자치의 정신을 살리고 평화적이고 합리적인 자치단체 내부의 자율통제 기능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그래서 주민소환운동이 필수적이다. 이제 황톳길, 골깊게 서린 민중의 역사는 다시 시작된다.

정읍=최기우/ 소설가 torogiwoo@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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