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탓에 학부모들의 걱정이 큽니다. 휴업한 학교가 6월11일 현재 2431곳에 달합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학생(전체 인구의 12%)보다 더 많은 임금노동자(전체 인구의 37%)가 있습니다. 실제 메르스 확진 환자 중에는 일하다가 감염된 의사·간호사·간병인·병원 보안요원 등도 있었지요. 이들 역시 노동자입니다.
평소 손을 잘 씻는 등 예방에 주의하고 고열·기침 같은 의심 증상이 나타났을 때 병원에 가지 말고 먼저 메르스 핫라인(109)·지방자치단체 콜센터(지역번호+120)로 신고하는 건 누구나 지켜야 하는 기본 원칙입니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 다음이 궁금합니다. 메르스가 의심되는 증상이 있으면 유급휴가로 쉴 수 있는지, 휴가를 냈다고 불이익을 받는 건 아닌지, 산업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는지 등의 질문이 꼬리를 뭅니다. 메르스 앞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권리와 보호를 주장할 수 있을까요?
1. 메르스 자가 격리 대상자입니다.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한국 사회는 아직 질병으로 인한 유급휴가를 법으로 보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회사의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관련 규정이 없으면 유급휴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참고로 한겨레신문사의 단체협약을 찾아보니, ‘회사는 조합원이 업무상 부상·질병으로 출근이 불가능하면 6개월, 업무 외 부상·질병으로 7일 이상 출근이 불가능할 경우 1년에 30일 이내의 유급휴가를 준다’고 되어 있네요.) 고용노동부는 법적 규정이 없더라도 유급휴가를 주도록 지도하겠다고 지난 6월8일 밝혔지만, ‘지도’라는 말은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다만 정부는 6월10일 메르스로 자가 격리됐던 사람이 신청할 경우 유급·무급 휴가 여부와 관계없이 4인 가구 기준 110만5600원(1인 가구 40만9천원, 2인 가구 69만6500원, 3인 가구 90만1100원, 5인 가구 131만200원)을 긴급생계비로 지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적어도 메르스와 관련해서는 ‘돈 걱정’ 없이 쉴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뜻입니다. 일단 한시름 놓았지만, 노동계는 병으로 몸이 아파서 회사를 쉬어야 할 경우 연차휴가보다는 질병유급휴가를 쓸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유럽의 모든 나라와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전세계 145개국이 질병휴가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미 지난해 4월 노동자가 다치거나 아플 때 30일의 병가를 주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정작 노동부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소극적이네요. 메르스를 계기로 한국 사회가 ‘병가 법제화’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2. 메르스 때문에 일을 못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을 수 있나요?법원은 부당 징계를 판단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로 ‘사회 통념’을 꼽습니다. 격리 대상이나 확진 환자의 경우, 쉬었다는 이유로 징계 등의 불이익을 받으면 ‘부당 징계’에 해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산업안전보건법과 시행령은 사업주가 감염병·정신병·심장질환 등에 걸린 노동자의 노동을 금지토록 하고 있습니다. 메르스는 ‘전염될 우려가 있는 질병’으로 볼 수 있으니 사업주는 이 법에 따라 노동자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런데 노동부는 “메르스는 국가가 전염 예방 조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하네요. 국가가 전염 예방 조처를 하고 있는데 불안한 건 저뿐인가요?
격리 대상이나 확진 환자가 아닐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단순한 증상이나 의심만으로 출근하지 않으면 ‘결근’에 해당돼 징계 등 불이익을 받아도 구제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3. 중동 출장이 예정됐는데 불안해서 가고 싶지 않습니다. 거절할 수 있을까요?중동이나 확진 환자가 있는 병원에 출장을 가게 될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병원을 돌아다녀야 하는 영업사원이라면 일상 업무에서 이런 경우가 발생하지요. 그러나 본인이 메르스 관련 증상이 없고 해당 출장지가 여행이 금지되거나 폐업된 상황이 아니라면 정당한 업무 지시 거절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4. 메르스 확진 환자입니다.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말하는 ‘업무상 재해’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노동자의 부상·질병·장해·사망입니다. 산재보상을 받으려면 업무상 연관성이 증명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산재보상 대상이 되는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임금을 목적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자)여야 합니다. 특수고용노동자가 많은 간병인의 경우, 일하다 메르스에 감염돼 업무상 연관성이 있어도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재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특수고용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대안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병원에서 일하다 감염된 의사·간호사는 업무상 연관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업무로 중동에 출장을 갔다가 메르스에 감염돼도 역시 산재 인정이 가능합니다. 다만 중동에 출장을 갔더라도, 회사 사장 등 관리자가 절대 먹지 말라고 했던 낙타 고기를 먹어 메르스에 감염됐다면 산재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때 중요한 건, 정부의 예방지침 등이 아니라 분명히 회사 사장이나 관리자의 지시가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산재는 업무상 연관성을 따지는 것이니까요. 한편 병문안이나 가족 간병을 하다가 메르스에 감염된 경우도 업무와 관련이 없기 때문에 산재로 인정될 가능성이 적습니다.
5. 메르스 탓에 회사가 잠시 문을 닫았습니다. 월급을 받을 수 있나요?근로기준법은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하는 경우 노동자에게 평균임금(직전 3개월간 임금 총액을 그 기간의 총 일수로 나눈 금액) 70% 이상의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휴업수당’인데요. 만약 메르스 확진·격리 환자가 발생해 회사가 문을 닫게 되면 ‘자연재해’처럼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보아 사용자 책임이 없고 휴업수당을 주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메르스 감염 우려만으로 회사가 문을 닫을 때는 휴업수당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노동부는 법적 휴업수당 지급 의무와 관계없이, 메르스로 휴업하는 기간에 회사가 주는 임금의 일부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6. 우리 회사에 메르스 확진 환자가 있는지 확인할 수 없을까요?현재 보건 당국은 메르스 확진 환자가 다녀간 병원 이름만 공개하고 있습니다. 노동부는 보건복지부와 메르스 확진 환자가 다녔던 회사 정보 공유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언론에서 확인해 보도한 곳이 아니라면 지금으로서는 회사 이름을 공식적으로 알기는 어렵습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회사에 감염병 환자가 발생하면 관리인, 경영자, 대표자가 보건소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메르스는 아직 이 법률상 감염병으로 지정되지 않았네요.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제4군 감염병에 명시된 ‘신종감염병증후군’에 메르스를 포함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처벌할 경우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도움말: 고용노동부,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최진수 법규부장(노무사), 법률사무소 새날 권동희 노무사 , 한국노총 조기홍 산업보건실장김민경 사회정책부 기자 salmat@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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