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사장이 팬티만 입고 여성 직원에게 다리를 주무르라고 시키고 “더 위, 다른 곳도 주무르라”고 요구했습니다. 2심 법원에 이어 대법원은 지난 5월12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이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유죄 선고와 함께 집행유예를 내린 1심 법원과 다른 판단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는 반론이 많습니다. 대법원이 그대로 인용한 2심 판결문을 중심으로, 사건 내용과 무죄판결 이유를 되짚어보겠습니다.
조아무개(41)씨는 수입 자동차 대출 관련 업체와 조명기구 도·소매 업체 대표입니다. 조씨는 2013년 8월8일 대출 관련 업체에 속한 직원 ㄱ(27)씨를 경남 김해시 사무실로 불렀습니다. 수입 자동차 견적에 대한 교육을 하겠다는 이유였습니다. 조씨는 ㄱ씨에게 “손님이 올 수 있으니 문을 잠그라”고 시켰습니다. 조씨는 ㄱ씨와 함께 김밥을 먹은 뒤 덥다며 “반바지로 갈아입어도 되겠느냐”고 ㄱ씨에게 물었고, 이후 트렁크 팬티만 입은 채 소파에 앉았습니다. 조씨는 업무 교육을 마친 뒤 “고스톱을 쳐서 이긴 사람 소원을 들어주자”고 말했습니다. 고스톱에서 첫 판은 ㄱ씨가 이겼고, 조씨는 ㄱ씨의 요구에 따라 커피를 사왔고 사무실에 다시 들어오면서 문을 잠갔습니다.
두 번째 판에선 조씨가 이겼습니다. 조씨는 탁자에 왼쪽 다리를 올리고 ㄱ씨에게 “다리를 주무르라”고 요구했습니다. ㄱ씨가 종아리를 주무르자 조씨는 오른쪽 다리를 ㄱ씨 허벅지 위에 올리고 “더 위로, 더 위로, 다른 곳도 만져라”라고 말했습니다. 조씨는 또 왼쪽 다리도 주물러달라고 요구했고, ㄱ씨는 허리를 숙이고 왼쪽 다리를 주물렀는데 이 과정에서 팬티 안 ‘주요 부위’까지 보였다고 진술했습니다.
판결 내용1심 법원인 창원지법 조세진 판사는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 강의 80시간을 선고했습니다. 1심 법원은 “조씨가 사건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는 기색이 부족하고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도 조씨가 초범이고 벌금형을 넘는 전과가 없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엄연한 유죄 선고입니다. 2심 법원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2심 법원인 창원지법 형사1부(재판장 문보경 부장판사)는 1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대법원(재판장 고영한)은 이 판결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찰이 조씨를 기소한 혐의는 형법 제298조 강제추행죄입니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2심 법원은 강제추행죄에 대해 “‘추행’이란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인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해 사람을 추행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으로서 그 폭행 또는 협박이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런 법리를 바탕으로 2심 법원은 사건 내용과 진술에서 강제추행 혐의에 해당하지 않는 몇 가지 이유를 거론했습니다. 우선 △ㄱ씨가 직접 사무실의 문을 잠갔다는 점 △ㄱ씨가 다리를 주무르라는 조씨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이 이유라고 했습니다. 이어 △조씨가 ㄱ씨의 신체를 만지는 등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시도하지는 않았고, ㄱ씨의 다리 위에 자신의 다리를 얹기는 하였으나 이 행위를 두고 ㄱ씨가 조씨의 다리를 주무를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의 행사라거나 ㄱ씨의 저항을 곤란하게 만든 정도라고 보기 어려운 점도 이유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니 ㄱ씨에게 다리를 주무르게 하고 자신의 주요 부위를 보이게 한 것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라고 해도, 조씨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추행’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왜 ‘성폭력특례법’을 적용하지 않았을까판결의 쟁점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선 강제추행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2심 재판부의 법리 해석이 적절했느냐입니다. 천정아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는 5월13일 SBS 라디오 에서 “강제추행이라는 건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이면서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는 대법원의 2002년 판례를 인용하면서 “단순히 다리 위에 자기의 다리를 올린다든가 허리나 어깨를 만진다든가 하는 행위 자체도 강제추행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천 이사는 이어서 “피해자와 피고인의 관계라든가 당시의 상황을 무시하고 (2심 재판부가) 추행이라는 단어, 폭행·협박의 의미, 거기에만 집중했다. 법 감정에 맞지 않는 판단”이라고 말했습니다.
법무법인 정우의 강지재 변호사의 생각은 결이 다릅니다. 강 변호사도 “허벅지를 손으로 만졌다면 바로 강제추행죄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발로 만지는 것도 추행이 될 수 있어서 유죄판결도 가능하다”면서도 “하지만 이럴 경우 신체 접촉만 하면 모두 강제추행죄로 봐야 하느냐는 논란이 발생할 수 있고,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강 변호사는 “어떻게 보면 형식논리이지만, 법이란 게 결국 형식논리의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또 다른 쟁점은 검찰이 이번 사건을 기소할 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왜 적용하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성폭력특례법 제10조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은 “업무, 고용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 추행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조씨가 ㄱ씨의 회사 사장이기 때문에 ‘업무상 위력’의 조건에 부합합니다.
천정아 이사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같은 경우는 폭행·협박까지는 필요 없고, 업무나 고용 관계로 인해서 자기 보호·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해 위계나 위력으로 추행한 경우도 처벌하고 있다”며 “이 사건의 경우도 두 사람의 신분 차이라든가 지위 등을 봤을 때는 충분히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으로 처벌이 가능한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고 말합니다. 강지재 변호사 역시 “검찰이 형법상 강제추행죄에서 성폭력특례법으로 공소장을 변경했으면 유죄가 나왔을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검찰은 강제추행 혐의를 유지해서 이 혐의에 대해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합니다.
공소장 변경이란, 형사소송법에 따라 검사가 법원의 허가를 얻어 공소장에 기재한 공소사실 또는 적용 법 조항의 추가, 철회 또는 변경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검찰이 사건에 적용한 법률이 적절하지 않을 경우 다른 법률로 교체해 법원 판단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판사도 공판을 진행하다 검사에게 공소장 변경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성폭력특례법이 형법상 강제추행죄보다 규정하고 있는 형량이 작기 때문에 검찰과 법원이 강제추행 혐의 유지를 고집했던 걸까요. 검찰과 법원 나름의 판단이 있었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기소와 법 적용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재훈 디지털콘텐츠팀 기자 na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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