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을 마친 뒤 2년 동안 개봉 일정을 잡지 못하다가 6월24일 개봉한 영화 이 상영관 수에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관객을 모으고 있습니다. 은 서울 용산 참사를 모티브로 한 허구입니다. 그러나 지독히 현실적입니다. 영화 속에 담긴 현실은 무엇일까요? 법률 용어를 키워드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영화 은 아들을 폭행 중인 경찰을 때려 숨지게 한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아들은 결국 죽었습니다. 아버지 박재호는 구치소 접견실에서 국선변호사 윤진원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놈들이 내 아들을 죽였소. 내가 그놈들 중 한 놈을 죽였고.” 아들을 죽인 자를 처단한 아버지를 처벌해야 할까요? 2시간 동안 영화가 묻는 단 하나의 질문입니다. 법률적으로 바꿔 말한다면 ‘아버지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해야 할까요’가 될 것입니다.
형법 제21조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않는다”며 정당방위를 인정합니다. 늘 판단이 어려운 부분은 ‘상당한 이유’입니다. 박재호는 경찰의 뒤통수를 때릴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현실 속 법원은 정당방위를 거의 인정하지 않습니다. 20대 남성이 50대 절도범을 둔기 등으로 때려 식물인간 상태에 이르게 한 사건에 대해 지난해 10월 1심 법원은 지나친 폭행으로 판단하고 20대 남성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최씨가 절도범을 제압하기 위해 김씨를 폭행했다고 하더라도 흉기 등을 전혀 소지하지 않고 아무런 저항 없이 도망만 가려고 했던 김씨의 머리 부위를 발로 차는 등 장시간 심하게 때려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로 만든 행위는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습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정당방위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폭행사건을 유죄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판사들이 까다로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 수사기록 공개 거부
영화에서 검사는 경찰 초동수사자료 공개 등을 모두 거부합니다. 그가 내세우는 이유는 형사소송법 제266조의 3 2항입니다.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검사가 수사기록 열람 등을 거부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조항이죠. 영화에서 변호인은 검사가 공개를 거부한 수사기록 이외의 증거를 확보하는 데 치중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변호인단은 수사기록 공개를 둘러싸고 치열하고 엄중한 싸움을 벌였습니다.
검찰은 2009년 이충연 용산4구역 상가공사철거대책위원장 등의 1심 재판에서 전체 1만여 쪽의 수사기록 중 경찰 핵심 지휘 라인의 진술이 포함된 3천여 쪽을 변호인에게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의 과잉진압 여부가 핵심 쟁점인 상황이었는데 그 부분을 따질 수 있는 수사기록을 비공개한 것입니다. 1심 재판부가 ‘검찰은 변호인에게 열람·등사를 허용하라’고 결정했지만 검찰은 막무가내였습니다. 훗날 헌법재판소는 검찰의 이같은 행위를 위헌(8 대 1)으로 판단했고, 대법원도 위법한 행위라며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미 수사기록 없이 1심 재판이 진행됐고 피고인들의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는 심각하게 침해받은 뒤였습니다.
3. 국가배상소송
윤진원 변호사는 “경찰이 죽였든 깡패가 죽였든 사고는 경찰 작전 중에 벌어졌어. 국가 책임이야”라고 말하며 국가를 상대로 단돈 100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합니다. 청구액 ‘100원’은 피의자 박재호씨가 돈 때문에 소송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이런 소송이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을까요?
경찰의 과잉진압이 인정돼 국가배상소송에서 이긴 경우는 몇 차례 있습니다. 2005년 11월15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쌀 협상 국회 비준 반대’ 시위를 벌이던 농민 전용철·홍덕표씨가 진압 경찰에게 맞아 치료를 받다가 숨진 사건에서 두 농민은 모두 경찰의 과잉진압이 인정돼 손해배상을 받았습니다.
국가배상소송의 쟁점은 ‘국가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을 어겼느냐’입니다. 용산 참사 당시 국가배상소송은 검찰의 수사기록 비공개 행위에 대해서만 진행됐습니다. 경찰의 직무집행에 대해서는 형사적으로 무혐의 판단이 나와서 국가배상소송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는 언제나 이런 쟁점에 휘말리기 싫어합니다. 용산 참사 때도, 세월호 사고 때도 정부가 배상이 아닌 보상으로 무마하려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재판을 거쳐 책임을 엄밀히 따져묻지 말고 돈으로 합의하자는 뜻입니다.
4. 양형거래“검사는 제가 거짓 자백하면 3년 이하로 구형해주고, 집행유예가 나오도록 애쓰겠다고 했습니다.” 박재호의 아들을 죽였다고 자백해 ‘폭행치사’로 기소된 폭력배는 이후 법정에서 검사의 요청에 따라 허위 진술을 했다고 증언합니다. 양형거래가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양형거래는 불법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사실관계 날조 수준의 양형거래는 더더욱 불법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죄를 자백하면 이 부분은 좀 봐줄게’라는 약한 수준의 양형거래는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특히 뇌물사건의 경우 ‘뇌물을 줬다’고 말하는 순간 뇌물공여죄를 자백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검사와 거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횡령 액수를 감해주거나, 가족의 비리를 덮어주는 식입니다.
현실적으로 이런 식의 양형거래를 없애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검찰에서는 이를 ‘수사기법’으로 간주하기까지 합니다. 이 때문에 수사에 협조한 범죄자에게 기소를 면제해주거나 형을 줄여주는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을 통해 양형거래를 공식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5. 배심제에서 박재호씨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됩니다. 공판 마지막 날 판사는 배심원들의 만장일치 의견을 거부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재판부의 판결은 배심의 평결에 구속되지 않으므로, 본 재판장은 피고인의 범죄 사실과 폭행 정도의 과잉을 살펴 정당방위 성립을 부정하겠습니다.” 이 발언의 근거는 “(배심원의) 평결과 의견은 법원을 기속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46조 5항입니다. 이렇게 법원이 배심원의 판단을 뒤집는 것은 현실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일까요?
정답은 ‘아니요’입니다. 판사가 배심원의 판단을 따를 의무는 없지만, 실무적으로는 대부분 따르고 있습니다. 일부 따르지 않는 경우도 배심원들의 유죄 의견을 무죄로 판단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도 영화에서처럼 배심원의 판단을 거부한 사례가 있습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안중근 의사 유묵(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의 도난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안도현 시인에 대해,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단은 만장일치 ‘전부 무죄’ 평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전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은택)는 그 평결을 뒤집고 ‘일부 유죄’를 선고해 논란이 됐습니다.
대법원도 배심원의 판단을 존중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2011년 배심원 7명의 만장일치 평결을 받아들인 1심 결과를 뒤집은 2심 재판에 대해 “배심원이 증인신문 등 사실심리의 전 과정에 함께 참여한 후 만장일치 의견으로 내린 무죄 평결이 재판부의 심증에 부합해 그대로 채택된 경우라면, 항소심에서 새로운 증거조사를 통해 그에 명백히 반대되는 사정이 나타나지 않는 한 함부로 뒤집을 수 없고, (배심원 평결은) 한층 더 존중돼야 한다”며 2심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김원철 디지털뉴스부 기자 wonchul@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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