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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하기 위해 입사한 사원들

갑을오토텍의 신규채용 직원 절반이 경찰·특전사 출신, 복수노조 가입 뒤 노–노 갈등 유발… ‘신종 노조 파괴 수법 의혹’ 회사는 인정했지만, 노조 파괴 앞장선 회사가 처벌받은 사례 없어
등록 2015-07-04 14:55 수정 2020-05-03 04:28
<font color="#008ABD"> 디지털콘텐츠팀이 기획해 매주 2~3차례 에 싣는 ‘더 친절한 기자들’과 ‘뉴스 A/S’ 가운데 가장 깊고 자세하고 풍부한 기사를 골라 에 싣고 있습니다. 화제가 된 이슈를 기존 뉴스보다 더 자세한 사실과 풍부한 배경 정보를 담아 더욱 친절한 문체로 전해드립니다. 편집자</font>
금속노조 제공

금속노조 제공

‘회사는 2014년 12월29일 신규 채용자 중 금속노조에서 채용 결격사유가 있다고 제기하는 인원(52명)에 대하여 즉시 채용 취소한다.’

충남 아산시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갑을오토텍’ 노사가 지난 6월23일 동의한 합의서 내용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노조가 나서서 신입사원 채용 취소를 요구하고, 회사는 이를 받아들인 걸까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엿새 동안 매일 치른 전쟁</font></font>

먼저 갑을오토텍을 소개하겠습니다. 갑을오토텍은 40년 역사를 가진 노동자 610명 규모의 기업입니다. 자동차 에어컨 같은 차량 공조시스템을 만들어 현대자동차 등에 납품하는 업체죠. 이 회사 노동자들의 노조인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는 2013년 12월18일 통상임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연장·야근·휴일 수당을 계산하는 통상임금의 범위가 새롭게 정의된 판결이었죠.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은 지난 6월18일부터 엿새 동안 매일 ‘전쟁’을 치렀습니다. 회사 안에서 농성 중인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조합원들과 회사로 들어오려는 또 다른 노조인 ‘기업노조’ 조합원들이 경찰을 사이에 두고 물리적 충돌을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갑을오토텍에는 2개의 노조가 있습니다.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에 소속된 갑을오토텍지회와 지난 3월 새로 생긴 또 다른 노동조합입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으로 2011년 7월1일부터 한 회사에 여러 노조가 생길 수 있게 됐죠. 새 노조는 기업노조라고 부르겠습니다. 전국에 있는 회사들의 노조가 모인 산별노조에 소속된 갑을오토텍지회와 달리 갑을오토텍이라는 한 회사에 국한된 노조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왜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같은 노동자들의 출근을 막았느냐고요? 지난 6월17일 기업노조 조합원들이 공장 곳곳에 붙은 게시물을 일방적으로 뗐습니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임금교섭 관련 내용 등을 써서 붙인 게시물이죠. 이날 현수막을 떼려는 기업노조 조합원들을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막아섰고, 기업노조 조합원들이 폭력을 쓰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확대됐습니다.

“당시 20여 명 넘게 다쳤고 8명이 입원했으며 1명은 중환자실에 있는 상황이다. 그런 사람들과 불안해서 같이 일할 수가 없다.” 전병만 급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사무장의 말입니다. 이에 금속노조는 6월18일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갔고, 기업노조 조합원들의 출근을 막은 겁니다.

겉보기엔 일반적인 ‘노-노 갈등’입니다. 그러나 폭력을 행사한 기업노조 조합원들은 ‘노동자’라고 하기엔 의심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금속노조는 지난 4월부터 기업노조 조합원들에 대해 “회사가 금속노조를 와해시킬 목적으로 신규 채용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노동계에서 ‘노조 파괴’는 낯선 용어가 아닙니다. 2010년 이후 유성기업,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옛 발레오만도) 등에서 회사가 치밀한 계획을 세워 민주노총 소속 노조를 없애거나 무력화했습니다. 경비용역 업체를 투입해 폭력을 행사하고, 회사에 우호적인 노조를 세우는 방식으로 말이죠.

<font size="4"><font color="#008ABD">경찰 출신이 13명, 특전사 출신이 19명</font></font>

그런데 갑을오토텍의 경우는 이런 전형적인 노조 파괴 수법에서 한발 더 나갔습니다. 회사가 민주노총 소속 노조를 와해할 사람들을 아예 신규 채용해서 복수노조를 만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거죠. ‘신종 노조 파괴 수법 의혹’의 근거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font color="#008ABD">1. 지난해 12월29일 갑을오토텍에 입사한 신입사원 60명 중 절반 이상이 경찰·특전사 출신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font>

갑을오토텍 노사는 2014년 9월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면서 부족한 인력의 신규 채용에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한정우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부지회장은 “신입사원은 보통 30대, 많아도 40대일 텐데, 60명의 평균나이가 47살이고 50대 이상도 20명이 넘었다. 경찰·특전사 출신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천안고용노동지청이 조사한 결과, 신입사원 가운데 경찰 출신이 13명, 특전사 출신이 19명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이들 가운데 12명은 이런 경력을 이력서에 쓰지 않았습니다. 갑을오토텍 사규 위반입니다. 천안고용지청은 5월1일 “사규에 따라 신입사원 60명 중 허위 이력을 제출한 12명의 입사를 취소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사 쪽은 이런 권고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font color="#008ABD">2. 입사 전부터 노조 파괴와 관련한 사전 교육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font>

갑을오토텍 신입사원 가운데 한 명은 금속노조 쪽에 입사 전인 지난해 9~10월께 서울 종로구의 한 사무실에 모여 사전 교육을 받았다고 증언했습니다. “워낙 노조가 강성이니까 회사 말을 잘 듣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가 가서 노조의 반대편에 서서 회사 편의 복수노조를 만들자. 노조와 맞서는 일을 하고 나중에는 폭력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의 교육을 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신입사원 대다수는 갑을오토텍 단체협약에 따라 입사와 동시에 금속노조에 자동 가입했다가, 지난 3월 기업노조가 설립되자마자 단체로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노조에 가입했습니다. 사전에 금속노조 탈퇴와 기업노조 가입이 약속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법합니다.

그런 의혹의 근거는 어느 문자메시지입니다. 신입사원들 중에 ‘팀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다른 신입사원에게 보낸 ‘각 팀장의 권유에 따른 기업노조 가입은 원서를 받아놓고 다음주 화요일 즈음에 하기 바란다’는 문자메시지가 공개됐죠. ‘팀장’이라는 사람들이 금속노조 탈퇴와 기업노조 가입을 독려했다는 추정이 가능한 겁니다.

사전 교육에 대한 증언에서 나온 “나중에는 폭력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은 4월30일부터 현실화됐습니다. 이날 아침 6시20분께 기업노조 조합원들은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의 아침 출근 선전전 현장을 찾은 금속노조 간부들을 때렸습니다. 이후 발생한 크고 작은 폭력 사건은 지난 6월17일 대규모 물리적 충돌의 전조였던 셈입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천안고용지청과 아산경찰서의 ‘방조’</font></font><font color="#008ABD">3. 문제의 신입사원들이 ‘노조 파괴 전문 단체’ 소속일 가능성도 높아졌습니다.</font>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는 6월23일 갑을오토텍의 모기업 갑을상사그룹이 또 다른 계열사인 동국실업에 지난해 11월24일자로 보낸 인사 발령 관련 ‘업무연락’ 문서를 공개했습니다. 이 문서를 보면, 지난해 12월29일 갑을오토텍에 입사한 신입사원 가운데 19명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명이 갑을오토텍에 입사하기 한 달 전인 11월24일에는 동국실업에 있었음이 확인된 겁니다. 이들이 갑을상사그룹 소속 자회사들을 찾아다니며 노조 파괴 공작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법하지요.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는 이미 지난 4월 천안고용지청에 회사를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하고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급한 노조와 달리 천안고용지청은 두 달째 수사를 매듭짓지 못했습니다. 4월30일과 6월17일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와 기업노조의 충돌이 있었을 때, 경찰도 아무 조처를 하지 않았습니다. 노동계는 천안고용지청과 아산경찰서의 ‘방조’가 오늘의 사태를 낳았다고 봅니다.

사실상 회사가 노조 파괴 의혹을 인정한 뒤 이뤄진 노사 합의로 갑을오토텍 사태는 일단락됐습니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닙니다. 2010년 이후 만도, 보쉬전장, 상신브레이크, SJM, 유성기업, 콘티넨탈 오토모티브 일렉트로닉스, KEC 등에서 회사의 계획적인 ‘민주노조 파괴’가 반복됐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처벌받은 적은 거의 없죠. 이번 사건에 대한 천안고용지청과 검찰의 판단을 지켜보겠습니다.

김민경 사회정책부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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