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4일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가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하재헌(21) 하사와 김정원(23) 하사가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정부는 8월10일 이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국방부는 이날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고 군사대비 태세도 격상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8월12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원점 타격 외에 다른 응징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군 관계자는 “국민들이 ‘시원하다’고 느낄 보복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 등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습니다. 8월11일에는 지뢰 폭발 현장에 있었던 수색대의 문시준 소위가 기자회견장에서 “다시 그곳으로 가서 적 초소(GP)를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종합하면, 지뢰 폭발 사건 이후 국방부의 대응은 ‘북한에 어떻게 응징하냐’에 집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응징’보다 중요한 장병의 안전이 와중에 인상적인 뉴스가 하나 보도됐습니다. 몸의 일부를 잃은 김정원 하사의 말이었습니다. 김 하사는 8월11일 “북한에 대해 강경 대응을 하는 것은 북한 의도에 넘어가는 것”이라며 “같이 있었던 동료들이 안 다쳤다는 말을 듣고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온통 ‘응징’과 ‘보복’에 집중됐던 여론에 중요한 사실을 하나 환기해줬습니다. 군은 최전선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이 적의 위험에 최소한으로 노출될 수 있는 시스템을 최우선으로 챙겨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합동참모본부는 국회 보고 자료에서 “GP 인근 지역을 깨끗하게 만드는 ‘불모지 작전’과 수목 제거 작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중점 감시구역 감시율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경계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겠다는 말은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군이 반복해서 내놓는 대책입니다. 더 집중해야 할 건 차라리 근거리 감시레이더 등 DMZ 감시장비 운용체계의 보완입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 보완책도 함께 밝혔지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침투 작전 대비를 위한 안전장치인 ‘철책 감지 센서’도 몇 년 동안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반전초(GOP) 과학화 사업’은 몇 년째 “실행할 예정”이란 말로만 실행되고 있습니다. 수조원짜리 방위산업 비리를 보면서 기가 찰 수밖에 없는 건 그런 까닭입니다.
이런 사고 뒤 늘 등장하는 비판이 있습니다. 군의 기강 해이와 ‘경계 허술’론입니다. 이번 사고를 두고도 일부에서 “북한이 지뢰를 매설하는 것도 몰랐던 군 장병들이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것 아니냐”고 지적합니다. 돈이 드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보다 군 병력을 최대한 동원하고 정신력을 강화해 경계 태세를 정비하라는 말이 되겠지요.
그런데 철책 경계 중심의 ‘경계 허술’론은 초점을 잘못 짚고 있습니다. 철책 경계를 통해 북한군이 한 명도 철책을 뚫고 내려오지 못하게 막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는 휴전선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부터 설명하겠습니다. 휴전선은 여러 겹의 철책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순서로 살펴보면, 일단 GOP가 있고, 첫 번째 남쪽 철책인 통문이 있습니다. 보통 TV에서 전방 군인들이 순찰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철책이 바로 통문입니다. 통문은 높이가 4m 정도 됩니다. 통문을 넘어 북으로 올라가면 민간인 통제 구역이 나옵니다. 통문부터 다음 철책인 추진 철책(3m 정도 높이)까지 지역을 ‘1단계’라고 부릅니다. 추진 철책과 군사분계선(MDL) 사이의 지역은 ‘2단계’입니다. MDL에는 철책이 없고 푯말만으로 경계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1·2단계 지역의 병사들은 최전방 경계초소(GP)를 세우고, 매복을 하며, 경계 근무를 서고, 생활을 합니다. MDL을 넘으면 북쪽 땅이 나오고, 바로 북한의 전기 철책이 나옵니다. 이번 사고는 남쪽의 추진 철책에서 발생했습니다. 북한군의 소행이 맞다면, 북한군이 내려와선 안 되는 지역으로 침입해 지뢰를 매설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입니다.
한 명도 뚫지 못하게 막는 건 불가능해그런데 휴전선은 산악길로 이어져 있는 260km 길이의 긴 경계선입니다. 남과 북의 철책과 경계선 사이 폭만 최소 2km에서 3km 정도입니다. 좌우, 남북 상하 폭이 꽤나 넓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지역별로 다르지만, 1개 소대는 좌우 길이 5km 정도 영역의 경계를 맡습니다. 어떤 곳은 병사 2명이 경계를 서는 소초가 차로 5~6분 거리에 떨어져 있습니다. 1개 소대라고 해도 30명 정도로 구성돼 있고, 이들이 3교대로 돌아가며 24시간 경계 근무를 섭니다. 이 정도 인력으로 좌우 5km를 물 샐 틈 없이 경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북한군이 내려와 지뢰를 매설하는 장면을 포착해내는 경계도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한국군의 방어 태세도 살펴봐야 합니다. 한국군의 휴전선 방어 태세는 중대나 대대 규모의 병력이 전면전을 위해 남하할 때 철책에서 시간을 끌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러니 북한군 병사 1~2명이 지뢰를 매설하는 장면을 포착하지 못한 것을 두고 군의 ‘경계 허술’이라는 비판을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앞서 말했던 철책 감지 센서 등 GOP 과학화 사업 같은 시스템 구축이라는 말이 되겠지요. 물론 시스템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않습니다. 시스템을 작동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지요.
이번 사건에서 무엇보다 아쉬운 건, 피해를 본 수색대원들이 지뢰탐지기를 휴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군은 북한의 지뢰 매설 동향을 이미 포착하고 있었습니다. 정미경 새누리당 의원은 8월12일 국회 국방위에서 “(북한의) 지뢰 매설 동향을 (지난해부터) 포착해놓고, 군 수뇌부가 말만 ‘유념하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윤후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같은 날 국방위에서 공개한 문서를 보면, 이번 사고를 당한 수색대원들이 속한 육군 1사단은 5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지뢰탐지기를 휴대하고 작전하라’ ‘투입 전 수색대대장·중대장은 준비 상태를 확인하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사고 발생일인 8월4일 사고 지역 관할 상급부대가 “수색작전에 지뢰탐지기를 휴대하라”는 지침도 내렸습니다. 하지만 수색팀은 이 지침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폭발한 지뢰가 나무 상자로 된 목함 지뢰여서 금속 성분을 탐지하는 지뢰탐지기로는 탐지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함 지뢰에는 지뢰탐지기가 포착할 수 있는 철제 성분이 포함돼 있습니다. 폭발한 지뢰는 충분히 탐지할 수 있는 땅 밑 5cm 정도 깊이에 묻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뢰가 철책 바로 아래에 있어 철책을 구성하는 금속 때문에 탐지가 방해받을 순 있었겠지만 말이죠.
그런데 왜 지침이 이행되지 않았던 걸까요. 탐지기를 제공하기만 하고 운용법을 교육하지 않았던 걸까요. 지뢰탐지기가 목함 지뢰까지 포착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공유되지 않았던 걸까요. 혹은 수색대가 안이했던 걸까요. 지뢰 방호용 덧신을 착용하지 않았던 사실과 함께 이번 사건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몸의 일부를 잃는 폭발 사건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군, 지뢰 위험 알고 있었다하지만 군은 윤 의원이 이 사실을 공개하기 전까지 이 문제를 공표하지 않았습니다. “군이 지휘 불이행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사실을 은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군이 북한에 대한 ‘응징의 의지’를 공표하는 모습을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군이 우선해야 할 건 지뢰탐지기 등 장병의 안전 태세와 지침이 이행되지 않은 사실에 대한 명명백백한 조사입니다. 이어서 GOP 과학화 사업을 제대로 실행하고, 이 시스템을 이행할 장병들의 안전 관련 경계 태세를 재점검해야 할 겁니다. 포인트가 어긋난 대응은 또 다른 참사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한국군 장병들의 안전 아닐까요.
*이 기사는 월간 2013년 1월호에 실린 기사 ‘비는 휴가 많았다는데 전방 경계병은?’의 취재 내용을 재구성한 서술이 담겨 있습니다.이재훈 디지털콘텐츠팀 기자 nang@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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