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은 각종 균들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 사태도 있지만, 경기도 오산 공군기지에 살아 있는 탄저균 표본이 배송된 ‘배달 사고’도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두 ‘균’ 사이엔 공통점도 있습니다. 메르스 대처도 제대로 못하고, 주한미군이 탄저균을 들여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한국 정부의 무능함입니다.
여러 의문에도 버티는 주한미군미국 유타주의 군 연구시설인 더그웨이 연구소가 죽거나 비활성화되지 않은 살아 있는 탄저균을 한국 오산 공군기지와 미국 내 9개 주에 보냈다고 지난 5월28일 미 국방부가 발표하면서 ‘탄저균 배달 사고’가 알려졌습니다. 이후 미 정부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연구소가 살아 있는 탄저균을 잘못 보낸 곳이 한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 3개국과 미국 내 17개 주 등 모두 51곳이었음이 추가로 확인됐습니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주한미군과 공동으로 조사해 지난 5월29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문제의 탄저균 표본은 4주 전인 5월 초에 오산 공군기지로 반입됐습니다. ‘주피터 프로그램’(JUPITR·연합 주한미군 포털 및 통합위협인식)의 일환으로 새로 들여온 유전자 분석 장비를 한국 국방부와 보건복지부를 초청해 시연할 행사(6월5일)에서 사용하려 했다는 겁니다.
민간 배송업체인 페덱스를 통해 들여온 탄저균 표본은 포자 형태의 액체 1mℓ 분량이었고, 실험실 냉동고에 보관돼 있다가 지난 5월21일 시연 행사를 위한 사전처리를 위해 해동됐습니다. 그러다 지난 5월27일 주한미군은 미국 국방부로부터 표본이 살아 있을 가능성을 통보받고, 표본을 락스 성분의 표백제에 넣어 폐기했습니다. 아직 이 실험에 참여했던 미군 소속 군인과 연구원 22명은 어떤 감염 증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재 주한미군은 여러 의문에 대해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답하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습니다. 미국 방송 <abc>는 탄저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은 지난 5월22일 메릴랜드의 한 민간 기업이 발견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신고하면서 알려졌다고 보도했습니다. 미 국방부가 이 사실을 곧바로 주한미군과 한국에 알리지 않고 닷새나 흘려보낸 이유에 대해 주한미군은 사실관계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일반 시민들도 이용하는 배송 업체인 페덱스가 탄저균 표본이란 위험물질을 어떤 경로로 옮겼는지, 한국 국민에게 노출됐을 가능성은 없는지 등에 대해서도 입을 닫고 있습니다.
1998년부터 탄저균 실험?
가장 큰 의문은 주한미군이 탄저균 표본을 한국에 들여온 게 이번이 처음이냐는 것입니다. “1998년 9월 전세계 미군기지 중 가장 먼저 주한미군기지에 탄저균 실험시설을 갖춰 백신을 대량 공급해왔고, 같은 해 오산 미 공군기지에 처음 창설된 세균무기 탐지 부대인 화생방방호중대(BIDS)는 이번에 탄저균 표본이 배달된 주피터 프로그램 연구실의 전신”이라는 군사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의혹은 주한미군의 새로운 한반도 생물학전 대응 전략인 ‘주피터 프로그램’이 공개되면서 눈덩이처럼 커졌습니다. 2013년 6월부터 주한미군은 ‘주피터 프로그램’ 도입에 착수했고 2015년 말 완성을 목표로 상당히 실험을 진척했다는 것이 프로그램 책임자의 진술로 드러난 것입니다. 주피터 프로그램을 이끄는 피터 이매뉴얼 ‘에지우드 화학 생물학 센터’(ECBC)의 생물과학 부문 책임자가 2013년 3월19일 미 방위산업협회가 주최한 ‘화학 생물학 방어 계획 포럼’에서 주피터 프로그램에 대한 실시 계획을 발표했던 자료가 등 언론에 포착된 것입니다.
이 계획과 인터뷰들을 보면, 주한미군은 탄저균뿐 아니라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독소’라는 보툴리눔 A형 독소까지 실험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게다가 주한미군은 서울 용산과 경기도 오산 등 3곳에 실험실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연구소들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미군이 전세계적으로 생화학 공격 대응력을 향상시키려고 한국을 생물학전 현장 ‘실험실’로 삼고 있었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이매뉴얼 박사는 지난해 12월 한 미국 군사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 고위급들이 (주피터 프로그램이란) 선진적인 개념을 실험해보길 원했다”고 답했습니다. 이어 “지정학적으로 미국의 자원이 고도로 집중되어 있고, 주둔국(한국)도 우호적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그는 “한국에서 설계된 틀은 미군의 아프리카·유럽·태평양사령부에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해, 전세계 미군의 생물학전 대응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실험실로 한국을 선택했다는 인식을 뚜렷이 드러냈습니다.
BSP 협약 맺고도 사후 통보도 않은 이유
문제는 한국 정부가 탄저균 같은 위험물질이 들어온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국방부 당국자는 “이번 사고가 발생한 주피터 프로그램 연구소가 언제부터 어떻게 운영됐고 어떤 균들이 얼마나 실험됐는지에 대해 미군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은 게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주한미군이 진행하는 주피터 프로그램을 전혀 모른 것은 아닙니다. 이미 한-미 국방부는 2013년 10월 ‘한-미 공동 생물무기 감시 포털(BSP)’ 구축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생물무기 감시 포털은 탄저균, 보툴리눔, 페스트, 야토병 등 10여 가지의 위협적인 생물학 작용제가 사용되는지 감시하고 대응하기 위한 한-미 공조 체계입니다. 주피터 프로그램의 한 분야로 한국과 미국이 이런 협약까지 체결했지만, 정작 미군은 탄저균 같은 위험물질 반입과 실험에 대해 한국에 사전은 물론 사후 통보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미군이 한국 정부에 위험물질 반입을 통보하지 않은 것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때문입니다. 협정 제9조(통관과 관세)는 “미합중국 군대에 탁송된 군사화물”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세관 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불평등한 협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평화통일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세계 3대 미군 주둔지인 한국·일본·독일 중에 미군 병력 규모, 무기체계 변화, 위험무기의 반입이 있을 때 사전에 통보하고 협의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안전과 직결된 미군의 탄저균을 관리·감독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지난 6월1일 당정협의에서 “오는 7월 예정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합동위원회 회의에서 모든 위험가능성 물질의 국내 반입이 철저한 통제하에 진행되도록 협정 운영 방법과 절차상 문제를 의제로 논의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개정 문제에 대한 국민의 감시가 약해져선 안 되겠습니다.
김지훈 정치부 기자 watchdog@hani.co.kr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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