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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 고’를 기억하시나요

1심에서 벌금 500만원 당선 무효형 판결받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한참이나 밀리던 선거에서 극적으로 당선된 2014년을 되돌아보면…
등록 2015-05-01 22:21 수정 2020-05-03 04:28
한겨레 디지털콘텐츠팀이 기획해 매주 2~3차례 에 싣는 ‘더 친절한 기자들’과 ‘뉴스 A/S’ 가운데 가장 깊고 자세하고 풍부한 기사를 골라 에 싣고 있습니다. 화제가 된 이슈를 기존 뉴스보다 더 자세한 사실과 더 풍부한 배경 정보를 담아 더 친절한 문체로 전해드립니다. _편집자

지난 4월23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대법원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교육감 직을 상실하게 됩니다. 6·4 지방선거 구도가 한창이던 지난해 5월 조희연 당시 후보가 상대 고승덕 후보에 대한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입니다.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시곗바늘을 1년 전으로 돌려 상황을 찬찬히 톺아보겠습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한겨레 김성광 기자

고 후보의 3분의 1 수준으로 뒤처진 상태

2014년 3월18일 진보 진영이 서울시교육감 단일 후보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를 선출했습니다. 보수 진영은 후보가 난립했습니다. 문용린 당시 서울시교육감이 3월25일 재선 도전을 선언했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고승덕 변호사는 5월7일 뒤늦게 출마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선거는 크게 3파전으로 치러졌습니다.

하지만 ‘진보 단일화-보수 분열’ 구도가 진보 진영에 유리하게 작용하진 않았습니다. 문용린 전 교육감은 교육부 장관을 지낸데다 현직 교육감의 인지도를 안고 있었습니다. 고승덕 변호사는 행시와 외시, 사시에 모두 합격한 경력으로 TV에도 자주 출연했고 18대 국회의원까지 지낸 인물입니다. 반면 진보적 민주주의 학자인 조희연 교수의 대중적 인지도는 다른 두 후보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가 같은 해 5월15일 공개한 후보 지지율을 보면, △고승덕 후보 29.9% △문용린 후보 17.6% △조희연 후보 8.3%였습니다. 다만 이때 ‘모름/무응답’이 31.3%로 높았던 점이 주목됩니다. 그만큼 부동층이 컸다는 얘기입니다. 이 구도는 선거를 2주 정도 앞둔 시점까지 계속됩니다. 조 후보의 지지율은 여전히 고 후보에 견줘 3분의 1 수준으로 뒤처진 상태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경영 기자는 5월24일 자신의 트위터(@kyung0)에 “서울시교육감 후보로 나선 고승덕 후보는 자녀들을 어디서 공부시키셨나요? 한국에서 공부를 시키지 않으셨으면 왜 그러신 건가요? 본인 역시 미국 영주권을 갖고 계시지요? 정말 한국의 교육을 걱정하십니까?”라는 글을 씁니다. 이 트위트는 선거를 앞두고 폭발적으로 리트위트됐습니다.

조 후보는 5월2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후보가 두 자녀를 미국에서 교육시켜 자녀들이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고 고 후보 자신 또한 미국에서 근무할 때 영주권을 보유했다는 제보가 있다”며 이 주장을 대중에 공표했습니다. 그러자 이날 오후 고 후보는 “영주권을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자녀의 미국 교육은 사실이고 영주권이 아닌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다. (중략) 전처와 결별의 과정을 겪으면서 아이들을 미국으로 떠나보내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공방은 계속됐습니다. 조 후보는 “고 후보가 몇 년 전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뒤 ‘미국 영주권이 있어서 미국 가서 살면 된다’고 말했다는 다수의 증언이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영주권을 받은 적이 없다는 내용증명을 떼어주면 깨끗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고 후보는 자신의 여권이 찍힌 미국 비자를 공개했습니다. 영주권자는 비자를 받을 필요가 없으므로 자신이 영주권자라는 조 후보의 주장이 틀렸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고 후보는 27일 조 후보를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합니다.

딸의 페이스북 글 “그는 교육감 자격이 없다”

논란이 영향을 끼친 걸까요. 28일 MBC와 SBS의 여론조사 결과, 고승덕 후보는 26.1%, 문용린 후보 23.5%, 조희연 후보는 14.9%의 지지율을 얻어 판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는 의혹 논란 때문만은 아닙니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부동층이 후보들의 면면을 자세하게 알게 되면서 조 후보의 인지도가 덩달아 높아지고, 학생·노동단체·교육계 등의 지지 선언이 잇따르며 조 후보의 정책이 알려진 영향도 있었을 겁니다.

조 후보는 추가로 고 후보의 아들이 이중 국적을 가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고 후보는 해명 회견에서 “아들은 건드리지 말아주십시오. 잘못을 저질렀으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실제로 이런 논란 자체가 선거 막판까지 결정타가 되진 못합니다. 여전히 무난하게 고 후보가 교육감에 당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 변수가 등장합니다. 미국에 사는 고 후보의 딸 캔디 고(당시 27살)가 선거를 닷새 앞둔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승덕은 자식들 교육을 방기했다. 교육감이 될 자격이 없다”는 글을 올린 겁니다.

캔디 고는 글을 올린 직후인 6월1일 새벽 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고 후보가 ‘아들은 건드리지 말아달라며 울었다’는 보도를 보고 공개 편지를 쓸 결심을 했다. 그 눈물은 자기가 버리기로 결정한 아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현실의 삶에서 저와 제 동생에게 그런 정도의 감정을 보인 기억이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선거 판세는 단번에 뒤집혔습니다. 고 후보가 딸의 폭로를 두고 ‘공작정치’라고 맞서고 유세에서 “딸아 미안하다”라고 외치기도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6·4 지방선거 결과, 조 후보가 38.1%를 득표해 29%를 득표한 문용린 후보를 제치고 서울시교육감에 당선됐습니다. 고 후보는 3위로 추락했습니다.

이제 1심 판결의 쟁점을 짚어보겠습니다. 조 교육감의 이번 혐의는 ‘허위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공표’했다는 데 있습니다. 조 교육감 쪽은 신뢰할 만한 기자의 문제제기를 근거로 공직 후보자의 자격 문제에 관한 해명을 요구한 것이라고 재판에서 주장했습니다. 그러니 ‘의견 표명’이지 허위 사실 적시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재판부는 “사실관계에 대해 증거로 입증이 가능하면 사실로 보는 것인데, 이를 회피하기 위해 인용을 한다든지 ‘소문에 의한’, ‘제보에 의한’ 등의 가정적인 표현을 쓴다 할지라도, 간접적·우회적 방법으로 사실을 암시하면 사실 적시”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조 후보가) 공표한 내용은 허위로 입증됐다”고 덧붙였습니다.

교육 정책에 대한 논쟁이었다면

재판부는 또 “최경영 기자는 공익적 차원에서 문제제기를 했다고 했지만, 객관적 자료가 부족해 기사화를 하진 못했다. 조 후보는 그와 같은 보고를 받고, 최 기자 트위터의 진위를 확인해야 하는데 그런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종합할 때, 조 후보 쪽이 “미필적으로나마 허위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보여진다”고 판시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선관위가 경고 처분을 하고 경찰이 무혐의 처리한 사안을 검찰이 공소권을 남용해 기소했다는 조 교육감 쪽 주장에 대해서는 “선관위 경고 처분은 행정 처분이고, 그와 달리 기소된 사례도 많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번 판결은 1심일 뿐입니다. 대법원 판결까지 치열한 법리 공방이 펼쳐지겠지요. 조 교육감 처지에선 혐의에 견줘 벌금 500만원 형이 과하다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합니다. 하지만 선거일을 며칠 앞둔 조급한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싸우는 방법이 좀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국 사회가 ‘보수에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불평등한 구조라고 해도, 그 구조가 모든 수단을 정당화해주진 않습니다. 그 수단이 후보자 개인 신상에 대한 폭로보다는, 교육 정책에 대한 논쟁이었다면 더 바람직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의 재판 결과를 주시해야겠지만, 지금까지 상황만 돌아봐도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재훈 디지털콘텐츠팀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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