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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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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지론

등록 2015-04-29 15:33 수정 2020-05-03 04:28

최근 음악과 오디오라는 작은 위안처를 발견했다. 시작은 어머니의 말 한마디였다. “집에 있는 LP판들 버릴 수도 없고 요새 옛날 음악이 듣고 싶기도 하네 .” 그즈음 번역가 황보석 선생님에게서 중고 앰프와 스피커를 선물로 받았다. 선생님의 호의가 나에게 효도할 기회를 준 셈이었다. 중고 턴테이블을 장만하는 데도 지인들이 이런저런 도움을 줬다. 이 모든 과정이 우연찮은 우정의 연쇄처럼 느껴졌다.
턴테이블을 설치한 날 어머니와 나는 해리 벨라폰테의 를 들었다. 흐뭇한 맘으로 노래를 듣는데 가사가 마음을 찔러왔다. “만약 그대가 꽃이 시들듯 죽는다면, 그대가 죽어 있다면, 내가 와서 그대 누운 곳을 찾으리. 그리고 무릎 꿇고 기도를 올리리.”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균형을 찾고 소음을 없애는 것

그런데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겼다. 오디오에서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소음을 잡기 위해 기계에 매달렸다. 그러면서 알게 됐다. 오디오의 소음은 전기적 현상인데 그것은 기계 내부의 효율, 또는 기계와 기계의 연결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나는 검색으로 구한 정보를 주먹구구식으로 적용하며 소음을 제거해갔다. 내가 애를 쓰는 만큼 기계가 응답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장벽에 부딪혔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음이 사라지지 않는 상황이 온 것이다.

더 열심히 공부(?)한 끝에 드디어 해결책을 찾았다. 그 해결책의 이름은 ‘접지’(接地)였다. 나에게 접지는 거의 ‘접신’과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선 하나를 연결하여 기계 안에 갇혀 있는 전기를 땅으로 방출하는 것, 폐쇄회로 속에 갇힌 전기를 지구로 해방시키는 것, 그럼으로써 에너지 흐름의 균형을 찾고 소음을 없애는 것, 그것이 바로 접지였다.

나는 깨달았다. 기계도 자연과 연결되어야 제대로 기능하는구나! 그렇다면 인간은 어떠한가? 인간도 몸속에 전기를 발생시키면서 생명을 이어가지 않는가? 인간의 몸 또한 기계와 마찬가지로 땅에 접지한 상태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이 가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에 내 지식은 너무 짧고 내 정신은 너무 게으르다. 철학자 이진경이라면 인간이건 기계이건 개체로서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며, 서로가 서로를 떠받쳐주는 연결을 통해서만, 더 거대한 존재인 자연과의 연결을 통해서만 개별 존재자의 불완전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을 것 같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 연결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연결은 ‘작업’을 필요로 한다. 손발을 움직여 개체들을 연결시켜 소우주를 만들어야 한다. 마음을 쏟아 소우주를 더 큰 우주와 연결시켜나가야 한다.

안타깝게도 개체들은 자신의 기능과 욕구를 중심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연결에 저항하기 일쑤다. 연결이 되었을 때도 상대보다 자신의 영향력이 더 큰 쪽을 선호한다. 그러니 연결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접지 없이 팽창하는 삶

접지를 공부하며 배운 것이 있다. 두 기계가 각각 다른 땅에 연결돼 있다면 둘 사이에 전기적 균형은 불가능하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두 기계가 자기 땅이 더 좋은 것이라 경쟁적으로 주장하며 소음을 발생시킨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한쪽의 접지를 끊거나 양쪽의 접지를 통합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비유일 뿐이다. 기계는 대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대지에 대한 앎’을 가지고 대지와 연결되거나 분리된다. 대지에 대한 앎의 능력이 자신의 영토가 가장 옳다는 식의 아집이 될 때, 인간은 타인과 자연을 지배하려 든다. 자기 안에 갇힌 에너지가 타인과 자연을, 심지어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지도 모른 채 인간은 스스로를 완벽한 우주라고 확신한다. 접지 없이 팽창하는 삶, 우리는 이 때문에 망해왔고 앞으로도 망할 것이다.

심보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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