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일 전쯤 옥천성당에서 ‘세금과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전국을 떠돌며 강연하지만 동네분들 앞에서 하는 강의는 떨린다. 동네에서 뱉은 말은 당위가 아니라 과제가 되기 때문이다. “하시면 어떨까요”가 아니라 “같이 할까요”라는 권유형이 되어야 하니까.
얘기를 건네는 방법도 걱정된다. 추상적인 얘기보다 피부에 와닿는 얘기를 해야 하는데, 생각해보니 누리과정이 딱이다. 충청북도 내 어린이집 누리과정에 대한 지원은 4월까지다. 그래서 충청북도 내 약 2만4천 명, 옥천군 내 약 400명의 아이들에 대한 지원이 당장 5월부터 중단된다. 5월부터의 누리과정에는 충청북도 전체로는 약 557억원, 옥천군의 경우 약 24억원의 예산이 필요한데, 충북도지사와 충북교육감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다. 무상급식도 비슷한 상황이다(지역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거리는 멀지 않다).
무상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정부는 매번 예산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시민들이 낸 많은 세금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그래서 강연을 영국에 맞선 미국 독립전쟁의 구호인 “대표 없이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로 시작했다.
“왜 이런 일도 못하냐”는 시민들의 원성에 정부는 언제나 예산 부족이라 답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시민 1명당 세금 부담액은 2010년 이후 매년 늘어나 2014년 부담액은 2010년 453만원에서 100만원 정도 늘어난 약 551만원이다. 그런데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의 단골 이슈는 탈세이고, 2007년부터 7년 동안만 따져도 대기업들이 조세회피처에 투자한 금액이 약 20조원이다. 즉 힘 있고 돈 많은 사람들이 회피한 반면, 평범한 시민들만 성실 납세자로 살아왔다. 미국 독립전쟁에 비춰 생각하면 대표 없이 꼬박꼬박 세금만 냈으니 우리는 기득권들의 식민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정말 예산이 부족할까? <mb>이라는 책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가 자원외교로 낭비한 3대 공기업의 부채가 42조원이라고 한다. 단순한 비교이지만 이 돈은 2015년 기준 전국 누리과정 예산의 20년치다. 여기에 4대강 사업 예산과 복원 비용 84조원을 합하면 예산이 부족하다는 말을 믿기 어렵다.
단순한 계산 하나만 더. 엄청난 예산을 쓰지만 보안을 빌미로 시민의 참여가 완전히 배제되는 국방예산. 2018년부터 도입하기로 한 미국산 F35기 40대의 구입 및 유지 비용이 총 34조원이다. 전투기 1대당 구입 및 유지 비용이 8500억원인 셈이다. 단순계산으로 전투기 10대를 줄이면 전국 누리과정 예산 4년치가 생긴다. 납세자들이 전투기 10대를 줄이라고 요구하면 안 되는 걸까? 차기 전투기 사업은 이미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낭비라며 한목소리로 반대했는데, 왜 정부는 이 사업을 강행하는 걸까? 요즘 한창 문제인 방위산업체 비리나 무기 로비스트 문제와 무관할까?
자동차로 비유하면 이런 거다. 기름값은 우리가 대는데 운전대엔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운전대를 잡은 기득권층이 가자는 곳으로 마냥 끌려다니는 것이다. 이럴 바엔 그냥 차에서 내리겠다고, 이제 네가 직접 기름을 채우라고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세금을 내기 싫은 게 아니라 너희에게 주기 싫다고.
녹물 쏟아져도 수질 검사 기준 없다?
하지만 그런 요구를 하는 건 여전히 ‘매우’ 부담스럽다. 기득권층과 맞서는 것도 부담되지만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라는 깜냥이 안 생긴다는 말이다. 그리고 깜냥이 생길 것 같은 마을에 관한 결정도 실제로는 우리 일상과 너무 멀다.
예를 들어 요즘 옥천군 옥천읍 서대리의 주민들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충북도청과 옥천군이 추진 중인 의료기기단지 밑 하천에 녹물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수질 검사 결과 이 녹물에는 철분 함량이 기준치보다 3천 배 이상 높았는데, 군청 환경과는 철이나 망간의 하천수 수질 기준이 없어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일까.
더구나 이 의료기기단지는 주민들과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 의료기기단지는 2차 단지로, 1차 단지도 분양만 되었을 뿐 기업들이 완전히 입주하지 않았는데 그보다 3배 이상 크다. 심지어 추진을 결정한 뒤 공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정수장과 하수처리장 증설이 논의되는 실정이다(상수원 보호구역인 옥천군에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옥천군의회는 2015년 예산을 심의하면서 사업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사업비 30억4천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이러면서 옥천군이 내세우는 건 사업의 추진 주체가 충북도청이라는 점이다. 총사업비가 488억원인데 중앙정부가 80억원, 옥천군이 98억원, 충북도청의 공기업인 충북개발공사가 310억원을 부담한다. 충북도청은 ‘충북 의료기기 산업 집적화 및 고도화를 위한 의료기기밸리 구축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옥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의료기기 산업단지 조성으로 도정 역량 강화 및 신성장 동력 확보’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걸었다. 하지만 의료기기와 아무런 연관도 없는 옥천군에 주민들의 뜻도 묻지 않고 추진하는 이유는 뭘까?
하물며 언제나 예산이 부족한 충북도청이 말이다. 충북도청의 2015년 본예산은 약 3조7천억원으로 2014년보다 5.66% 늘어났지만 재정자립도는 23.7% 수준이다. 재정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많은 예산이 필요한 사업을 추진할까? 의료기기단지만이 아니다. 충북도청이 추진하는 대단위 사업들의 예산을 뽑아보면, 오송바이오밸리 조성사업 1조743억원, 오송역세권 도시개발사업 2천억원, 제천 글로벌 천연물 원료제조 거점시설 구축사업 181억원, 제천국제한방치유엑스포 개최사업 100억원, 화장품·뷰티세계박람회 지속 개최사업 151억원, 기능성화장품인증센터 건립사업 176억원이다. 합치면 1조3351억원이다. 단순비교를 하면 충청북도 누리과정을 약 16년 동안 할 수 있는 예산이 성패를 가늠할 수 없는 사업에 투자되고 있다.
이에 반해 도지사가 지난 선거 공약으로 내건 충북도 내 청소년 알바·인권센터 설치사업과 장애인생산품 판로확대 사업의 예산은 놀랍게도 0원(이른바 ‘비예산 사업’)이다. 그리고 경력 단절 여성의 사무직 재취업을 위한 직업훈련 지원 예산은 4억2천만원, 여성고용대책위원회 설치사업 예산은 5억5천만원, 시니어클럽 확대를 통한 노인 일자리 창출사업 예산은 12억5천만원이다. 정작 써야 할 곳에는 예산이 제대로 배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무상급식 중단에 분노한다. 그런데 분노만 할 게 아니라 세금을 내는 만큼 우리 요구를 전달할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아니면 미국처럼 독립전쟁을 벌이든가.
옥천=땡땡책협동조합 땡초</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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