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고를 당해본 적이 없다. 지금껏 직업이라 부를 만한 일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일이거나 떠나야 할 때가 되기 전에 내가 먼저 떠난 자리였다. 그래서 나는 해고된 사람들이나 직장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에게 묘한 연대감과 부채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일에 대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인드프리즘 노동조합에서 연락을 받고 난 뒤의 느낌도 비슷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한국의 기업은 어디나 똑같다. 선하고 책임감 있는 경영자가 있는 기업은 다를 것 같지만 경영자는 불사신이나 영웅이 아니다. 그가 사라지거나 밀려나는 순간 천국이 지옥으로 바뀌는 건 금방이다. 그리고 선한 얼굴 뒤에 내부 사람들의 입을 막고 더 힘들게 만드는 폭력이 숨어 있기도 한다. 해고노동자나 폭력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한다는 마인드프리즘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정혜신과 이명수, 두 사람이 ‘치유’를 모토로 만든 회사가 경영위기를 겪자 다음카카오라는 대기업의 의장 김범수씨가 투자를 선언하고 회
사를 확대 개편한다. 6명이던 노동자가 30여 명으로 늘어나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한 뒤 적극적으로 사업을 펼치려 할 때 설립자는 돌연 사퇴를 선언하고 떠난다. 투자자를 대표하던 공동대표는 갑자기 경영상의 어려움을 내세워 8명의 노동자를 희망퇴직시키고 본인도 책임을 진다며(?) 사퇴한다. 투자자에게 주식을 양도받은 현재의 공동대표는 또다시 경영위기를 내세워 기존 팀을 해체하고 계약직 2명에게 계약 종료를 통보하는 독단적 결정을 내린다. 이제 선하고 책임질 경영진은 사라졌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외부에 어려움을 호소하자, 공동대표들은 노조 때문에 회사 이미지가 나빠지고 매출이 줄어들었다며 노조원과 비노조원을 압박하고 폐업을 입에 올린다. 마인드프리즘에서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속도가 놀랍다. 회사가 걸어온 길은 11년인데 정리해고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은 불과 7개월 정도다.
나는 별로 상식적인 사람이 아니지만 최대한 상식적으로 생각해봤다. 김범수 의장이 ‘투자’를 할 당시에 마인드프리즘은 이미 적자 상태였다. 그래도 사회적 목적을 위해 투자한다던 돈은 어느 순간 빌린 돈인 ‘차입금’으로 둔갑했다.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기업에 투자를 하고 수익이 안 난다며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자는 계속 누적됐는데 왜 하필 설립자가 대표를 관둔 그다음부터 정리해고가 시작됐을까? 정혜신씨는 이런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빌린 돈은 대표들 마음대로 쓰고 왜 적자에 대한 책임은 노동자에게 물을까?
회사를 정말로 살리고 싶은 사람들은한국의 노동자는 참 억울하다. 평상시에 회사의 재무 상태를 공유하고 노동자가 중요한 결정을 함께 내리는 기업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경영위기를 노동자가 어떻게 책임져야 할까? 심각한 경영위기를 이미 알던 사람들은, 회사 지분 대부분을 가진 공동대표나 이사들은 그동안 월급을 반납하며 회사를 살리려 뛰어다녔을까? 그런 사람들이 해고를 미루고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자구책을 마련해보겠다는 노조의 제안을 왜 거부했을까?
이런 과정을 보면 회사를 정말 살리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일까, 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마인드프리즘이라는 회사의 이미지는 대체 누가 망치고 있는 것일까? 회사의 설립 목적인 마음이 먼저라는 노동자일까, 부채를 빌미로 해고를 일삼고 입을 틀어막는 사 쪽일까?
안타깝게도 이런 의문에 책임 있는 답변을 해줄 사람은 지금 없다. 노동자들만 전전긍긍할 뿐이고, 그들이 그동안 일궈온 성과인 내마음보고서, 홀가분워크숍, 힐링Talk가 회사 간판에 덩그러니 적혀 있을 뿐이다.
어렵게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그 뒤에 문제가 잘 해결된 사례는 많지 않다. 싸움에 매번 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겨도 얻는 건 원칙적인 수준이고 언제 또다시 싸워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사람의 마음을 잠식한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체력은 떨어지고 마음은 더 심란해진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더구나 회사가 노조와의 대화를 거부할수록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든든한 지원세력보다 은밀한 감시자로 느껴진다. 경영진보다는 옆의 동료가 더 야속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싸움을 이긴들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술 한잔 마시며 동료에게 속 얘기를 맘 편히 털어놓을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힘겹게 이기더라도 활짝 웃는 사람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어찌 보면 이런 어려움 때문에 마인드프리즘이라는 회사가 만들어졌지만 이곳도 비극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만약 그때 싸우겠다고 결심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동료가 정리해고되거나 말거나 내 앞길만 보고 가만히 있었다면? 하지만 이건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고, 선한 경영자나 말 잘 듣는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지배구조와 노동양식의 문제다. 매뉴얼이 그렇지 않은가. ‘일용직→비정규직→정규직’, 이렇게 건너오는 해고의 쓰나미를 어느 누구도 피하긴 어렵다. 그리고 사 쪽의 일방적인 결정과 소통 거부는 노동자들의 건강함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
이미 드러난 이야기 속에서 결정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면 얘기되지 않은, 또는 말하지 못하는 것에서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다.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고 싶다면 정혜신씨나 김범수씨가 입을 열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의 선의가 진심이라면 이렇게 운영하라고 마인드프리즘을 떠나고 지분을 넘겨준 것은 아닐 것 아닌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최소한 자기 입으로 뱉은 약속은 지켜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기업이 정상화되려면 그 기업을 함께 만들어온 노동자와 공유해야 할 건 매출액이 아니라 공동의 결정권이 아닐까.
김상봉 교수는 라는 책에서 노동자들의 폴리스를 주장했다. 그런 꿈을 꿔야 하겠지만 그 정도는 아직 기대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한, 더 무기력해지기 전에 싸우기 위한 무기다. 그래서 그 끝을 알 수 없다. 숙이며 무릎 꿇지 않고 싸우겠다는 사람을 혼자 두지 말고 함께 싸워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끝은 보이지 않고 상황은 나빠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누가 뛰면 옆에서 같이 뛰어줘야 한다. 그것이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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